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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털 싱글스토리

집 나간 씩씩하고 용감한 언니들, 응원합니닷!

어제도 <결혼 못하는 남자>(결못남)을 보면서, 히죽히죽.
 조재희(지진희)와 장문정(엄정화)의 러브라인이 모락모락 연기를 피우고,
함께 찾아간 바닷가, 문정을 위해 재희가 '꽃밭에서'를 불러줄 땐, 팡 터졌다.ㅎ

내가 보는 이 드라마의 미덕, 별 것 아니다.
간혹 그렇게 팡 터져주면서 무리 없이 러브라인을 예측가능하도록 해 주는 것.
캐릭터, 특히 재희의 까칠앙증 표정을 보는 것도 쏠쏠한 재미. 


이른바, '보편성' or '대중성'이라는 가치를, 
사실은 시청률을 지상 최고의 미덕으로 삼는 지상파 드라마에서,
세상의 율법을 빗겨난, 신선하고 파격적인 내용을 기대하는 것은 쫌 무리다.

비현실성과 로망 섞인 캐릭터 또한,
여느 평범한 결못남녀들이 맞닥뜨릴 수 있는 현실과는 괴리돼 있다.
미손님의 말마따나, 이건 그저 어른들을 위한 동화 혹은,
어른들의 장래희망과도 같은 연애를 다룬 드라마니까.
결못남녀들의 진짜 고민은 휘발돼 있는 셈이지.

원작인 일본 <결못남> 결말은 모르겠지만,
러브라인은 아마도 어떤 갈등과 봉합을 거쳐, 
'결혼'이라는 범정부적 캠페인에 부합하는 결론으로 내닫지 않을까 싶다.
이 드라마, 명색이 공영방송이자 MB정권과 코드 맞추는 K본부의 것 아니던가.

그래도, 혼자서도 씩씩한 재희의 태도는 마음에 쏙 든다.
좋아하는 고기, 혼자 먹으러 가고,
 좋아하는 일, 혼자 하길 마다하지 않는.


그러니까, 이런 것(들).
“혼자가 좋다는 데 뭐가 나빠”
“휴일날 혼자라는 데 뭐가 나빠”
“좋아하는 음식 혼자 먹는다는 데 뭐가 나빠”
그럼 그럼, 하나도 나쁘지 않아!
'틀린' 것이 아니고, '다른' 거니까.

영화를 보건, 공연을 보건, 음식을 먹건,
 나도 차츰 더, 혼자서 하는 것에 익숙해지고 있다.
타인의 시선에 대한 시덥잖은 신경 때문에 처음엔 쉽지 않았던,
혼자 하는 일에 타자화되지 않고 있다.  
 
물론 아직, 혼자 고깃집은 가보지 못한 경지.ㅋ
지금은 결혼한 한 친구,
한때 왜 혼자 먹을 수 있는 고깃집은 없을까하는 아쉬움 토로하자,
 함께 모였던 우리들, '혼자 고깃집' 열자고 맞장구쳤던 기억도 나네.
 
더불어 보건대, 조재희도, 나도,
이른바 초식남이 연애나 결혼을 못(안)하는 것은,
대개의 경우, 어떤 하자나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고,
혼자인 것이 마냥 좋아서만도 아니다. 물론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냥, 마음을 사로잡을, 사로잡힐 '그대'가 '지금은' 없기 때문.
모름지기, 등 떠밀려 심장이 벌떡거려야 연애도 결혼도 하는 게지.

혹은 이다혜(씨네21)의 말마따나,
공개할 수 없는 상대와 연애를 하기 때문일지도
(기혼자, 동성 애인, 사내 커플 등등).
 ☞ 고기 먹으러 혼자 가면 뭐가 나빠?

아직은, 결혼을 하지 않고 살아간다는 건, 무(모)한 도전이다. 
혼자 살든, 동거이든, 또 다른 방식이든.
2008년 통계청 조사를 보자. 
'결혼은 선택'이라고 답한 여성(46.8%)이,
'필수'라고 답한 여성(46.5%)보다 많았다.

그러나, 그러한 인식이나 통계보다,
현실의 벽은 견고하고 옹색하다.
결혼을 선택의 조건으로 받아들여 실천하는 사람은 소수다.
낮은 출생률 등을 이유로 국가에서까지 나서서,
결혼을 '강요'하는 시대 아닌가.
결혼과 출생률이 꼭 연관돼야 할 이유도 잘 모르겠지만.
국가의, 정부의, 빈곤한 상상력이 문제이기도 하지.

그리하여,
씩씩하고 용감한, 언니(오빠도 있다!)들의 이야기,
『언니들, 집을 나가다 : 가족 밖에서 꿈꾸는 새로운 삶 스물여덟 가지』(언니네트워크 엮음/에쎄 펴냄), 읽어볼 만하다.


전통적 관점에서 보면 발칙하고 몹쓸 년놈들이다.
결혼 뿐 아니다.
남자하고만 섹스할 필요가 있냐고도 묻고,
동물도 당당히 내 가족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들은 "삐뚤어질테다"라며 빗나간 삶을 사는 것이 아니다.
고민과 어려움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은 그들 자신의 삶을 산다.
타인의 시선에 속박 당하지 않고, 내가 나답게 사는 방법.

그래서 여기서 그들이 나가는 '집'은,
단순히 우리가 아는 '집'이나 '가족'의 좁은 개념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가진 '통념'이나 '시대' 혹은 '세계'로까지 생각해도 무방.

모름지기, 비혼은 결혼에 맞먹거나 대응하는 삶의 방식이라는 것.
비혼생활지침서이며,

또 하나의 라이프스타일을 알려주는 책.  
무엇보다, 비혼자들을 위해,
"당신은 혼자가 아니랍니다"라는 말 건넴.

책 출간기념으로 펼쳐진,
'변영주 감독 + <안토니우스 라인>'까지 곁들인, 행사에 동참했다.
비록 '비혼주의자'는 아니지만,
유쾌하고 신났던 또 하나의 삶에 대한 엿봄.

30년 안에 없어질 대표 품목 중 하나가,
(전통적인) 가족이라는 예언이 있다지.
나는,
이 예언이 맞아 떨어지거나,
또 다른 가족의 개념을 탑재할 것이라고 한표!

자자, 이날의 현장에 동참한 이야기.
당신도 한 번, 엿보실라우?

(아, 별 참고사항은 아니지만,
나는 저렴하고 참 쉬운, 비혼주의자도 아닌,
책에 나온 언니들에게, 그렇다고 모든 언니는 아녔지만, 감탄한, 찌질 수컷)


집 나간 언니들, 응원합니다, 아싸~
『언니들, 집을 나가다』출간기념 큰언니 변영주 감독과 영화보기


#1. 얼마 전, 한 ‘유부남’ 친구, 부부싸움을 했더란다. 녀석은 ‘총각’인 내게 넋두리 아닌 넋두리를 늘어놓고. 이번 건은 격했던지, 순한 이 녀석도 평소 않던 언사까지 해댄다. “말 많고 성가시고 사사건건 간섭하고, 쯧” 이런 넋두리를 해 대는 유부남 친구를 위해, 총각 친구가 할 수 있는 일은, 가만히 들어주는 것. 그리곤 마무리는 이렇다. “그래, 니는 결혼하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