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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녀작’에 담긴 성차별

스윙보이 2008. 7. 22. 16:30
‘처녀작’에 담긴 성차별
깨끗, 순결의 이미지를 떠올려 만든 순결이데올로기의 소산

얼마 전 신문기사를 보다가 눈살을 살짝 찌푸렸습니다. 매우 강렬한 햇살 때문에 살인을 저질렀다는 뫼르소가 나온 《이방인》을 기사는 까뮈의 ‘처녀작’이라고 소개하고 있었어요. ‘처녀작’, 혹시 궁금증 품지 않으셨어요? 왜 처녀작이라고 하지? ‘총각작’은 왜 없는 거지?

국어사전을 뒤져보면 ‘처녀(處女)’는 이렇게 정의돼 있어요. 
1. 성숙한 미혼의 여성
2. 남자와의 성적 경험이 없는 여자
3. ‘최초의, 처음으로 하는, 인적미답의’ 등의 뜻을 나타내는 말

아마, ‘처녀작’은 3번 뜻에서 비롯됐을 겁니다. 그런데, 국어사전을 만든 사람들도 역시 남자였나봐요. 처녀에 대한 3번 정의가 저런 걸보니 말이에요. 처녀를 일종의 환상이나 호기심의 대상으로 다룬 것 같죠?

처녀작은 관용어처럼 굳어진 말이지만, 결론적으로 성차별적 언어입니다. 처녀에서 깨끗함, 순결함의 이미지를 떠올려서 만든 단어거든요. 혼전순결의 논의는 차치하고라도 여성에게만 강요되는 순결이데올로기가 담겨있다는 주장도 있죠. 혹자는 이렇게도 말해요. “처녀성에 대한 옛날 남자들의 고리타분한 사고방식과 비슷한 구석이 있다.” 첫 번째 작품이 중요한 의미가 있다는 것은 알겠으나, 그것을 굳이 처녀작이라는 단어로 표현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어요. 정치적으로 올바르지도 않을뿐더러 불쾌감을 야기할 수 있는 단어죠. ‘총각작’은 왜 없냐고 물으면 아마 할 말 없을 걸요?

그렇담 어떻게 쓰면 좋을까요? 간단해요. ‘첫 작품’이라고 쓰면 됩니다. 국립국어원에서는 성차별적 이데올로기를 내포한 처녀작 대신 첫 작품으로 쓸 것을 권하고 있습니다. 뉴욕타임스 편집자들이 영문 작성시 참조하는 <The New York Times Style and Usage>에서도 처녀작을 성차별적 용어로 규정하고 있어요. 비슷하게 ‘처녀항해’ ‘처녀출전’ 등이 있는데, 이 역시 ‘첫 항해’ ‘첫 출전’ 등으로 쓰는 것이 좋겠네요. 미디어들도, 너무 처녀만 찾지 마세요. 속 보여요.

(참고자료 :
「성차별적 언어 표현 사례조사 및 대안마련을 위한 연구」, 국립국어원·한국여성정책연구원
영화평론가 듀나의 영화낙서판(http://djuna.cine21.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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