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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털 싱글스토리

싱글남의 크리스마스 푸념

며칠 전, 오랜만에, 아주 오랜만에, 만났어.
형의 결혼식 때 봤으니 거의 1년하고도 3개월여만. 우리가 서로를 안 이후로, 이렇게 오랫동안 안 만난건 처음이었지. 물론, 중간에 연락은 몇번 취했지만, 대면은 정말 오랜만. 그새 살이 넉넉하게 붙었고, 그 덕인지, 좀더 후덕해졌더라. 그래도, 형은 여전했어. 그 웃는 모습과 특유의 스타일. 난, 형의 웃음을, 미소를, 참 좋아해.^^

주거니 받거니.
우리는 쇠주를 놓고, 서로의 근황과 현실인식을 나눴지. 형과 난, 그러니까 11년 전, 미국땅에서 만났어. 형은, 우리가 그곳에서 통했던 걸, 서로 아웃사이더였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글쎄, 난 형이 멋있고 좋았어. 형이 없는 나로선, 그가 꼭 내 친형 같았거든.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우린 거기서 이런저런 추억을 공유했지. 그녀도 그땐 함께였는데...

그리고 우리가 술잔을 나눈 그 술집.
술집 이름이, 이름을 대면 알만한 문화예술계의 유명 콘텐츠지. 형이 현재도 작업하고 있는 작품. 형은 한 에피소드에서, 내가 전해준 이야기를 소재삼기도 했었어. 가슴아픈 사연이었지만. 어쨌든, 우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어. 그러다 우연히 한 얘기를 마주했어. 그집 사장님에 얽힌. 일전에 와서도 형 소개로 인사를 나눴던 선배. 나와 같은 업종에 종사했다가 전업한 분이셨지. 형의 작품에도 그분의 캐릭터가 나오기도 했었어. 그런데, 이번엔 형수가 안 계시더라.예전에 뵀었던. 얼마전 불의의 사고로 돌아가셨대.

당연히, 처음엔 몰랐어.
선배는 웃고 계셨어. 여기저기 손님으로 온 지인들 좌석을 돌아다니시면서. 그러다, 우리 자리에도 오셨지. 술집 여기저기에 포진한, 형의 지인들과 섞여 마시던 우리 자리에도. 다른 선배가 그 선배를 위로했고, 그 선배는 토로하더라. 보고싶고, 또 보고싶고, 자꾸 보고싶다고. 얼마되지 않았어, 그 사고로부터. 선배는, 정신 차리고 가게에 나온 지도 보름 가량됐다고 하더라. 나는 그냥, 얼어붙었어. 사랑하는 이를, 구름의 저편으로 먼저 보낸 사람의 그 마음때문에. '보고싶다'는 그 말의 기시감 때문에.

형수는 무척 '좋은' 사람이었나봐.
단지 먼저 떠났다는 이유 때문만은 아님이 분명했어. 난, 오래전 인사만 했을 뿐, 얼굴조차 기억나지 않아. 그래서 나는 모르지만, 우리 자리에서 오간 형수는 주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사람이었던 것 같아. 그 선배보다 더 사랑받고, 신망받았던 사람이었나봐. 형수의 부재는, 그랬나봐. 주변 사람의 마음을 뻥 뚫리게 할 정도로. 나는 형수를 잘 모르지만, 꼭 형수를 알고 있던 것 같은 느낌을 받았어. 형수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 그렇게 둥지를 틀고 있었어.

그래서일까. 그 말들이 떠올랐어.
"기억은 이미 죽은 사람들과 우리가 공유할 수 있는 가슴시리고도 유일한 관계이다."(수전 손택)
"죽은 사람들이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모여서 추억을 나눌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젊은 나이에 세상을 등진 사람들의 죽음은 살아 있는 사람들을 아프게 만든다."(김지미 영화평론가)
형수는 그렇게, 그 자리에 있었어. 그 사람들의 가슴 속에서, 가슴시리고도 유일하게. 덕분에 나도, 어떤 기억과 추억 속에서 맴맴 돌았어.

지난해 이맘 때도 한 젊은 죽음을 목도했지.
대학 동기의 죽음이었어. 앞선 2년 여의 투병생활을 끝내 접고 구름의 저편으로 결국 떠났던. 소식을 접하고 몇몇 동기에게 전화를 돌리며 첫마디로 다짜고짜 이렇게 물었지. "행복하냐." 녀석들은 의아해했지만, 곧 소식을 전해줬어. 사실 그닥 친하지 않은 동기였어. 학창시절 거의 어울리질 않았고, 함께 쌓은 추억은 거의 없었어. 그저 이름을 알고, 얼굴을 아는, 짧은 안부 물을 정도의. 과선배와 결혼을 했고 아이 하나가 있다는 정도. 암말기 판정을 받았다는 얘기를 듣고도 나는, 선뜻 병실을 찾아가지 못했을 정도로 우린 친하지 않았어.

부고 소식을 듣는 순간, 훵하니 바람이 지나갔던 기억이 나네.
죽기 6개월 전 다른 동기의 결혼식에 나타났었지. 아이 손을 잡고, 수척하지만 웃음 지은 얼굴로 결혼식장을 찾아왔을 때 본 것이 결국 마지막이 된 셈이었지. 영정 사진의 그녀는 웃고 있었는데, 실감이 나지 않았던 그때. 당시, 돌아오는 길. 밤하늘에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그를 생각했다. 작고 귀여웠으며 웃음이 특히나 천진했던 아이. 우리가 처음 만났던, 스무살 무렵의 그 아이는 그랬던 것 같아.

세월을 머금은 뒤 그렇게 해후할지는, 사실 몰랐어.
아직 살아갈 날이 더 많으리라 생각했는데. 훌쩍 혼자서 먼 여행을 떠난 그를 생각했었다. 눈물 머금은 선배의 모습과 엄마 잃은 5살 아이의 모습이 심장을 눌러댔었고. 선배와 아이는 이제 매년 크리스마스가 다가올 때마다 구름의 저편으로 간 그가 떠오르리라 생각하니, 휴... 지금도 아마, 선배와 아이는 누군가를 떠올리며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있겠지.

떠난 사람과 남겨진 사람.
남겨진 자들에겐, 그날이 삶의 균열을 가져온 날인 셈이지. 생에서 'before'와 'after'가 확연히 나뉠.
지난해 병원 문을 나오면서, 대학로의 흥청거림이 참으로 이질적으로 보였어. 올해, 형을 만나면서도 그랬어. 인사동의 그 술집을 나와 종로 부근을 나와선 그랬지. 완전히 분리된 두 세계가 공존하는 듯한 묘한 풍경. 나는 그냥 걸었어. 세상은, 그런 건가봐. 확연히 다른 세계가 공존하고, 우리는 그 세계를 오가야하고. 그러면서, 여전히 삶의 고단함을 짊어지고 살아야 하는. 한 친구도 어제, 상가집을 다녀왔다고 전화를 했었지. 크리스마스는 누군가가 생을 얻은 날이지만, 그날 누군가의 죽음을 생각해야 하는 사람들도 있는 법이지.

세상엔 아무리 겪어도, 익숙해지지 않는 그런 것들이 있어.
넌 어떤지 몰라도, 적어도 나에겐 그래. 죽음도 그 중의 하나지. 가깝건 그렇지 않건, 누군가가 구름의 저편으로 가는 것을 목도해야 하는 일은 익숙해지지 않아. 그 사람들이 다르기 때문일까. 내가 그쪽으로 가기 전까지, 나는 영원히 영원히 익숙해지지 않을 것 같아. 익숙해지고 싶지도 않고. 나는 다시 그 사람을 떠올려. 11년 전 함께 잊지못할 크리스마스 추억을 나눴던 그 사람.

이건, 어찌보면 의도하지 않게 '싱글'이 된 사람들의 이야기야.
크리스마스가 접히는 이 시점. 다들 즐겁게 보냈겠지? 싱글부대의 푸념쯤이야, 그냥 엄살로 넘기고, 피하지 못할 어떤 일을 마주한 이들도 있겠지만. 그래도 그들에게도 크리스마스는 오게 마련이니까. Christmas is All Around~. '싱글남'의 크리스마스 푸념은 이렇게 마무리. 꽝!!!

아마, 이 푸념은 어제 마신 크리스마스 이브주 때문일거야.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