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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의 세계에 반기를 든 시인, 사포

스윙보이 2008. 7. 22. 16:55
남자들의 세계에 반기를 든 시인, 사포(BC 612 ~ ?)
“‘딸들의 역사’를 새로 쓴 인류 최초의 페미니스트”

고대 그리스가 문화적으로 풍성하고 전성기를 구가했다곤 하지만, 여성들에게 남의 일이었습니다. 남성 위주로 만들어진 사회시스템 때문에 여성들은 날개를 펼칠 기회도 잡기 어려웠습니다. 교육을 받을 기회도 없었고, 단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모든 것에서 불평등한 대우를 받아야만 했었다네요. 한마디로 기원전 600년 무렵의 고대 그리스는 ‘남자들의 세계’였던 거죠.

그런 시기, 인류 최초의 여성 시인으로 불리는 사포(Sappho)는 군계일학의 여성이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총명하고 재능이 많던 사포는 불평등한 여성의 삶에 관심이 많았다고 전해집니다. 자신도 물론 예외가 아니었기에, 더욱 그는 열정을 불살랐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열여덟의 나이에 합창단지휘자 아반티스를 찾아가, 에로스의 희열과 결혼에 대한 두려움을 떨쳤다는 사례만 봐도 그가 얼마나 당찬 여성이었는지 짐작이 가지 않나요.

정치적인 소요에 휩쓸려 시실리로 망명을 갔다가 삼 년 만에 고향 레스보스로 돌아온 사포가 처음 한 일은 소녀들을 위한 아카데미 설립이었어요. 여성들도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거죠. 당시 남자들은 사춘기가 되면 후견인(멘토)이 붙어서 멘토링을 받지만, 여자들은 그러질 못했어요. 그 자신이 여성 멘토이길 자처하면서 시와 노래, 춤을 가르쳤어요. 문학과 종교, 철학, 역사, 그리고 사랑과 성의 비밀도. 더불어 소녀들이 한명의 온전한 인간이 될 수 있도록 교양을 알려주고, 여성들에게 억압과 불이익을 주는 사회에 대항해 싸우도록 독려하기도 했어요. 누군가는 그러더군요. “사포는 ‘딸들의 역사’를 새로 쓴 인류 최초의 페미니스트”라고.

구스타프 클림트가 그린 <사포>


사포는 무엇보다 아주 뛰어난 시인이었어요. 내밀한 인간 감정과 사랑을 자유롭고 사실적으로 혹은 대담하고 간결하게 묘사했던. 시인을 경멸했다고 알려진 플라톤도 그의 시에 감동을 받아, 사포를 ‘열 번째 뮤즈’(그리스 신화에서 뮤즈는 아홉 명)로 칭송했을 정도였어요. 알렉산드리아의 문인들도 그를 아홉 명의 위대한 서정시인 중 한 명으로 추앙했고요. 로마의 시인들을 거쳐 에즈라 파운드, 슐레겔 형제, 보들레르에게도 그는 절대적 찬미의 대상이요, 여신과 같은 존재로 숭앙받았을 정도죠.

한편으로, 사포에겐 여성 동성애자를 가리키는 ‘레즈비언(lesbian)’이란 말이 따라다닙니다. 원래 ‘레스보스섬 사람’이란 뜻이지만, 사포가 그곳에서 여성들을 키우면서 애정관계 등에 대한 이야기가 전해지면서 그렇게 굳어졌어요. 고대 사람들이 사포를 ‘여성을 사랑하는 여성’으로 묘사한 기록이 남아있기 때문에. 

(참고자료 : 《사포》(지그프리트 오버마이어 지음, 작가정신 펴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