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내가 발 딛고 있는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디자이너, ‘카림 라시드’가 말하는 디자인철학

스윙보이 2008. 12. 28. 20:01

우연한 계기였다. 블로그를 서핑하다가, 발견한 이름. '필립 스탁.'
j3llyfish님의 '오빠가 돌아왔다'라는 블로깅이었다.
그는 (산업)디자이너'였'다.
과거형을 강조한 것은, 그는 지난 봄 2년 내 디자인계 은퇴를 선언했기 때문이다.
화폐와 그에 종속당한 디자인에 대한 환멸이 이유였다.
그리고선, 그가 들고 나온 것은 '초콜릿'이라고 했다.
디자인 하는 족족, 금광이 됐을 법한 산업디자이너의 업계 작별이라.
호기심을 끌법한 시츄에이션.

뭐, 쨌든 지금 말하고자 하는 바는 필립 스탁이 아니라,
그 이름에서 파생 된, 새끼를 친 다른 이름이다.

카림 라시드.
디자인에 아주 약소하지만, 관심을 가진 내게,
한국을 방문한 그의 강연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사실, 나는 '내 생을 디자인하고 있다'고 늘 씨불렁거리지만,
모른다. 디자인을.
재능만 따라준다면, 디자인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가지고 있지만,
역시나 문제는 재능이고.

카림 라시드의 강연을 가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어떤 우연이었다.
처음 듣는 이름에, 느닷 없는 클릭질에, 우연 찮게 걸린 강연이었음에도.
필립 스탁의 이름을 처음 접한 직후였다.
필립 스탁을 만나지 못했다면,
나는 이 강연에 굳이 갈 욕망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아니나다를까, 그는 필립 스탁이후 가장 주목받는 (산업)디자이너였고.
그의 형, 하림 라시드는 또한 주목받는 건축가였다.
(이 또한, j3llyfish님이 알려줬다.)
나는 이런 경험이 참 재미있었다.
우연이 새끼를 치고, 세계를 넓히게 되는.
세계는 이런 식으로 넓어질 수도 있다.

아래는 카림 라시드를 만난 11월24일의 기록이다.
카림은 정말로 간지좔좔.


지난 2005년에 나온 그의 책 『나는 세상을 바꾸고 싶다』도 그렇지만,
최근 출간된 『나를 디자인하라』는 꼭 읽어봐야겠다.^^
쓰레기통을 디자인하는 일과 인생을 디자인하는 일은 근본적으로 같다는 그말.
우리의 생활, 사랑, 일, 휴식을 디자인하라는 그말.
진즉에 우린 그렇게 '디자이너'다.^^
단, 그것이 아름다울 것!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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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을 창조하는 디자이너, ‘카림 라시드’가 말하는 디자인철학


디자이너’는, 아름다움에 예민한 촉수를 가졌다. 이에 토를 다는 사람, 별로 없을 것이다. 누구나 아름다움에 끌리는 본능을 지녔지만, 디자이너는 아름다움을 향한 끌림 이상의 성정을 지녔다. 아름다움을 만들어내고픈 강렬한 욕망 같은 것. 어쩌면 우리 일상은 아름다움을 향한 그들의 열정과 탐닉이 만들어낸 결과물일지도 모른다. 한번 둘러보라. 우리 곁에 있는 물건, 모든 꼴은 디자인된 무엇이다. 과장이 아니고, 우리 세계는 디자인의 산물이다. 디자이너는 고로, 세계를 만드는 하나의 주체다. 그 결과물이 늘 아름답다는, 모든 사람을 미혹시킨다는 보장은 없지만, 세상을 아름다움으로 채색하려는 디자이너의 욕망은 끝이 없다. 그래서 여기 이 말은 ‘참’이다. “디자이너는 사람들이 원하는지조차 몰랐던 재주를 보여야 한다.”(미국판 <보그> 편집장을 지낸 다이애나 브뤼랜드) 물론, 여기서 디자이너는 패션 분야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다.

그 재주를 가진 이 사람, ‘카림 라시드(Karim Rashid․48)’. 이른바 ‘팔방미인 디자이너’다. 다양한 생활용품 디자인 뿐 아니라 뷰티, 패션, 인테리어, 기업이미지통합(CI) 등 폭넓은 디자인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뉴욕에 거점은 둔 Karim Rashid Inc.의 대표로 30여 나라 400여 기업 등과 작업한 산업디자이너계의 블루칩이다. 지난 봄, “Design is dead”를 선언하며 2년 내 디자인 작업을 포기하겠다고 밝힌 필립 스탁(Philippe Starck)에 이어 론 아라드(Ron Arad)와 함께 가장 주목받는 산업디자이너인 그가 한국을 찾았다. 지난달 24일 서울 63빌딩에서 열린 ‘2008 한화세계명사초청강연회’ 참석차 방한한 그는 ‘세상을 창조하는 디자인’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가졌다.

‘디자인 민주주의’의 주창자

그는 이 자리에서 11년 전 주창한 ‘디자인 민주주의’부터 얘기를 꺼냈다. “산업혁명과 함께 시작된 디자인은 원래 만인을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디자인이 엘리트주의로 흘러갔다. 방향을 잘못 잡은 것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의 디자인 철학은 간결하다. 아름답고 저렴하며 실용적일 것. 그의 이 같은 철학은 ‘가르비노’휴지통에서 찾아볼 수 있다. 세계에서 900만개가 팔린 1만5000원대의 이 휴지통은 유려한 디자인에 쓰레기통, 꽃병, 우산꽂이, 가방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기존 휴지통의 개념을 바꿨다. “사물을 삶과 밀접한 것으로 만들어 사람들을 즐겁고 편안하며 안락하게 만든다면 그 삶을 격상시키는 것이 가능하지 않겠느냐. 디자인이 이 세계를 보다 나은 세계로 바꿀 수 있다. 서비스, 시스템, 도시, 인생 모두가 디자인될 수 있다.”

그는 디자인을 통해 세계에 기여하고픈 디자이너다. 2005년 국내에 출간된 그의 자전적 작품집 제목도 《나는 세상을 바꾸고 싶다(I want to change the world)》. 그는 디자인을 세계를 개선시키고 인간의 경험을 향상시키는 오브제로 여긴다. 이는 가난했지만 아름답고 비싸지 않은 것만 샀던 화가 아버지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디자인은 그것 자체로 철학이고 하나의 온전한 세계다. 자기완결성을 지닌 디자인은 세계와 조응한다. 라시드는 디자인을 이렇게 생각한다. “어떻게 만드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사물이 우리 삶을 어떻게 바꾸고,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알아야 한다.” 그의 이 같은 철학은 마찰을 빚기도 했다. 1990년대 초반 미국 로드아일랜드의 한 대학에서 해고됐던 이유가 그것이었다. 학교는 디자인 기능과 직능공에 가까운 제작능력을 가르치도록 요구했으나, 그는 디자인 철학과 이론에 중점을 뒀기 때문이다. 디자인을 그저 사물의 외피로만 인식한 까닭이었다.

‘캐주얼리즘’이 만드는 창의성

라시드는 현대 디자인의 콘셉트로 ‘캐주얼리즘(Casualism)’을 강조했다. “지금 시대에는 유연하고 소프트하며 경직되지 않으면서도 휴식을 주는 디자인이 필요하다. 지금은 캐주얼시대다. 사람들에게 안락감과 영감을 줘야 디자인도 생명력을 가진다. 캐주얼하다면 더 이상 획일화될 필요가 없다. 정신이 ‘캐주얼’하다면 사고가 자유롭고 꿈을 만들어갈 수 있다. 그것이 나의 이론이다. 사람은 모두 뛰어난 창의성을 갖고 있다.” 아이가 창의적인 것과 같은 맥락이다. 아이들은 자유롭다. 형식에 구애받는다는 것 자체가 무엇인지 모른다. 그 아이의 인식능력을 평생 가져갈 수 있다면 누구나 디자이너가 될 재주를 갖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 안타까움이랄까. 반대로 그것이 디자이너가 갖는 강점이기도 하겠지만.

그렇다면 디자이너는 어떤 사람일까. 라시드는 디자이너를 이렇게 정의한다. “주변 모든 것을 날카롭게 인식하는 사람.” 모름지기 예술가(디자이너)는 미래가 아닌 현재를 본다. 다른 사람들이 과거를 볼 때 그들은 현재를 본다. 그것을 통해 세계를 개선시키고 인간의 경험과 오감을 향상시킨다.

라시드는 지금의 전 지구적인 경제위기가 의미 있는 무언가를 창조하기 위한 기회가 될 것이란 기대감도 감추지 않았다. 자신의 로드아일랜드 학교에서의 해고 때와 비교해서. “이 경제위기에 안도감을 느낀다. 사람들이 더 현명해지고 인본주의적으로 돌아가서 자신을 돌아보지 않을까하는 기대감도 있다. 수익이 아닌 인간에게 좀 더 초점을 맞추게 될 것이다. 미국의 3대 자동차 회사가 파산위기에 놓인 것도 인간이 아닌 다른 것이 중심에 놓여있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디자인은 분명 하나의 전략이 될 수 있고, 역할을 할 것이다. 디자인은 창조적 활동이면서 동시대의 사회적 활동이기 때문이다.”

“아름다움이 필요하다”

라시드가 한국 사람들에게 받은 인상 중 하나는, 하나같이 검은색 옷을 입고 있다는 것이다. 틀린 말, 아니다. 우리는 원색에 대해, 컬러(Color)에 대해 관대하지 못하다. 가장 무난하다는 이유로, 어둡고 침침한 색깔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것, 아닐까. 라시드의 말은 충분히 감응할 만 했다. “컬러는 우리가 하늘로부터 받은 것이다. 분명 자연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고. 자연에는 모든 색상이 다 있다. 자연에는 컬러가 충만해 있다.”

그의 디자인은 핑크, 오렌지, 라임 등의 ‘캔디 컬러’를 주로 쓴 유려하고 아름다운 형태를 갖추고 있다. 이날 강연에서도 그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분홍색의 패션을 갖춰 입고, 프리젠테이션 배경도 분홍색으로 일관하는 미학을 보여줬다. 핑크에 대한 그의 생각. “핑크는 굉장히 긍정적이고 에너지가 충만한 색깔이다. 오늘날 세상이 더 컬러풀했으면 좋겠다. 전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었던 모바일 폰은 모토로라 레이저 핑크였다. 이것만으로도 사람들이 색상을 좋아한다는 것이 증명됐다. 사람들 모두 시각적 감각을 충분히 활용해야 하고, 다양한 색상과 소재를 활용해야 한다.”

아름다움. 그것이 더 절실하게 필요한 시대다. 신산하고 팍팍한 이 세계는 우리에게 갈수록 피곤하고 더 많은 것을 요구한다. 생의 윤기는 점점 메말라간다. 물질적인 것만으로 생을 구원할 수는 없다. 좀 더 아름다움에 민감해지고 섬세해지는 것이 필요한 이유. 파리의 아름다움 혹은 아름다움에 대한 한국과 프랑스의 문화적 차이를 설명하는 이런 얘기를 돌아보자. “파리 사람들은 불편한 것은 참아도 아름답지 않은 것은 못 참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아름답지 않은 것은 참아도 불편한 것은 못 참는다.”

물론 ‘파리가 아름답다’는 명제에 동의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겠다. 사대주의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고. 그러나 세계 각지에서 뿌려진 파리에 대한 로망과 예찬이 허투루 나온 것은, 분명 아닐 터. 19세기 중반 형성된 파리가 현재도 놀람과 감탄이 나오는 것은, 아마도 아름다움에 대한 파리사람들의 생각이 만든 것이 아닐까. 생각의 차이, 아름다움에 대한 인식의 차가 만든 현저한 격차. 탁월한 아름다움이 전제된다면, 놀라움과 매혹을 선사할 수 있다.

라시드 또한 아름다움을 강조한다. “20만 년 전, 5만 년 전에도 아름다움에 대해 광적으로 집착했었다. 아름다움은 내용과 표면이 일치하는 것이다. 위대한 그림을 봤을 때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은 캔버스 속에 숨은 생각과 의미, 철학이 있기 때문이다. 인간도 그렇다. 외면과 내면이 일치하고 조화를 이뤄야 아름다운 인간이 될 수 있다. (세계의) 모든 것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인테리어나 스킨 모두가 통합되고 조화를 이룰 때 아름다운 법이고. 아름다움이라는 주제에 관심을 가질 때다. 현명하고 지적이며 지속가능한 세계를 만들고자 할 때, 우리 경험도 더욱 풍요롭게 할 수 있다. 가령 이런 예를 들어보자. 8시간을 앉아 일해도 불편하지 않은 의자가 비행기 의자에서는 2시간만 타도 불편한 것은 서로 연결되지 못한 세계에 있기 때문이다. 조화롭게 연결될 때 우리는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애플, 그리고 스티브 잡스의 성공이 ‘아름다움에 대한 천착’에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스티브 잡스는 모든 제품의 중심을 아름다움에서 봤다고 하지 않던가. “미칠 정도로 멋진 제품을 창조하라, 아니면 우주를 감동시켜라.” ‘좋은’ 디자이너도 그렇다. 아름다움에 대한 섬세한 안목과 구현능력. 그들은 아름다움에 깨어있고, 그 아름다움을 위해 주변 모든 것들을 날카롭게 인식하고 반응한다. 그렇게 나온 디자인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고 세상을 사유하게 만든다. 이른바 선순환 구조가 형성되는 것이다. 라시드는 말한다. “영감은 살아있는 느낌을 갖는 것이고 정말 놀라운 것이다. 새로운 경험 하나씩만 느낄 수 있다면 진정으로 살아 있는 것이다.”

예술이 세상을 구원하리라 믿으며, 예술과 산업사회의 대량생산을 접목했던 디자이너 필립 스탁은, 자신이 디자인한 의자(들)가 세상을 구원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은퇴를 선언했다. 그는 세상을 '좋게' 변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었던 '시민'이다. 그 믿음대로 행동했다고 한다. 그러나 결국 그는 세상을 구원할 의자가 없음'을 깨닫고, 혹은 자신의 의지가 자본에 의해, 어떤 공고한 구조에 의해 왜곡되고 이용 당함에 신물을 내고, 더 이상 허식에 종사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필립 스탁의 행동에 분명 공감이 간다. 그럼에도 카림 라시드의 강연을 들은 내 가슴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하리라.'

[상상마당 매거진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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