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아라, 직딩아~

[이력서까보기③] 대기업 이력서 ‘호구조사’ 여전

스윙보이 2008. 4. 16. 17:38

이력서를 말한다③

‘조사하면 다 나와’를 모토로 내건 ‘이력서(입사지원서)’ 세 번째 이야기입니다.~

앞선 두 글 <이력서, 좀 불친절하면 안 되겠니?><30대 기업 이력서, 함께 비교해볼까요?>를 아신다면 이번 이야기의 방향도 아실 겁니다. 국내 기업들의 이력서 들춰보기.

사실 ‘이력서를 이렇게 저렇게 써라’는 이야기, 참 많습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이력서가 이렇다 저렇다’는 이야기는 적습니다. 이건 당연하죠~ 취업지원을 하는 약자의 입장에서 들어가고자 하는 회사에서 요구하는 양식에 맞춰 적어줘야합니다. ‘취업’이 미덕으로 간주되는 신자유주의 시대에 어쩌겠습니까.

더구나 많은 입사지원서가 이 같은 무시무시한(!) 문구로 지원자들의 기를 죽여 놓습니다. “입사지원서 기재 내용이 허위로 판명될 때에는 합격 및 입사를 취소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적기 싫거나 불편한 사항이 있어도 ‘혹시나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까’하는 우려 때문에 혹은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개인이나 가족에 대한 신상정보를 시시콜콜 알려주진 않으셨어요?

입사지원서 기재사항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은 이전부터 있었습니다. 지난해 5월 ‘30대 대기업 입사지원 시 가족정보 수집에 관한 모니터링 결과’가 발표됐었습니다. 노회찬 민주노동당 의원실과 목적별신분등록법제정을위한공동행동이 함께 했습니다.

과거부터 "입사지원서 문제 있다!" 지적

이들이 30대 대기업과 그 계열사들 입사지원서를 분석한 결과, 채용시 자체 입사지원서 양식을 이용하고 있는 조사대상 그룹 기업 177개 중 132개(74.6%) 기업이 구직자의 가족관계와 구직자 가족의 개인정보를 수집했었습니다. 가족 이름과 구직자와의 관계를 파악하는 경우가 70.1%로 가장 많았고 △가족의 직업(직장명) 68.4% △연령(생년월일) 66.1% △학력(출신학교) 59.3% △직장내 직위 68.4% △구직자와의 동거여부 54.8% △형제자매관계 19.2%의 순으로 구직자 가족의 여러 민감한 정보를 수집하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이런 문제를 지적했습니다. “이런 정보를 담은 이력서나 입사지원서가 구직자에게 반환되지 않으며, 많은 기업이 ‘인재 풀’을 모집, 관리하는 방식으로 수시로 구직자의 개인정보를 수입하고 있지만 기업이 이렇게 수입한 정보를 어떻게 이용하는지, 개인정보 유출의 위험은 없는지 제도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장치가 없다. 뿐만 아니라 기업이 채용 시 과도한 가족정보를 확인하게 되면, 구직자 특히 여성이나 성 소수자 등 사회적 약자의 가족관계, 결혼여부, 이혼․재혼 등 결혼이력이 업무수행능력과 무관한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구직자에 대한 편견을 낳고 간접차별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심각한 문제이다.”

이에 앞선 2003년 국가인권위원회에서의 조사결과도 한번 볼까요? 인권위가 2003년 채용을 실시한 62개 주요업체(민간 대기업 58·공기업 4)의 입사지원 기재사항을 분석해 해당 업체에 개인능력이나 수행업무와 연관성이 적어 삭제해야 할 항목의 제출을 요청한 결과, 평균 삭제 항목수는 11.8개 였습니다. 꽤 많죠? 얼마나 불필요한 정보들이 이력서에 기재돼 있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68개 업체가 통보해 온 자진삭제 항목은 △학력사항 △가족사항 △신체사항 △장애사항 △혼인여부 △종교 △병역면제사유 △출신지역 △재산사항 △주거형태 △성장과정 등이었습니다. 가족사항의 경우, 62개 중 57개사가 기재를 요구했었고 43개사가 삭제를 통보했으며, △혼인여부는 20개사가 기재 요구, 17개사 삭제 통보 △종교는 34개사 기재 요구, 31개사 삭제 통보 △재산사항 9개사 기재 요구, 8개사 삭제 통보 △주거형태 24개사 기재 요구, 모두 삭제 통보 등이었습니다.

자, 기업들은 어떤 모습을 보였을까요. 2005년도에는 잡코리아가 매출액 순위 100개사를 대상으로 ‘입사지원서 항목에서 과거와 비교해 삭제된 사항’이 있는지를 물어본 적이 있네요. 이 조사에서 51개(51%)가 삭제된 항목이 있다고 응답했는데, 이들 기업들은 서류전형 항목에서 삭제요소가 있었던 기업을 대상으로 ‘삭제문항’에 대해 ‘가족사항’(15%)을 가장 많이 뺐습니다. 다음으로 △학력사항(14.3%) △신체사항(14.3%) △연령or나이제한(9.6%) △종교(8.9%) △성별(6.2%) △병역면제 사유(5.5%) △본적(4.8%) △가족 월수입(4.8%) △장애사항(3.4%) △혼인여부(2.7%) △재산사항(2.7%) 등을 삭제했다고 응답했습니다.

삭제 이유에 대해 “입사지원시 차별요소로 여겨졌기 때문”(54.9%)이라는 응답이 가장 우세했습니다. 이어 “지원자 평가에 불필요한 항목이라고 판단했기 때문”(37.3%)이었네요. 

과연 얼마나 바뀌었을까

이런 움직임들이 있었는데, 과연 세월이 흐른, 지금 어떨까요? 얼마나 바뀌었을까요? 입사 지원 시 찌질한 것들은 그만 적어도 될까요? 그러나 몇몇 블로거분과 함께 제가 알아본 결과, 바뀌지 않은 기업들 여전히 상존합니다.

노회찬 의원실 박규림 보좌관은 “당시 조사이후 채용할 때 가족정보를 수집하는 기업에 질의서를 발송해 이유나 이를 없애는 견해 등을 물었다”며 “몇몇 기업에서 가족 정보를 과다하게 게재하지 않겠다는 전화가 오긴 했으나 여전히 바뀌지 않은 기업들이 많은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우선 지난해 ‘노회찬의원실·목적별신분등록법제정을위한공동행동’의 조사 시, 가족 개개인의 주민등록번호까지 파악하는 것으로 조사됐던 ‘동부한농’(구 동부한농화학, 동부그룹 계열사)은 현재는 그렇게까지 하진 않네요.

그러나 ‘가족사항’을 적는 난이 여전히 존재하는데다 가족 개개인의 연령, 출신학교, 근무처, 직위, 동거여부는 물론 주거상황(대지, 건평까지 -.-;), 재산(동산, 부동산, 가족월수입)까지 적는 난이 있습니다. 거기다 신장, 체중, 시력, 혈액형, 신체건강상 특기사항, 종교, 취미, 특기.. 뭡니까 이게~ ‘별걸 다 기억하려는 회사’입니다.

 ▲ '동부한농'의 입사지원서 양식(2006.5월 기준)

역시 앞선 조사에서 같은 경우였던 한진그룹 계열의 ‘싸이버로지텍’도 가족 개개인의 주민등록번호까지 파악하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가족사항’을 적도록 하면서 생년월일, 학력, 직업을 적도록 하네요. 입사지원서 속에 "e-세상에서 가장 좋은 물류시스템 기업 -"이라고 자신의 회사를 PR하는 문구를 적어놨던데, "현실에서는 좋지 않은 입사지원서 양식을 갖춘 기업 -"이 아닐까도 싶네요.
▲ '싸이버로지텍'의 입사지원서 양식 중 가족사항 (2006.5월 기준)

지난해 당시 가족 국적과 여권번호까지 파악했던 포스코 계열의 ‘포항산업과학연구원(RIST)’은 정도가 약해졌지만 가족의 관계, 성명, 연령, 출신교, 직장명, 직위, 동거여부를 확인하는 ‘가족사항’이 여전히 있었습니다.

▲ '포항산업과학연구원'의 입사지원서 양식 (2006.5월 기준)

자~ 그렇다면, 앞선 조사에서 그룹 차원에서 가장 많은 항목의 가족정보를 수집하는 그룹으로 지목됐었던 ‘신세계’는 변화가 있었을까요. 신세계의 인터넷사이트 ‘신세계닷컴’에 들어가 지원서작성요령의 가족사항을 클릭해 봅니다.


▲ '신세계닷컴'의 입사지원서 작성요령 (2006.5월 기준)

뜨아~ 백화점을 가진 기업답게 가족사항에 대한 조사도 거의 백화점식입니다. 즉, 앞선 조사와 비교했을 때, 그닥 변한 게 없단 얘기죠. 가족사항에는 관계, 성명, 연령, 출신교, 직장명, 직위, 동거여부를 적게 하더니 친절하게도 “부모 처자 형제 자매 순으로 분가 또는 출가한 가족도 입력하되 입력란이 부족할 경우에는 역순으로 생략합니다”라는 설명까지 붙여 놨습니다.

기타 가족사항에는 학비지급자, 가족관계, 부모생존, 주거구분, 가족월수입까지. 이거 도대체 뭣에다 쓰려고? 혹시 백화점에 진열해놓으려고?^^;; 신세계에 입사하려면 거의 ‘가족에 대한 보고서’를 쓸 정도가 돼야겠네요. 영화(책) 제목 딱 나옵니다. 세상의 중심에서 '가족'을 외치다~ 세상의 중심에 있는 신세계인이 되기 위해서는 시시콜콜한 가족의 모든 것을 알려줘야 하나 봅니다. 거참.^^;; 

신세계 관계자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인권위나 등에서 가족사항 적는 것과 관련해 얘기들이 많았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가족사항을 기재하는 것) 자체가 합격 여부를 가늠짓는 것도 아니고 당락에 직접 영향을 미치거나 가산점이 붙는 것도 아닙니다. 저희 같은 경우 시험이 없고 서류와 면접 만으로 입사가 이뤄지기 때문에 정확하게 (응시자를) 판단하려면 다양한 정보를 갖고 있어야 그 사람을 제대로 알고 바르게 평가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흠, 응시자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를 위해 가족사항도 아는 것이 좋다는 말인데, 합격여부나 당락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라면서도 굳이 말 많은 가족사항 기재를 고집하는 ‘진짜’ 이유가 궁금합니다.

또 가장 많은 항목의 가족정보를 수집하는 개별 기업 중 하나로 꼽힌 현대차그룹 계열의 ‘해비치리조트’(06. 3. 31기준, 비상장, 업종:서비스 골프장)도 바뀐 것이 없습니다. 지원서 양식이 예전과 그대로입니다. 관계부터 성명, 연령, 학력, 최종출신학교, 직업, 근무처, 직위, 동거, 현주소를 묻더니 가족관계, 보유재산(미혼자:부모), 주거형태까지 적어내야 합니다.

▲ '해비치리조트'의 입사지원서 양식 (2006.5월 기준)

인권위의 권고와 관련한 기업들도 살펴봤습니다. 일례로 ‘CJ그룹’을 보시죠. 인권위 자료에 따르면, CJ그룹의 CJ시스템즈(주), CJ(주), CJ푸드시스템(주)는 당시 인권위에 가족사항에 대해 삭제할 것을 통보했습니다. 그러나 CJ그룹의 리쿠르트 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어라, 구라였던거야? 그런 거야?’하는 말이 나옵니다. 가족사항을 기재해야 하는 난이 있었고 관계, 성명, 근무처, 직위를 적어내야 합니다.

▲ 'CJ그룹'리크루트 사이트의 이력서 등록 양식 (2006.5월 기준)

‘CJ For Better Life’의 구호가 갑자기 의심스러워졌습니다. 도전하는 자에게 기회의 문이 열리는 것은 좋은데, 그 도전을 위해 가족까지 걸고 넘어져여하는 건지, 그것도 궁금해졌습니다. 

CJ그룹 관계자는 “당시 (인권위에 가족사항과 관련해서는) 사내참고용으로 그대로 두겠다고 통보를 했기 때문에 인권위의 자료가 잘못 됐을 것”이라며 “가족사항은 기재하지 않아도 상관없고 차별하기 위해서 있는 건 아니다”라고 전합니다. 가족사항은 사내에 가족이 있는지 없는지 여부 등을 파악하는 차원의 ‘사내가족연구’를 위한 참고용으로 있는 것이랍니다.

그런데 입사지원시 사내 가족 유무를 파악하는 것이 필요한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기재하지 않아도 상관없다면 아예 없애는 건 어떨까요? 또 입사가 결정된 뒤, 필요하다면 ‘사내가족연구’를 해도 되지 않을까도 싶습니다.

당시 조사를 담당했던 인권위 담당자는 “(차별적 항목 삭제 등에 대해) 통보를 해 놓고도 안한 곳이 있을 것”이라며 “기업에 따라 특정 항목을 필요로 하는 곳도 있을 것이나 삭제를 강제할 수단은 없고 약속을 안 지킨 것에 대해선 어떻게 할 수가 없다”고 말합니다. CJ 쪽의 잘못된 내용이란 얘기에는 “3년 전 자료라 현재 확인할 수는 없다”고 덧붙입니다.

일부 기업들 글로벌, 세계화 주야장천 부르짖는데 정작 개인을, 직원을 대하는 모습에선 여전히 후집니다. ‘호구조사’에 익숙한 관행일까요? 아님 직원들을 ‘호구’로 알기 때문에? 고치겠다고 하고선 고치지 않고, 이전부터 제기돼 온 문제에 대해 눈 감는 기업들에게도 ‘글로벌’ 타이틀 달아줘야 할까요? 아니면 ‘구라쟁이’ 딱지를 줘야 할까요?

이럴 때!
모레노 심판 아찌나 임채무 아찌 나올 타이밍 아닙니까?

기억하시죠? 이 장면! 보고 시포욧, 모레노 아찌~

이건 어떻습니까? ㅎㅎ 아, XX바 묵고 싶다~


앞선 기업들의 예가 물론 전 기업을 대변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대기업(계열사 비롯)들의 이같은 형태가 미치는 영향력이 결코 미미하다고 할 수는 없겠죠. 특정 기업의 입사지원서가 비치된 것은 그들만이 잘못됐다고 지적하기 위한 것은 아님을 아셨으면 합니다.

모범기업 “따라와~”

반면 모범적인 기업들도 있습니다. 김지한님이 취재로 훑은 바로는 삼성그룹은 입사지원서 및 자기소개서를 100% 온라인으로만 받고 있는데 “삼성의 입사지원서는 지원자의 자질, 능력을 많이 보는 듯하다”고 합니다. 그 근거는 이렇습니다. 삼성그룹은 학점, 외국어능력, 수상경력, 주요자격, 특기 등과 전화번호, 휴대전화번호 등 개인정보도 간단하게 적게 합니다. 다른 기업 입사지원서와 달리 가족사항, 지원자 사진이 없으며 자격 조건도 연령 제한 폐지로 누구나 지원할 수 있습니다. 김지한님은 “차별을 두지 않으려는 흔적이 엿보인다”고 평했습니다.


잡코리아의 2005년 조사결과에서도 삼성은 지난 2001년부터 학교소재지, 주야간, 부모생존, 학비지급지, 가족월수입, 건강특이사항, 병역면제사항 등의 항목을 없앴습니다. SK그룹도 2002년부터 나이, 본적, 종교, 성별 등의 기입란을 치웠고 대림산업은 2003년부터 가족사항, 출신학교, 종교, 주거형태, 성장과정을, 아시아나항공은 가족사항, 학교소재지, 본·분교 항목을 입사지원서에서 뺐습니다. 또 LG필립스LCD는 가족사항, 병역면제 사유, 출신지역, 혼인여부, 종교, 성장과정 항목을 입사지원서에서 삭제했습니다.

공기업 중에도 한국중부발전, 한국토지공사, 농업기반공사 등은 2005년 상반기 채용 시 서류전형에서 ‘최종 학교명’ 기재란을 없애 학력사항을 기입할 필요가 없도록 했습니다.

이런 기업들은 지원자의 능력·실력 위주로 채용을 진행하려는 의지가 엿보인다고 하겠습니다. 서류전형 항목 중 차별요소가 있거나 지원자를 평가하는데 있어 불필요하다고 여겨지는 항목을 삭제한 것은 바람직해 보입니다. 차별이나 편견이 아무렇지 않은 일인양 조장되는 것은 사실 끔찍한 일입니다. 차별이나 편견 없이 지원자를 채용하려는 모범적인 기업들이 “따라와~”해 주면 그렇지 않은 기업들도 이를 따르는 풍토가 조성돼야 하지 않을까요? 

2008/04/16 - [놀아라, 직딩아~] - [이력서까보기②] 30대 기업 이력서, 함께 비교해볼까요?
2008/04/16 - [놀아라, 직딩아~] - [이력서까보기①] 이력서, 좀 불친절하면 안되겠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