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력서까보기①] 이력서, 좀 불친절하면 안되겠니~?
이력서를 말한다①
한국의 이력서에는 취업에 있어 불필요한 개인 신상을 요구하거나 차별과 인권침해의 소지가 있습니다. 세계의 이력서 비교를 위해 다른 국가에서 쓰이는 이력서를 살펴보니, 한국처럼 부모 등 가족관계부터 그들의 직업, 지위까지 요구하는 경우는 찾아볼 수 없더군요(가족주의 혹은 가족의 능력도 회사에서 판별하기 위함?).
물론 ‘세계의 이력서’는 절대적인 것이 아닙니다. 각국 문화나 상황에 따라 요구하는 양식이나 기재 사항이 다를 수도 있고 기업별, 개인별로도 다를 수 있습니다. 또 한 국가 내에서 일률적으로 적용되는 이력서 양식도 존재할 수 없습니다. 개인별로 자유로운 스타일로 이력서를 쓸 수도 있습니다.
다만, 이력서에 반드시 적지 않아야 할 것을 규정하는 곳도 있습니다. 그것은 특정 정보가 줄 수 있는 편견과 차별을 가급적 피하고자 함일 것입니다. 신입과 경력의 경우에도 기재 내용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세계의 이력서’ 비교에는 8개국을 대상으로 했습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러시아, 미국, 브라질, 영국, 인도네시아, 프랑스, 호주에서 트랙백을 달아주셨고, 감사하다는 말씀을 거듭 전합니다.
이력서 문화, 바꿔보실래요?
이력서에 불필요한 개인 신상을 시시콜콜 적어야 하는 ‘이상한’ 문화를 고칠 수 있을까요? ‘몽레알레즈’님은 ‘캐나다 이력서엔 쓰지 않는 것들(개인정보 전혀 없는 캐나다 이력서)’을 통해 “캐나다에서 이력서를 쓸 때는 나이, 성별, 국적, 취미, 신체사이즈, 인종, 국적, 가족관계, (우리나라의 주민등록번호 정도에 해당하는) SIN번호 등 개인정보는 물론, 사진도 붙이지 않는다”고 언급했습니다.
그리고 몽레알레즈님이 올린 한국 이력서 샘플. 거기에는 생년월일, 주민등록번호, 주소, 전화번호, 병역, 신장, 체중, 취미, 특기, 종교는 물론, 가족들의 성명, 연령, 출신학교, 직업, 근무처, 직위까지 적게 돼 있었습니다. 거참 이상하지 않나요? 해당 직장에 필요한 능력을 갖춘 사람임을 보여줄 수 있는 서류에 왜 시시콜콜한 신상정보(심지어 가족 정보까지)를 적어야 할까요?
"아마 한국어로 모두 이력서라고 번역했지만 두 가지 경우가 다른 것일 것입니다. 캐나다의 경우는 간략하게 적는 professional이던 personal이던 Resume인데 비하여 한국은 Curriculum Vitae(CV)로 일종의 신상명세서이지요. 유럽에서도 CV 를 만드는 경우는 개인 관련기록을 씁니다. 하지만 유럽은 미혼/기혼 등 개인에 대한 기록을 요구하는 것은 불법일 수도 있으므로 Resume를 쓰지요. 그리고 사회 통념적으로 한국은 신원조회 등을 이유로 '신상명세서'적 이력서를 요구하고 있고, 이는 또한 일본제국주의식 발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족사항은 대체 뭣에 쓸 물건인고
한국의 모든 이력서가 가족사항을 요구하는 것은 아닙니다. 요즘은 그런 사항까지 요구하는 경우는 점차 줄어들고 있지 않을까 생각도 듭니다. 가족사항을 요구하면서 부모의 직장이나 직위까지 적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른바 ‘연줄’이 중요한 사회에서 부모의 위치가 나중에 어떤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을까요? 이유야 있었겠죠.
러시아의 경우 가족사항을 적기도 했습니다. ‘보람’님이 보내주신 이력서 샘플에는 가족사항을 기재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단순하게 결혼 여부와 자녀 유무만을 언급할 뿐입니다. 가령 ‘기혼, 자녀 셋’과 같이.
그러나 한국의 이력서 샘플에는 ‘관계, 성명, 연령, 출신학교, 직업, 근무처, 직위’ 등 대체 뭣에 쓸 물건인지 별걸 다 쓰라고 요구를 하는군요. 강제적인 것은 아니라지만 빈 칸을 남겨두면 왠지 찝찝한 기분. 아시죠? ^^;
어떤 분은 이런 말씀도 하십니다. "어머니는 초등학교 중퇴, 아버지는 중학교 중퇴이신데다 두 분 다 번듯한 직장생활을 하신 편이 아니라서 어릴 적부터 부모님 얘기할 때마다 겪는 어린아이로서의 서러움뿐만 아니라 정작 나 자신은 부끄러울 것도 없는 가족사항을 시시콜콜하게 적어야 하는 한국의 이력서를 대할 때 느끼는 짜증스러움.."
개인정보는 과연 어디까지..
이 고단한 사람살이의 현장. 취업관문을 통과하기 위한 노력도 정말 눈물겹습니다. ‘청년실업’은 이미 사회 전반 깊숙이 자리매김한 현상이 돼버렸습니다. 이력서도 결국 취업을 위해서 아니겠습니까. 이력서 수십 통, 수백 통 쓰는 것도 이젠 뉴스거리도 되지 않는 현실입니다.
그런데 혹시 이력서를 쓰다가 의문점 가져보시지 않으셨어요? 주민등록번호가 왜 필요할까요? 이력서를 통해 신용조사를 하려고? 물론 업무에 따라 이 같은 것이 필요할 회사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면접이나 신원조회 등이 필요할 때 하면 되지 않을까요? 뭐 사실 이것뿐입니까. 별걸 다 적긴 하죠. 회사는 지원자의 신상이나 호구에 대해 알고 싶은 게 많은가 봅니다. 알면 떡 하나 더 줄 건가요? ‘마담뚜’라도 돼서 결혼시켜주려고 그런 걸까요? ^.^;
‘몽레알레즈’님은 캐나다에서는 나이, 성별, 국적, 취미, 신체사이즈, 인종, 국적, 가족관계, 우리나라 주민등록번호 정도에 해당하는 SIN 번호 등 개인적인 정보는 일체 적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심지어 사진도 붙이지 않는답니다. 이력서에 동봉하는 자기소개서에도 왜 자신이 이 업무에 적임자인지를 설명할 뿐이랍니다. ‘몽레알레즈’님은 경력이나 학력 등 업무에 꼭 필요한 정보 외에 선입견이 들어갈 내용을 없애기 위해서라고 설명해 주셨습니다.
영국도 마찬가지입니다.‘정숙진’님은 영국의 이력서에 표기된 개인 정보는 지원자 이름, 전화번호, 주소, 이메일 주소가 전부라고 하셨습니다. 성별, 나이, 기타 신상내용은 캐나다에서처럼 응시자가 제출한 문서상 정보를 통해 ‘추측’하거나 면담하는 과정에서 알아낸답니다. 우리나라 주민등록번호와 비슷한 NI(National Insurance)번호도 넣지 않고 사진도 붙이지 않습니다.
‘소은사랑’님이 거주하고 있는 호주 역시 대개의 이력서는 간단하답니다. 통상 개인정보란에는 전화번호, 주소, 이메일 등의 연락처를 쓰고 성별은 쓰지 않고 나이는 생년월일을 기입해 나타낸답니다. 다만 호주에는 주민등록번호와 같은 것은 없습니다. 호주에도 물론 사진을 넣지 않는답니다. 다만 영주권자 이상이 아닐 경우 많은 기업들이 이들을 최종합격에서 제외시키는 경우가 많아, 지원자가 소유한 비자 종류가 취업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는 많다고 합니다.
미국은 어떨까요? ‘tiffany’님이 전하는 미국 이력서에는 나이, 종교, 국적, 장애 등은 절대 밝힐 필요가 없답니다. 특정한 양식 없이 자유로운 스타일로 작성할 수 있는데 ‘tiffany’님이 언급한 보편적으로 쓰이는 형태의 이력서에는 개인정보는 이름, 주소, 전화번호 등을 기입하고 학력난에도 자신의 나이가 밝혀지길 원치 않으면 졸업한 년도는 적지 않아도 상관이 없이 출신학교와 전공만 기입하면 된답니다. 물론 인터뷰를 하게 되면 자연스레 알 수도 있겠죠.
그렇다면 프랑스는?
‘vaguelette’님이 전하는 프랑스에는 법적으로 기업체가 50%의 여성인력을 고용하도록 하는 (강제)법안이 제정돼 있어 때론 성별을 드러내는 것이 좋을 수도 있겠군요. 그리고 개인 신상이라면 이름, 주소, 전화번호 정도. 그 외 인적사항, 주민등록번호, 가족관계를 적는 일은 없답니다. 한가지 흥미로운 것은 자녀가 있을 경우 자녀의 나이를 적어야 한다는데, 이것은 자녀들 나이를 통해 취업희망자의 시간 유연성을 확보하기 위한 방법이라고 하네요.
자, 남아프리카공화국도 한번 가볼까요? ‘그냥나’님은 남아공의 CV는 교육, 상벌, 자격증과 함께 주소 등의 간략한 신상을 쓴다고 하시네요. 결혼 유무는 써도 그만, 안 써도 그만. 사진은 안 붙인답니다.
거참, 개인 신상에 대해 이력서에 적는 정도가 한국과는 좀 다르긴 하죠? 다만 인도네시아도 이들 국가와는 또 다르네요. 인도네시아에 거주하신다는 ‘별과달’님의 이력서 샘플에는 이름, 출생지, 본적, 종교, 성별, 결혼유무, 국적, 키/몸무게 등을 잡다하게 적네요. 예전에 한국에서도 출생지, 본적, 키/몸무게 이런 것들 시시콜콜 적는 난이 있었죠? 요즘도 적고 있는지는 모르겠네요.
‘ssamba’님이 알려준 브라질에는 간단한 이력과 함께 결혼과 자녀유무를 적는데 이는 아주 중요한 것이랍니다. 법적휴가와 관련돼 있기 때문이라는데 참고로 출산 때는 모든 노동자가 4개월(100% 유급)을 쓸 수 있으며 공무원은 결혼식 때 남녀 8일, 아내 출산 시 남편은 3일을 쉴 수 있답니다. 회사 입장에서는 이런 것들이 있어 이력서를 보고 부담될만하면 쓰지 않으려나 봅니다.
☞ 입사지원서 ‘사진 성형’은 감점
중요한 것은 '업무 능력 구비'와 '추천인'
이밖에 세계의 이력서에 동참해 주신 분들이 계신 나라 대부분의 이력서 상에서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개인의 잡다한 신상정보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업무에 필요한 능력을 얼마나 갖추고 있는가’와 ‘추천인’ 등을 통한 업무 ‘적합성’과 ‘인성’ 등이죠.
영국에서는 한국의 ‘추천서’와 비슷한 ‘신원보증인(reference 또는 referee)’이 중요하다는군요. 다만 한국처럼 장문으로 글을 적는 것이 아니라 이력서 마지막 항목에 이들의 이름과 본인과의 관계, 연락처만 적으면 취업 담당자가 알아서 지원자의 자질이나 인품을 알아볼 수 있게끔 하는 항목이랍니다.
남아공에 거주하는 '그냥나'님은 추천서 문화에 대해 이런 말도 남깁니다. "(추천서 문화는) '인맥만들기'와 관련이 있다고 봅니다. 대기업 경우엔 여러 에이젼시나 신문광고를 통해 수시로 뽑는 경우가 많습니다만, 특별한 기술을 요구하는 경우엔 역시 여기도 인맥입니다. 사교 생활을 통해 서로 알고 지내는 사람을 소개해주고 소개받고 그런거죠. 물론 소개까지만 인맥이고, 되고 안 되고는 실력!"
최근 한국에도 추천인 문화가 점차 확산되고 있습니다. 직장을 옮길 경우에도 앞선 직장에서의 평판 등에 대해 확인하거나 추천을 받아서 취업하는 경우 말이죠.
그러나 한국의 이력서, 아직 바뀌어야 할 것도 많은 것 같습니다. 업무와는 상관없이 ‘차별’이나 ‘선입견’을 상정할 수 있는 내용 때문에 분명 억울한 경우를 당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또는 불필요한 개인의 정보를 적음으로써 부지불식간 위험에 노출될 수도 있다는 점.
그래서 저는 한국의 회사에 사실 이렇게 묻고 싶습니다.
"이력서(개인신상 정보)는 좀 불친절하면 안 되겠니~?"
(듣고 싶은 대답은 아시죠?ㅎㅎ "대한민국에 안 되는 게 어딨니~")
* 앞서 언급했다시피 이력서 양식은 각국별, 기업별, 개인별로 천양지차일 수 있기 때문에 이곳에 게재된 이력서 샘플이 특정 국가나 기업을 대표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국내에서도 이력서 문화를 잘 가꿔오고 있는 기업도 있을 것입니다. 오해말고 읽어주시길. ^^
개별 국가의 이력서 양식은 아래분의 블로그를 통해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