카메라를 들고 혁명을 갈구하다, 티나 모도티(Tina Modotti)
(1896.8.16~1942.1.5)
본질보다 그것을 압도하는 어떤 이미지에 의해 평가나 주목을 받는 경우가 있죠? 그건 안타까우면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해요.
그 사람이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중요하기도 하겠는데요.
그의 본질을 말하자면, 사진작가입니다. 그리고 체제 전복을 꿈꾸던 혁명가이기도 한.
하지만,
그는 자신이 찍은 사진보다 다른 작가가 찍은 누드사진 모델로 더 알려졌고,
사진대가인 에드워드 웨스턴의 연인이나 조수로 기억되는 측면이 강했습니다.
뭐랄까요. 로댕에 가려졌던 까미유 끌로델을 연상시킨 달까요.
티나는 또 영화배우로서도 활동했는데요. 사진작가보다는 매력적인 배우로서의 이미지가 강할 정도로 뛰어난 미모를 자랑하죠.
그러다보니, 사람들은 그에게서 사진작가보다는 배우로서 각인하게 됐죠.
그의 사진활동이 미국이나 유럽 아닌 멕시코에서 주로 이뤄졌다는 점도 한 몫할 겁니다.
그래도 티나의 진가가 아예 가려지는 것은 아니죠.
지난 1991년 소더비 경매에서였어요.
그의 대표작 '장미' 원판이 16만5000달러에 팔렸습니다. 서프라이즈~
그의 사진에 대한 상업적 가치가 우선 주목 받기 시작했고,
그의 예술과 생애가 관심을 끌었습니다.
'20세기가 평가절하한 대표적 작가 가운데 한명'이라는 평가를 받으면서!
무엇보다 그는 혁명과 예술을 온몸으로 실천하며 살았던 사람이었습니다.
티나는 이탈리아에서 태어나 가난에 시달리다가,
16살에 미국 서부로 건너갔습니다.
재봉일부터 시작했지만, 화려하고 이지적인 미모는 주변의 관심을 끌었죠.
예술가와 작가들과 교류하며 문화적 소양을 쌓던 그는,
시인이자 화가인 로보와 결혼한 뒤 연극과 영화를 오가며 배우로 활동했습니다.
그러다 하나의 계기가 찾아옵니다.
미국의 전설적인 사진작가 에드워드 웨스턴을 만나게 된 거죠.
그때가 1919년.
티나는 사진과 운명적인 조우를 하게 됩니다.
웨스턴의 모델이자 뮤즈로 사진을 만났지만,
그는 사진에 푹 빠져들었고, 카메라를 들고 거리로 나섰습니다.
당시 유부남이었던 웨스턴과도 사랑에 빠졌고, 두 사람은 결혼합니다.
사진은 또한 티나를 혁명의 길로 인도한 매개체가 됐어요.
웨스턴과 함께 1922년 멕시코로 건너가, 사진관을 운영합니다.
그러면서 디에고 리베라와 프리다 칼로 화가 부부, 다비이 에이 시케이와 만나게 됩니다.
그들과 예술과 혁명을 논하면서, 멕시코 르네상스를 주도하고,
무엇보다 자신의 카메라 뷰파인더를 멕시코의 변혁 과정에 갖다 댔습니다.
혁명은 중요한 오브제로 티나의 예술세계를 장식했어요.
예술과 혁명의 결합이랄까요. 그의 사진은 사회주의의 이상을 내용으로 당시 사진의 흐름이었던 형식주의를 간결하고 아름답게 보여줬어요.
티나의 작품들은,
멕시코에 거주한 시기인 1923~30년까지 찍은 250여컷에 잘 형상화됐습니다.
멕시코 사회의 변화와 예술이 한데 어우러진 시기, 그런 시대적 영감을 온몸으로 흡수한 덕에 그는 열정적으로 카메라 셔터를 눌렀어요.
당시 멕시코에는 망명 온 외국인이 많았고, 다양한 문화적, 정치적 환경 속에서,
그는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예술가로서의 정체성도 구축할 수 있었습니다.
멕시코에서 접한 공산주의와 자신의 정치사회적 이상을 사진을 통해 표현하게 된 거죠.
티나의 사진은 노동자, 인물, 정물, 민속예술, 거리풍경, 건축들, 꽃․식물 등 다양한 소재를 취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작업을 마르크스주의의 관점에 놓았죠.
그의 첫 개인전은 1929년 12월 멕시코시티에서 열렸는데,
노동자들을 위한 관람시간을 특별 배려했고, 전시 마지막에는 '멕시코 최초의 혁명적 사진전'이라는 제목의 연설이 진행되기도 했습니다.
언론들은 그의 작품을 진지하게 다뤘고, 그에 대한 존경을 표시하기도 했어요.
그런 와중이었던 1928년,
새로운 사랑인 쿠바출신의 혁명가 안토니오 멜라를 만났습니다.
그러나 이듬해 멜라는 암살당하고,
티나도 대통령암살기도 사건에 연루돼 멕시코서 추방당합니다.
혁명적 이상을 품고 독일을 거쳐 모스크바로 건너간 그는,
세르게이 에이젠슈타인, 로버트 카파, 헤밍웨이 등과 예술적 교류를 나누는 한편, 이탈리아 공산주의자 비토리오 비달의 부인이자 혁명동지로 활동했고, 러시아의 콜론타이, 칠레의 파블로 네루다 등과 정치적 혁명 동지애를 나눴습니다.
스탈린 비밀경찰로도 활동한 그였지만,
모스크바도 그의 이상향은 아니었어요.
권력투쟁과 스탈린의 편집증에 질린 그는 소련을 떠나 스페인 내전 지원을 나섰다가, 1939년 스페인 내전이 끝난 뒤 다시 멕시코로 돌아왔습니다.
이후 조용히 숨 죽이며 번역과 공산주의자 활동에 전념하던 티나는,
1942년 사진작가 활동을 준비하던 중 택시 안에서 심장마비로 숨을 거뒀습니다.
여전히 카메라에 담고 싶은 이상과 열망이 있었고,
혁명가로서의 활동도 좀더 왕성하게 하고 싶었겠지만, 결국 그는 시대의 정신을 독특한 형식으로 담은 사진들만 남긴 채 눈을 감았습니다.
그의 나이, 불과 마흔 다섯. 이른 죽음이었습니다.
※참고자료 : 『티나 모도티』(마거릿 훅스 지음/윤길순 옮김/해냄 펴냄), 월간 한국사진, 위키백과, 한겨레, 티나 모도티 팬사이트(http://cinemarx.cafe24.
[위민넷 기고-연재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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