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털 싱글스토리

내가 사랑하는 이 여자,

스윙보이 2008. 8. 17. 03:15
이 여자, 진즉에 나를 사로잡았다.
2006년 도하아시안게임에서 보여준 이 쿨함.
☞ 역도 銀 장미란 "저만 우승하면 되겠어요?"

속이 다 시언~했다.
그리고 무척이나 반가웠다.
스포츠선수들에게 늘 전쟁이나 전투에 나가는 것처럼,
'싸워 이겨라'를 반복하는 병영국가의 후진 스포츠정신을 향해,
은근히 한방 날려준 것 같아서.
(나는 사실 불만이다. 그들에게 짐 지워진 '스포츠 전사' '태극전사'라는 레토릭도.
戰士라니. 전투하는 군사라니. 그게 가당키나 한가. 게임이 치받고 포환이 오가는 전쟁터도 아니고..)

이 병영국가는 뭐든 치고받고 싸워서 이기길 강요한다.
 그래서 스포츠 게임도 전장처럼 대하는 아주 몹쓸 버릇이 있다.
언론이나 스포츠 중계도 전쟁용어를 대수롭지 않게 쓰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그건 아마도 이 사회가 이기는 것이 능사인,
(무한)경쟁을 삶 속에 내재화한 사회이기 때문이리라.
많은 사람들이 그런 사회의 바이러스를 저항없이 받아들이고 있고.
이기지 못하면 바로 낙오되고 폐인이 될 수밖에 없는 사회의 비극이라고나 할까.

2006년 장미란의 저 멘트가 신선했던 것도,
대부분 미디어가 구사하고 있는 섬뜩한 레토릭들 때문이었다.
 당시 기사 제목이나 내용 등을 보면 이랬다.
'아쉬운...' '금메달 실패의 순간' 등.
 나는 생각했다. '참 잘한...' '은메달 성공의 순간' 등으로 써도 되지 않나?
그나마 일부는, "은메달도 아름답다"고 써줬지만,
당시 압권은, 동메달을 땄던 야구대표팀을 놓고,
'도하 참변'이라고 표현했다.
진짜, 이래도 되나 싶더라. '참변'이라는 말을 이렇게 써도 되는가 싶어서.
이거, 미친 놈들 아닌가 싶었다.
 
그 이데올로기가 나는 무서웠다.
최고 아니면 안된다는, 무조건 싸워 이겨야 한다는.
우승 혹은 성공, 금메달이라는 단어 속에 내재된 우리 사회의 광기 혹은 폭력.
우리는 대수롭지 않게 이 성공(우승, 금메달)이데올로기를 받아들이고 있는 건 아닐까.
 
"성공(우승, 금메달)에 목매는 사회, 성공하지 않으면 불행을 피할 수 없는 사회에 살다보면
성공 지상주의가 구성원들의 마음 속에 내면화해 이데올로기가 된다."
 
미디어들의 그 섬뜩한 레토릭은,
 이 끔찍한 세계의 단면을 보여주는 증거였다.
 금메달을 따지 못하면, 우승하지 못하면, 성공하지 못하면,
그저 '못난 놈'이나 '버러지'로 치부해 버리곤 하는 이 땅의 비극.
 
내가 가진 낙오자 정서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2006년 당시 장미란의 저 말은 상큼하고 좋았다.
꼭 우승하고 금메달 따야 되나. 아니면 어때.
 
 
그러나, 오늘 이 여자,
매우 상큼하게 바벨을 들어올리는 모습에서,
자기 자신과의 고독한 레이스에서 자신감을 잃지 않는 모습에서,
나는 또 뿅~가버렸네~

혼자 생각컨대,
아마도 세계신기록을 경신한 그 바벨은,
병영국가의 후진성과 낡은 비장함을 들어올리는 장미란의 쾌거가 아니었을까.

누군가의 지적마냥, 바야흐로 신인류는 이미 왔다.
(김)연아, (박)태환, (장)미란, 그들은 구국이나 금메달을 위한 전사가 아니다.
절치부심, 구국결단, 부단노력, 생즉사사즉생, 이런 것 말고,
즐기면서 게임도 하고, 게임도 즐겼음 조케따~ 제발.
그들을 전사랍시고 싸워달라고 요청도 말고.
'즐~겜'해달라는 요구는 좋아~
그러다 금메달 못따고, 우승 못하면 어때.
다음에 또 게임하고 즐기면 되지.

난 그저,
미란이, 태환이가 자랑스러워.
국가가 자랑스럽고, 한국인인 것이 자랑스럽고, 이런 건 추호도 없고.
스스로가 자랑스럽다고 말하는 그네들의 자신감도 참 근사하고.
재능만큼이나 여유도 있고, 병영국가의 후진성에 매몰되지 않은 모습도 참 보기도 좋아.
(그러고보면, 중국 선수들 금메달 소감하면서 국가에 감사, 이 얘기 빼놓지 않는 거 보면 섬뜩해.)

아울러,
나는 금메달을 따지 못한 이들이,
조국과 국민들에게 죄송하다고 하는 후진 말,
그만 들었으면 좋겠어.
당신들 마음 모를 바는 아니나,
당신들은 아무 잘못도 한 것이 없거든.
그리고 우리가 해준 것, 국가가 해준 것 아무 것도 없거든.
부디 미안해하지 말아줘.
나는 당신이 흘린 땀을 믿어.
당신 스스로 충분히 자랑스러워해도 돼.
 

여하튼,
내가 살앙하는 이 여자, 장.미.란.
그 미소에 나도 그만 함박웃음 짓고 만다.
장미와 난을 합쳐 '장미란'이라 부르면 되고~
장미란장미, 여기 다 모였네~ㅎㅎ

그런디,
금메달 확정되고, 뒷끝이 좀 안 좋긴 하대.
중계 중간에 촌장관이 보이길래, 좀 혀를 차긴 했는데,
인사를 시키드만. 좀 한자리 한다는 사람들에게 미란을 데려가서는.
뭔가 고질병 같은 처세 아닌가.
감독이라는 양반이 시킨 건지 모르겠으나,
썩 보기 좋지 않은 광경이드만.
지금이 무슨 7080이냐. 쯧.

이 미친 세상에서 일컫는 '우승' '성공'과는 거리가 먼 사람살이의 나는,
그래서 오늘도 상큼하게 이 한마디 하고 간다.

대한민국 좆까라 그래~
아~ 씨원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