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그리고 구라
5.18 광주민주화항쟁은,
졸렬하고 폭력적인 권력에 대항한 민중의 처절하고 빛나는 저항이자,
우리 역사가 품은 트라우마이며 민주화 운동의 고갱이이자 역사적 대사건이다.
그러나, 올해의 5.18은 한 문학대가의 어처구니 없는 발언으로 큰 상처를 입었다.
그곳에 자신의 문학적 뿌리를 두고 있다는 황석영의 얼척 발언이 가져온 파장.
그는 '광주사태'라는 말로 현재 자신의 입장을 커밍아웃해버렸다.
그는 단어 갖고 꼬투리 잡지 말라지만,
단순 실수로 간주하기엔 그의 변명이 너무 옹색하다.
더구나 그는 단어 하나하나에 세심하고 예민한 작가이며,
말 한마디 한마디가 어떤 파장을 미칠지 알만한 자리에 있는 사람이 아닌가.
어떤 사안이나 사건에 대해 어떤 단어나 용어를 쓰는지를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생각이나 철학을 갖고 있는지를 대략(전부는 아니다!) 알 수 있다.
가령 5.16을 군사쿠데타가 아닌 혁명이라고 일컫는 그런 것.
아니면'386'이라는 조어를 아무 생각이나 맥락 없이 쓰는 사람을 보면,
때론 짜증이 난다. 386은 심히 차별을 내포한 폭력적인 조어다.
황석영이 쓴 광주사태라는 단어 속엔,
그가 현재 광주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단초가 있다.
그의 김구라적 독설은, 자신의 문학적 성취는 물론 자신의 뿌리를 거부한 셈이다.
"해외 나가서 살면서 광주사태가 우리만 있는 줄 알았는데 1970년대 영국 대처 정부 당시 시위 군중에 발포해서 30~40명의 광부가 죽었고 프랑스도 마찬가지다.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사회가 가는 것이고, 큰 틀에서 어떻게 가야 할지를 생각해야 한다."
이게 과연, 우리가 알던 황석영이 맞나 싶다.
황석영의 문학적 성과와 가치를 폄하할 생각은 없지만,
그의 구라는, 이제 더 이상 민중성이나 역사에 뿌리내릴 수 없는 것임을 보여준 것 아닐까.
된장.
<<장길산>>에 열광하고 <오래된 정원>에 눈물 흘렸던,
과거의 나를 부정할 것은 아니지만,
왠지 지금에 와서 창작자와 분리된 듯한 소설들이 약간 뻘쭘해 뵌다.
스스로 진보주의자라고 자처했던 자의 구라적 자멸을 보자니,
늙으면 노망 들기 전에 죽어야지, 하는 농담까지 나오고.
물론 나이듦 여부와 상관 없이 생각하는 바가 달라진 것이 나쁜 것도 아니고,
그것 가지고 '나쁜 분'이라고 비난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진보나 보수와 같은 틀로 그를 단순 규정할 것도 아니고.
하지만 문학이자 인생 자체였다는 것을, 즉 스스로를 부정하면서,
올해로 29년을 맞은 5.18에, 그 희생과 유가족에 피눈물을 흘리게 한 것은,
대가답지 않은 처사이자, 헛발질이며 일종의 테러다.
오늘, 성년의 날을 맞은 친구들에겐 더 이상 황석영을 권하지 못하겠다.
씁쓸한 5.18의 단상.
한편으로 그의 이 사회적 자살은,
<박쥐>에서 상현이 신도를 성추행한 뒤,
자지를 덜렁거린 채 옷을 주섬주섬 입으면서 나오는 장면을 연상케한다.
물론 상현의 이 같은 행동은 다분히 의도적이었지만.
오늘 그나마,
홍대(인디신)의 여왕(유희열의 표현),
오지은을 만나 즐거이 노가리를 풀었다는 것이 유일한 위안.
그는 내 고향에서 잠시 살았고, 야큐를 좋아했다. 그는 LG팬, 나는 노떼팬.
아, 여왕은 역시나 그냥 된 것이 아닌가보다 싶었다.
여왕을 알현한 구라는 나중에~~ 기대하진 마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