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적 퇴폐와 고질적 순수의 공존
기형도는 봄이다...
스윙보이
2009. 3. 7. 02:04
죽고 나서도, 이십 년이 되는 해는 뜻 깊은가보다.
고 기형도. 요절함으로써 공고한 신화로 재무장된 시인.
1989년 3월7일 새벽, 이슬 맺힌 시간에 종로통에서 그는 싸늘히 식어있었다.
만 스물 아홉의 나이였다.
그날로부터, 20년이 흘렀고, 오늘을 기형도 20주기라고 부른다.
지금은 없어진 파고다극장.
종로의 그 부근을 지날 때마다, 나는 파고다극장이 있던 자리를 바라본다.
그리고 기형도를 떠올린다. 정작 그의 시는 잘 모르면서.
군대를 제대하고나서야 그의 이름과 존재를 처음 알았다.
그렇게 끌리던 시절 아니던가. '요절'이라는 치명적인 매혹에.
당시 우리에게 알려진 바로, 파고다극장은 극동극장과 함께 게이들의 아지트였다.
'호모포비아'에 사로잡힌 사회적 환경은, 그곳에 대한 유언비어와 왜곡된 정보만 나열했다.
그래서 나는 기형도 시인이 눈을 감았다는 그곳에 발을 디뎌보고 싶었지만,
결국 그 계획은 실행으로 옮겨지지 못한 프로젝트로 사멸되고 말았다.
죽은 기형도가 스무살됐다고, 그를 무덤에서 잠시 꺼내보고자하는 바람이 한창 불고 있다.
추모문학콘서트, 추모문집 발간 등등.
그는 늘 이맘때, 봄과 함께 온다. 봄바람 살랑살랑 문턱을 살짝 넘어올 때즈음.
기형도는 죽었지만, 그 죽음으로 만물을 소생시킨다.
기형도는 그래서, 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