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 정의(페어 푸드)

당신도 자본에 의해 조작된 먹거리에 오염돼 있지 않은가!

스윙보이 2011. 10. 26. 16:10

두근거린다. 오늘 서울시장 투표 결과가,

라고 하면 새빨간 거짓말이고.
 
누군가는 서울시장이 되겠지. 살은 맑고 투명하며, 날렵하고 예쁜 외모를 하고 있으나 내장을 싸고 있는 배 안쪽은 시커멓고 쓴 학꽁치 같은 인간(일본에서는 음흉한 인간을 학꽁치에 비유한단다!)이거나, 민중보다는 시민 근간의 운동을 전개해 온 시민단체활동가 출신이거나.

아니, 그럼 뭐가 두근거리나!
행여 박원순을 만나도, 이리 두근거리진 않을 것이다.
타고난 DNA대로 예쁜 여자면 다 두근거리니, 예쁜 여자일 것이라 생각하면 오산! 
예쁜 뇨자라도 용서가 안 되는 학꽁치 같은 인간도 있단다.

오늘 저녁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 선생님을 만나뵙는다. 막걸리 한 사발도 함께다. :)
얼쑤~ 좋을시고. 캬~~~

사람을 만나는 일이, 늘 이렇게 두근거리는 것이라면 참 좋겠다.
만나고 나서 두근거림이 있어도 좋고. 

물론, 사람을 만나는 일이, 늘 두근두근 쿵쿵일 순 없다.  
아무 감흥도 없는, 즉 두근거림이 없는 만남은 괜한 에너지만 빼는 짓이다.

많은 사람들은 쉽게 말한다. 사람을 좋아한다고. 만남을 좋아한다고.
허나, 나는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못한다. 사람도 사람 나름이지, 두근거림 없는 만남까지 좋아한다는 건, 글쎄. 1년에 한 번 만나도, 3년에 한 번 만나도, 어떤 만남은 늘 두근거림이다.  

어쨌든, 오늘 나는 두근거린다. 오늘, 만나러 갑니다~ 
투표결과보다 더 중요하고 두근거리는 만남이다. 

그런데, 황교익 선생님이 누구냐고?  
지난 19일, 황교익 선생님의 강연에 대한 나의 기록을 참조하시라.
원고 매수 제한으로 게재된 원고는 축약본인 셈이나, 아래는 원본이라고 보면 되겠다. 

이 글은, 먹는 것이 왜 정치이며, 투표가 중요한만큼 어떤 것을 어떻게 먹는지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기록했다. 물론, 학꽁치 같은 여인을 무조건적으로 지지하고 복무하는 계급이라면, 이른바 '브랜드'여야만 상품을 믿도록 길들여진 인간에겐, 씨도 안 먹힐 내용이겠지만.

핵심은 이런 거다. 어렵지 않다. 내가 먹는 게 어디서, 어떻게 온 것인지는 알자!
사실, 맛집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조미료로 인해 맛의 평등을 이룩한 마당에 맛집이 다 뭐란 말인가. 이 글은 어쩌면 맛을 잃어버린 도시에서, 삶의 미각에 묻은 씁쓸함을 다시게 되는 글이 될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알아라. 사는데, 먹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 있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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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도 자본에 의해 조작된 먹거리에 오염돼 있지 않은가!
『한국음식문화박물지』 황교익

커피를 한창 배울 때, 의아했다. 왜, 맛없는 스타벅스와 커피빈을 사람들은 숭앙할까. 여전히 다양하고 옹골찬 커피에 매료되고, 그런 커피 맛을 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으로서, 이젠 조금 안다. 황교익 선생 식으로 말하면, 한국인은 “브랜드를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은 막 만든 두부가 맛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브랜드 찍힌 포장두부를 먹는다. 하루키 표현에 의하면 “정상적인 인간의 사고”를 하지 않고 두부를 먹는 셈인데, 황교익 선생은 이렇게 일침을 놓았다. “한 브랜드에 의해 주도되고 있는 지금의 한국 포장두부 시장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한국인은 두부의 맛보다는 두부의 포장지에 찍힌 브랜드를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이다.”(『한국음식문화박물지』, p.202)

한 맥주CF 카피를 인용하자면, “커피 맛도 모르면서”, 많은 이들이 커피를 마신다. 실은 스타벅스를 마시고, 카페베네를 마신다. 혹자는 문화가 어쩌고저쩌고 할 것이다. 개뿔이다. 스타벅스의 참모습을 알면, 그런 소리 안 나온다. 한 예를 들까? 스타벅스 공동설립자이자 회장인 하워드 슐츠는 이리 말한다. “우리는 서로를 파트너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런 말도. “모든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그런 기업을 키워 내고 싶었다.”

우선, 파트너라고 부르는 사람들에 대한 예우를 보자. 해외의 경우인데, ‘스냅셔터’라는 암행 감시원이 있다. 한 달에 한 번 매장에 와서 본사 규칙대로 행하는지를 상부에 보고한다. 문제는 늘 바쁠 때만 오고, 꼴찌를 하면 구조조정 된다. 더 큰 문제는 스냅셔터 대부분이 지점 운영과 시스템을 모르는 대학생이다. 

또 스타벅스는 학생노동자 노동계약서의 주당 근무시간을 19.45시간으로 한다. 이유가 있다. 의료보험에 가입해야 하는 의무기준이 20시간이다. 15분이 모자란다. 꼼수 아닌가? 아울러 스타벅스는 정기적으로 각 지점에서 활동하는 노조원을 해고한다. 오죽했으면 세계산업노동자동맹의 회원들이 스타벅스 지점 앞에서 전단을 나눠 줬을까!

스타벅스, 공정무역 커피를 사용한다고 내세운다. 2008년 말, 스타벅스는 현재 5%에 달한 공정무역 커피 비율을 10%로 올리겠다고 발표했다. 2008년 스타벅스는 전체 매출의 0.02%를 커피 농민에게 기부했다. 이를 통해 얻은 홍보가치는 훨씬 높다. 마케팅의 승리다.

한국의 다른 브랜드 커피전문점이라고 다르진 않다. 얼마 전, 문제가 된 주휴수당(일주일에 6일을 근무하면 하루를 쉬더라도 휴무일 몫으로 지급해야 하는 수당)이 대표적이다. 그들은 주휴수당을 착복(!)하다가 고발, 조사 등이 이어지자 뒤늦게 이를 지급했다. 한국의 원두커피 시장을 주도한다는 브랜드 커피전문점들의 행태다. 당신이 지불한 커피 값, 커피생산자, 바리스타 등에게 고루 분배되지 않는다. 대기업 자본의 주머니만 채운다. 커피의 눈물이다. 

물론 커피 한 잔을 마시기 위해 그 모든 것을 알아야 할 의무는 없다. 허나 이 말은 새겼으면 좋겠다. “먹는 것이 정치다.” 의아할지도 모르겠다. 먹는 것에 왜 ‘정치’를 갖다 붙이나. 대형마트의 ‘통큰’시리즈가 있었다. 많은 소비자들이 값이 싸다는 현상에 집중했다. 이면은 결코 저렴하지 않았다. 이 말을 들어보자.

그들은 자신에게 유리한 정치적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그들에게 이득을 주는 먹을거리에 탈정치적인 포장을 한다. “서민들이 먹기에 합리적으로 싸다”는 것이다. 싼값으로 만들기 위해 빠져나간 돈이 결국은 농민과 노동자의 피땀임을 그들은 숨기고 있는 것이다.(『한국음식문화박물지』, pp.275~276)

지난 19일의 가을밤, 서울 홍대부근 가톨릭청년회관에서 『한국음식문화박물지』(따비 펴냄) 저자이자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의 수요악식세설이 열렸다. ‘한국음식문화, 한국인의 음식문화’를 주제로 한 강연. 우리는 제대로 먹고 있는가, 먹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우리의 사유를 자극하는 시간.

음식은 과연 문화인가


황 선생은 우리의 음식문화 판에 각성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따라서 책을 계속 낼 계획이다. 그는 기본적으로 ‘내가 갖고 있는 감각에 충실하자’는 생각을 갖고 있다. 강연을 듣는 사람들에게 이 말을 건넨다. 이 세상에 진리는 없다. 개개인마다 일리가 있을 뿐이다. 무리한 말만 하지 않으면 된다. 이날의 얘기나 책도 일리로 알아줄 것을 먼저 당부한다. 

그는 ‘음식문화’에 대해 우선 언급한다. 많은 이들이 음식문화라고 하면, 조선 음식을 먹거나 이야기하고, 고급레스토랑에서 폼을 잡아야 문화행위를 하는 양, 인식한다. 그는 이것을 비판한다. “실제 우리 삶에서의 음식이 진짜 문화다.”

네가 좋아하는 음식을 말하면, 네가 어떤 사람인지 말할 수 있다.

그는 이 말이 맞다고 말한다. “술자리에 3~4명이 앉아 좋아하는 음식을 말하라고 했을 때, 즉시 그 사람을 알 수 있는 건 아니다. 언제 처음 먹었고, 누구와, 누가 해 준, 어떤 기억이 있는지 물으면 근원에 있는 욕구 등이 드러난다. 자꾸 이야기하다보면 대부분 운다. 깊은 추억이 나온다. 애인, 남편, 아내에게 한 번 시도해봐라. 자기도 알지 못한 뭔가가 나온다.”

먹는 것을 보면, 출신지, 가족관계, 가정환경, 성격, 학력, 경제력 등이 나온다. 개인의 기호 안에 고유한 무엇이 포진해 있는 것이다. 기호가 그런 것에 의해 만들어지기도 한다. 개인의 기호가 뭉치면, 공통분모가 생긴다. 그것이 집단의 기호다.

“집단의 기호가 만들어지는 안에 음식습관․예절이 만들어진다. 이런 집단 기호에 경제사회적 요소 등이 영향을 미친다. 기호는 집안→문중→생활문화 공유지역→정치경제공유지역 등으로 확대될 것이다. 음식문화의 출발점은 개인의 기호인데, 문화라는 것이 따로 뭔가 있는 게 아니라 나한테서 비롯된다.”

헌데, ‘음식문화’라는 말을 꺼내면, 많은 이들이 전통음식부터 이야기한다. 문화의 전통이 먼 곳에서 내려왔고, 전통음식 안에 문화의 흐름이 있을 것이라고 상정한다는 거다. 황 선생은 10여 년 전 한복선 궁중요리연구가가 책을 내면서 했던 말(“아름다운 우리 음식은 점점 잊혀져가는 반면 뼈다귀해장국, 부대찌개, 쇠머리국밥 등 국적불명의 경박한 음식들이 우리 식탁을 대신하는 현실이 안타까웠다.”)을 꺼내고 이리 덧붙인다.

“안타깝단 말이 측은하다는 뜻 같은데, 일상에서 흔히 먹는 음식을 경박하다고 붙일 정도로 궁중음식, 전통음식을 하는 사람이 우월하다는 듯 말하는 것은 화가 난다. 한식세계화도 이런 것과 같다. 문화부장관이 된장찌개를 호텔에서 팔지 않는 게 좋겠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그들은 문화가 일반인들의 문화가 아닌 저 멀리에 있다고 상정한다.”

정부에서 만든 한식세계화 책(『아름다운 한국음식 100선』)을 보면, 표지에 신선로가 있다. 그리고 조선시대 궁중음식이 전통이고 문화인 것처럼 말한다. 황 선생은 이를 비판한다.

“신선로나 부대찌개나 같다. 하나의 음식 형태를 놓고 전통이라고 할 수 없다. 신선로가 전통음식이라면, 신선로를 있게 한 집단이나 공동체, 사상 등 모든 게 들어가 있어야 한다. 한국음식에선 탕 문화가 전통의 하나인데, 부대찌개도 신선로와 같이 탕이다. 햄, 소시지 등의 외래 식재료가 들어왔지만 음식을 만드는 형태는 전통을 잇고 있다. 그래서 부대찌개는 전통음식, 흔히 먹는 전통음식이다. 국적불명, 아니다.”

문화란 대체로 소재의 유사성에 있다기보다 그 최종의 소비 양태에 따라 분화 또는 분류되는 것임을 이 부대찌개가 잘 보여 주고 있다.(p.189)

그는 외려 신선로가 국적불명이란다. 대만이 한국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한 리플렛의 메인 사진으로 신선로를 쓰고, 인도네시아, 태국에도 신선로가 있다. 청나라 왕조도 신선로를 중요한 식기로 쓰는 등 중화문화권의 민족들은 신선로 문화권이다. 내용물은 차이가 있겠으나 신선로는 아시아의 그릇일 뿐, 한국의 그릇이나 한국의 음식이라고 할 순 없다는 것이다.

한국 외식업은 어떻게 전개되었나


조선시대엔 외식문화 자료가 없다. 왕가가 끊임없이 민중을 수탈한 역사였던 까닭에 민중이 문화를 만들 수가 없었다. 먹고 살기 바쁘고, 굶주림에서 벗어나는 게 급선무였다.

그 가운데, 주막의 형태가 지금도 조금씩 남아 있다. 재래시장 국밥집에 가면, 주모가 있고, 손님이 오면 국밥을 넘기는 형태가 주막의 것과 비슷하다.

대한제국에 들어서 근대적 의미의 외식업이 형성됐다. 손탁호텔에 레스토랑이 생겼고, 화상이 인천에 음식점을 차렸다. 일제강점기에 외식산업에 대한 기본모양이 만들어졌다. 한정식, 백반, 선술집 등 지금 볼 수 있는, 일본과 우리 것이 결합한 외식업 형태가 나타났다.

해방 이후 일제에 의한 외식업 형태가 깨지고, 한국전쟁 이후 미국의 잉여농산물, 특히 밀가루가 들어오면서 생계형 외식업(좌판, 행상)이 생겼다. 경제개발과 함께 한 이농현상으로 도시에서 외식문화가 본격적으로 만들어졌다. 도시노동자의 ‘밥집’이 번성했고, 집에서 먹는 음식을 외식으로 파는 백반도 이때 등장했다. 

“한국 외식업체의 독특한 호칭인 이모, 고모가 있다. 주인은 손님에게 아들, 조카 대하듯 욕도 하고 살갑다. 그런 독특한 문화는 상품을 팔기보다 집에서 먹던 것을 내놓는다는 생각에서 비롯됐다. 타향살이 하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밥 한 끼 먹인다는 생각이었던 거지.”

음식이 집안의 음식이니 식당의 아주머니들도 손님을 가족 맞듯이 하였다. 손님들도 대부분 고향을 떠난 노동자여서 백반을 자신의 집안음식처럼 여겼고, 그 음식을 내는 아주머니들을 어머니, 할머니, 이모처럼 여겼다.(p.27)

그런데 이것이 외식문화가 발전하지 못한 이유였다고 황 선생은 지적했다. 서비스 정신이 없었고, 받은 돈에 대해 음식의 맛과 질을 보장하지 않고 대충했던 것이다. 그러다 1980년대 들면서 급격한 변화가 일어났다. 1979년 서울 소공동에 생긴 롯데리아. 패스트푸드가 처음 들어섰고, 자본 중심의 음식점 형태가 나타났다. 

영양, 전통, 향수의 소비 시대

황 선생은 국내 외식업계의 열쇳말로 영양, 전통, 향수를 들었다. 우선 영양. 햄버거는 1970년대 정부에서 권장한 영양건강식이었다. 그러다 1980년대 후반, 햄버거는 정크푸드가 됐다.

“식품영양학계가 똑같은 음식을 두고 달리 말했다. 식품영양학자 말은 믿으면 안 된다. (웃음) 영혼이 없는 학자들이다. TV에서 브로콜리가 건강에 좋다하면 다음날 브로콜리가 동난다. 영양에 이렇게 집착하는 민족이 없다. 몸에 아무리 좋아도 수분이 90% 넘는다. 몇 가지 영양이 골고루 들어가 있는 음식을 먹는 게 맞지, 하나만 그리 먹는 건 아니다.”

전통에 대해선, 한정식을 들었다. “한정식의 상차림 기본은 다 못 먹게 하는것이다. (웃음) 태생이 요정 음식이다. 접대의 음식이다. 당신을 위해 음식을 허비할 정도로 신경 썼소, 하는 거다. 솔직히 한정식은 미개한 것이다. 전통이라 생각하는 것 중에는 합리적이지 못하고 맛있게 음식을 못 먹게 한 것도 많다. 이것을 쥐고 있으면 안 된다. 한정식, 없애야 한다.”

향수는 1981년 국풍행사를 들었다. 광주를 잊게 하려고 전두환이 행했던 쇼. “전국 향토음식이 대거 올라왔다. 타이밍이 적절했다. 60~70년대 서울 와서 타향살이하는 사람들이 고향음식에 향수를 느낄 때였다. 지역 음식과 풍물을 통해 애향심을 자극했다. 전두환의 기획만 아니었다면 이런 행사는 자주 하는 게 좋다. 향수에 대한 소비가 80년대 만들어진다.”

황 선생은 이 세 요소의 조작 가능성을 들었다. 식품학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영양, 구분도 안 되는 음식에 붙이는 전통, 지자체 혹은 업자의 마케팅 차원의 향토음식. “실체를 알고 먹는가, 모르고 먹는가는 큰 차이가 있다. 누군가 조작한 것을 먹는 건, 온전하게 자기 삶을 사는 게 아니다. 그래서 어떤 이야기가 있는지 생얼로 보자는 것이고, 책을 쓴 이유다.”

자본의 조작, 정치와의 결합

가장 심한 조작의 실체로 든 것이 자본이다. 자고로, 식품은 맛있고, 윤리적이고, 정상적인 마케팅으로 나서야 한다. 그러나 포장만 그런 경우, 대다수다. 대부분 대기업의 식품이 그렇다고 황 선생은 주장한다.

풀무원을 예로 든다. 자연, 위생, 건강, 환경, 유기농 등 풀무원을 둘러싼 이미지다. 창업자인 고 원경선 이사장의 이미지도 이에 거든다.

“원경선 이사장을 존경하나, 풀무원은 그 존경심과 관계없이 원경선 이사장을 이용한 나쁜 집단이다. 풀무원 매출액의 절반이 두부인데, 그 두부가 한국의 식탁에서 가장 나쁜 음식을 만든 원흉중 하나다. 두부는 금방 만든 것이 가장 좋다. 그런데 풀무원이 딴죽을 걸었다. 80년대 중반 보름 정도 유통기한을 지닌 포장두부를 만들어 전국에 유통했다.”

플라스틱 용기에 물과 함께 담겨 있는 두부를 먹는다.… 하루키 식으로 말하면 “정상적인 인간의 사고”를 하지 않고 두부를 먹는 것이다.(p.201)

두부에 더운물에 넣으면 맛이 간다. 그런데도 고소한 맛이 나는 이유는, 해바라기씨유 때문이다. 포장두부의 고소함은 해바라기씨유의 것이다. 두부의 고소함이 아니다. 황 선생의 표현에 의하면, 가짜 맛 두부다. 문제는 또 있다.

“풀무원이 자기 공장에서만 생산하면 봐주겠다. 그러나 2개를 제하고 스물 몇 개 하청기업이 만든다. 그래서 전국에 뿌릴 수 있다. 대기업이 가진 전형적인 형태다. 소규모 두부공장을 다 죽이면서, 건강, 환경 등을 이야기한다. 소비자가 맛있는 두부를 먹을 권리도 다 죽이고. 좋은 이미지를 지닌 업체조차도 이런 조작을 한다. 원경선 이사장의 원래 뜻과도 멀다.”

김치의 경우다. 일본 사람은 ‘김치’라고 읽지 못한다. 기무치다. 그러나 한국인은 김치라고 읽지 않는다고 타박한다. 반대의 경우다. 일본의 다쿠앙은 무를 말려서 절인다. 한국의 단무지는 생무를 사용해서 다르다. 일본 사람들은 그러나 단무지를 보고, 시비 안 건다.

“음식문화는 이동․전파하면서 먹는 사람이 제멋대로 부르고 먹으면 된다. 그런데 우리는 ‘김치’로 읽으라고 강요한다. 일본 사람들 따라할까? 따라할 일 없다. 그러면 얻는 것은 뭘까? 애국심 마케팅은 한국 식품에서 가장 흔하게 일어난다. 어디에 뭔가를 수출했다고 애국심을 끊임없이 자극한다. 그걸 긍정하지 않으면 매국노 취급당하는 분위기다. 자본이 건드리는 부분이 건강, 애국 등이다. 속을 보면 소비자의 주머니를 털어내려고 이렇게 이용한다.”

김치에 대한 이 민족적 자부심은 권력자들이 정치적인 효과를 얻기 위해 조성한 측면이 다분히 있는데, 여기에 대해 한국인이 큰 반감을 가지지 않는 것은 김치로라도 세계에서 주목받고자 하는 민족적 열등감이 일부 작용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p.136)

이 조작의 카르텔에 정치도 빠질 순 없다. 정부가 자본 대신 마케팅을 해 주는 경우다. 정부 예산으로 전시회를 열어주고 쇼도 해준다. 황 선생이 든 예는 서울떡볶이페스티벌이다. 떡볶이연구소가 차려졌고, 첫해였던 2009년, 70억 원 이상의 예산이 투입됐다.

“떡볶이 세계화는 일반인과 아무 관련이 없다. 우리는 여전히 맵고 짜고 단 고추장떡볶이를 먹는다. 그런데 떡볶이연구소는 정부 돈으로 뭔가 열심히 한다. (웃음) 한식세계화를 한다고 모인 위원회 면면을 보면 다 프랜차이즈 사장들이다. 외국에 점포 세웠다고 치킨 프랜차이즈 사장도 들어가 있다. 정부가 한식세계화와 관련된 업체를 지원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한국인은 여전히 고추장떡볶이를 열심히 먹고 있으며, 또 누군가 떡볶이 세계화를 외치면 환호할 것이다. 한국인은 자신이 즐겨 먹는 음식을 직시하지 못하는 버릇이 있다.(p.172)

먹는 것이 정치인 이유다. 자본과 정치는 끊임없이 야합하고 결탁하면서, 먹거리(의 유통과 소비)를 조작한다. 이런 신성동맹 구조는 어떤 현상을 낳을까. 황 선생 왈. 자본들이 끝없이 식당을 운영․유지할 수 있게 만든다. 그들은 혀를 놀려 소비자들을 낚고 주머니를 채운다. 

“한 달에 한 번 식품대기업 CEO들이 모여 조찬을 한다. 무슨 얘기를 하냐. 먹는 식초 만들었던데, 우리 같이 개발하자, 이런다. 경쟁하는 것 같지만, 한 통속이다. 자기들끼리만 잘 먹고 잘 살려는 구조다. 중소업체, 절대 못 들어간다. 밀다원이라는 우리밀 전문기업이 시장을 넓혀나가다가 메이저 6개의 협공과 견제에 부도났다. 결국 제분공장은 삼립으로 넘어갔다.”

황 선생은 한탄한다. 소규모로 정직하게 뭔가를 하려고 들어가는 건 불가능하다고. 가령, 지금 대기업만 하는 식용유도, 좋은 기술을 지닌 소규모 회사들이 있으나 그들은 시장에 진입 못하고 있단다. 소비자들은 좋은 식용유를 먹을 수 있는 기회를 자본에 의해 뺏기고 있다.

“한식세계화도 대기업 식품회사 지원책이다. 일반과 아무 관계없다. 일반식당 음식의 질 개선에 대한 예산은 하나도 없다. 우리 일상에서 가장 필요한 것을 정부에선 할 생각이 없다.” 지금-여기의 우리에겐 국가가, 정부가 없음을 먹거리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정치는 먹는 것을 나누는 행위이다. 누가 더 먹고 누가 덜 먹을 것인가, 누가 좋은 것을 먹고 누가 나쁜 것을 먹을 것인가가 정치에 의해서 결정된다. 그러나 한국인은 먹는 것이 정치적인 일과 관련이 없는 듯이 여긴다. 심지어 음식을 먹는 데 골치 아픈 정치 이야기는 하지 말라 한다.(p.274)

한국에서 음식을 먹는다는 것


황 선생이 책의 마지막 챕터를 ‘정치’로 한 것은 이런 이유다. 우리가 먹는 것이 자본과 정치에 의해 조작되는 것에서 벗어나게 해야 한다. 그것을 벗어나게 하려면?

“지금과 같은 정부의 행태는 아니다. 투표할 때 잘해야 한다. (웃음) 개인의 것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큰 구조에서 자본과 정부가 결탁해 잘못된 인식을 주는 것에서 벗어나려면 개인의 각성이 있어야 한다. 들리는 이야기만 듣고 흘러가면 똑같이 흘러간다. 내가 먹는 것이 무엇인가, 내가 뭘 먹고 살지? 하는 것. 내 삶에 대한 주체적인 인식이 필요하다.”

먹을거리에 대한 당신의 작은 선택이 땅을 사랑하고 축복된 가족의 행복과 연결되고 지역의 진실한 농가와 식품기업을 응원하고 건강한 아이들, 활력 있는 사회실현에 연결됩니다.(『잘 먹겠습니다』, p.93)

그는 취재를 갈 때, 위성사진으로 산, 계곡, 들을 먼저 본다. 자연환경을 파악하기 위함이다. 위성사진을 통해 땅이 갖는 생태적 조건이 보이고, 그곳 농산물이 어떤지 감이 잡힌다.

“맛있는 농산물이 나고, 재배가 잘 되는 지역의 공통점이 있다. 북으로는 산이 싸고, 남으로는 강이 나 있는 곳. 먹는 것이 자연에서 오는 것임을 알고, 땅을 다시 봐야 한다. 내가 먹는 게 어디서 온 것인가 알면, 자연이 어떻게 나에게 오는지 느낌을 가지게 되는 날이 온다.”

음식은 자연에서 온다. 흙과 물에서 자라는 식물과, 그 식물을 먹고 사는 동물, 또 그 동물을 먹고 사는 동물들이 인간이 먹는 음식의 재료이다. 따라서 모든 음식은 그 음식을 만들고 먹는 지역의 자연을 담고 있다.(p.12)

물론, 그 느낌은 현장에 자주 가봐야만 느낄 수 있단다. 그렇게 가다보면, 한반도에 살고 있는 내가 무엇을 먹고 살고 있는가에 대한 주체적인 인식이 가능해진다는 것이 황 선생의 조언이다. 먹거리를 통한 존재의 확인. 

커피 만드는 사람인 나는 황 선생(의 말씀)을 감히 지지한다. 무엇을 먹을 것인가를 고민하고, 내가 먹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아는 것, 그것이 우리의 생의 감각을 깨우고, 우리를 삶의 주체로 서게 만들 거라고 믿는다. 그것은 가깝게는 좀 더 좋고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만들고, 멀리는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길로 인도할 것이다. 

최근 이춘호 영남일보 기자는 ‘맛집은 없다’고 선언하면서 맛집 소개 코너를 접었다. 대기업이 반제품형 먹거리를 지천으로 토해내고, 반제품 식재료는 조미료에 범벅된 현실. 숱한 파워블로거가 맛도 모르면서 맛집 운운하고, 각종 가이드북과 포털은 맛집 인플레이션을 조장하기 때문이다. 맛의 평등이 이뤄졌다. 맛집 천국이다. 주방의 찬모들은 기자에게 이리 말한단다. “이렇게 화학조미료를 퍼붓는데 손님이 몰려드는 걸 이해가 안 되네. 참 이상하지.”

맛의 주체성을 잃어버린 탓이다. <트루맛쇼>가 지적했듯, 자본이 장악한 미디어에 속고, 화학조미료가 지배하는 음식에 길들여졌다. 이 기자는 “동태, 황태, 북어, 삼계탕, 대구탕, 복어탕, 추어탕의 국물맛이 동일해진 슬픈 세상이 도래했다”고 한탄했다. 그는 “감칠맛은 ‘자연의 맛’이 아니다.… 이제 그만 맛있는 식당을 예찬하자. 맛있는 식당은 얼마든지 조작을 통해 만들 수는 있다. 하지만 제대로 된 요리는 마음이, 정성이 양념으로 들어가야만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한국전쟁 이후 급격한 도시화를 이루면서 저급한 음식재료를 구할 수밖에 없는 도시의 한국인들이 그 재료의 맛을 숨겨 먹을 만하게 조리하기 위하여 고춧가루를 과다하게 사용한 것은 아닌가 추론할 수도 있다. 고춧가루에 설탕, 소금 이 셋만으로도 웬만한 음식은 먹을 만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p.139)

양심적이고 우직한 식당과 함께 개개인의 각성도 필요하지 않을까. 이렇게 다짐하는 개인들 말이다. ‘나는 새로운 사회를 꿈꾸고 이제부터 먹을거리를 진지하게 선택하겠습니다.’(『잘 먹겠습니다』, p.100) 다시 되새김질한다. 먹는다는 건, 먹혀지는 셀 수 없이 많은 생명의 응원을 받아 힘껏 사는 것이다. 참 고맙고 미안한 일이다. 먹는다는 건. 

먹는다는 것에 대해 묻고, 듣다(Q&A) 

개인이 각성해야 한다고 했다. 오염된 현실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뭔가?

적극적으로 하는 사람은 생협을 이용한다. 나는 되도록 동네 두부집을 가고, 두유를 산다. 동네를 뒤지면 두부를 직접 만들어 파는 곳이 있다. 대기업 두부와 동네 두부는 똑같다. 위생이 조금 다를 순 있어도. 작은 곳이라고 거부할 필요는 없다. 적극적으로 찾아야 한다.

노동의 가치를 중시하고 자본의 의해 기획되는 먹을거리를 거부하는 소비자도 있다. 이런 소비자는 자신이 먹을 음식이 누구에 의해 생산이 되고 어디에서 왔는지 따진다. 자신이 지불하는 돈이 그 먹을거리를 생산하는 농민과 노동자에게 잘 전달되는지도 알아본다. 공정무역이니 공정거래니 하는 먹을거리 유통 형태가 이런 것이다.(p.275)

한국음식이 더 달달해진다. 문화적인 현상인가? 자본의 조작인가?

입맛이 대개 달고, 맵고, 짜고 세 개인데, 원재료 맛을 속이는 방법으로 그만한 것이 없다. 적당히 달고, 맵고, 짜면 재료에 관계없이 먹을 만하다. 이젠 별 생각이 없어진 거다. 소비자의 잘못이다. 나도 외식하는 것 너무 싫다. 너무 달고 짜고. 일반인 미각이 오염돼 있다. 드러내야 한다.

소비자의 잘못된 미각이 첫째라면, 둘째, 외식업체들이 이를 바로잡을 생각이 없다. 좋은 식재료를 써도 맛없다는 소릴 들을 수 있고, 그렇게 망해나간 집도 많다. 내가 맛있다고 해도 망한 집 많다. (웃음) 화학조미료도 없고, 단맛, 짠맛이 약해서 뭐 이러냐고 할 수도 있는데, 그건 정직한 음식이다. 그런데도 사람이 잘 안 갈 수 있다. 소비자 각각이 그걸 알고 벗어나려고 노력하고, 단맛에 중독돼 있음을 주변에 얘기해야 한다.

최근 전통주에 대한 관심이 많다. 대기업도 진출을 많이 하고 있는데, 어떻게 보나? 

대기업에 몰아주기 하는 거다. 지방에 가면 국순당과 국순당 계열 막걸 리가 다 깔렸다. 지역 막걸리를 다 죽이고 있다.

몇몇 통합된 브랜드를 만들려는 움직임이 있는데, 나쁜 거다. 대자본이 만든 것과 지역에서 만든 막걸리가 차별화돼야 하는데, 그렇게 못하고 있다. 제조방법의 차이가 없다. 맛 분별력도 없고. 지역 막걸리를 보호하자는 여론이 만들어지려면 특색 있는 막걸리가 있어야 하는데, 그게 없어서 애매하다.

대자본의 막걸리 사업은 좋지 않다. 두부와 같다. 대한민국엔 두부공장이 1500여개다. 일본은 동경도에만 2천개고, 커버하는 브랜드도 없다. 1~2명이 두부공장을 운영하는 곳도 많다. 그런 곳이 15%를 점유한다. 일본과 우리에게 두부는 같은 음식인데, 산업에선 그런 큰 차가 있다. 일본은 지역에서 하는 건 대기업이 못하게 방어막이 있다. 한국도 그리 해야 한다.

먹을거리를 선택하는 문제가 비정치적인 일인 듯이 여겨지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있다. 지금의 먹을거리 유통으로 이득을 보는 사람들이다. 2010년대 한국의 상황에서 보자면, 재벌 중심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적 강자로 군림하는 사람들이 그들이다.(p.275)

식물성 식용유가 돼지기름보다 나을 게 없지 않나? 돼지기름 나쁘다고 없앤 건, 식용유 회사가 조작한 건가?

돼지기름처럼 맛있는 기름이 없다. 예전 중국음식엔 돼지기름을 썼는데, 지금 다 없앴다. 동물성기름이 나쁘다고 주입시켰다. 식용유 회사들이 식품영양학자와 짜고 한 짓이다. 기름도 대기업에서 만든 가공의 것을 먹어야 몸에 좋고 위생적인 것처럼 만들었다.

삼양사가 공업용 우지로 망했다. 그 보도를 한 사람은 사과해야 한다. 공업용 우지는 아무 해가 없다. 그 사건으로 공업용 우지, 동물성기름이 나쁘다고 퍼졌고, 더 나쁘고 맛없는 팜유가 판을 쳤다. 팜유 라면이 지금도 있다. 언론도 문제고, 제대로 된 정보를 차단하는 것이 너무 많다. 그래서 소비자가 판단하기에 너무 힘들다.

최근 천일염 농약 사건과 관련해서도 정부가 장난쳤다. 그건 맹독성 농약 천일염이다. 정부는 그 일대 천일염을 차단시켜 전수조사 해야 한다. 그게 할 일인데, 속인다. 왜냐. 천일염은 정부 주도의, 전라도에 혜택을 주려고 만든 유일한 산업이라 정치적으로 막기 위해서다.

한국에서는 음식을 두고 여러 정치적 활동이 벌어지는데, 천일염이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p.141) 

식품에서 가장 큰 적이, 지금은 정부와 자본이다. 두 개는 결탁돼 있다. 한국에서 식품은 미각 행복도가 높아질 수 있을 정도의 다양한 식재료를 쓸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몇몇 대기업이 쥐고 있어서다. 대기업이 식품을 주도하니, 먹는다는 것의 다양성이 위협받고 있다.

한국 사회는 거대 자본이 시장을 완전히 잠식하여 영화관에서 먹는 음식 하나에까지 이것 먹어라 저것 먹지 마라 하고 간섭을 한다. 영화관이란 겉은 세련된 문화의 공간이지만 그 안은 영악한 속물들이 소비자의 주머리를 강탈하기 위해 꾸며 놓은 공간이다. 팝콘이 표상하는 세련된 미국적 삶이란 대체로 이런 것이다.(p.261)


음식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며, 궁극적으로 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오늘, ‘내가 먹는 게 나다’, 라고 하고 싶었다. 근대 이전, ‘밥이 하늘’이라는 해월 선생의 이야기가 있었다. 밥 한 그릇에 천지인이 다 있다는. 지금 우리는 만들어지고 가공된 음식을 먹는다. 생산지와 떨어진 삶에서, 음식이라는 것이 뭔가 정리를 해보니, 내가 먹는 게 나다, 좋고 바른 것을 먹으면 좋고 바른 내가 될 수 있다. 그런 생각을 갖고 있다.

그렇다면 뭘 할 것이냐? 이런 갑갑한 현실에선 정책 입안자나 그런 자리를 쑤실 수 있는 자리에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영향력을 키워야 한다. 그렇게 작정한 게 4~5년 흘렀다. 블로그도 영향력을 키우기 위한 의도가 강하다. 그래서 바꿔보고 싶다. 최종 목적은 식품의 생산수급 시스템을 바꾸는 그런 일을 하고 싶다. 식품과 관련한 좋은 생각, 좋은 먹을거리를 먹을 수 있는 구조를 만들 수 있는 곳에서 아이디어 내면서 일 하고 싶다.

음식에 대해 글을 쓰고 싶은 후배들에게 조언을 해준다면?

어떤 글쓰기든 기본은 같다고 본다. 글을 쓰는 것 자체가 수련 과정을 거쳐야 한다. 글을 잘 쓴다는 소릴 들었는데, 처음 회사에 들어갔는데, 글에 빨간 펜이 좍좍 그어진 거다. 충격을 받고, 고등학교 문법책을 샀다. 너무 어렵더라. 다시 중학교 문법책을 사서 읽었더니 사흘 만에 이해가 되고 고등학교 문법책을 다시 보니 석 달 걸리더라. 이후 국어교과서를 꼼꼼하게 봤다.

그 후 온통 세상에 비문만 보이는데, 굉장히 고통스럽더라. (웃음) 문장을 쓰는데, 이게 비문이 아닐까, 걱정돼서 밤을 꼬박 새고, 파지는 쌓이고. 3년 정도 하니까, 내가 쓰는 문장이 비문인가, 문법에 맞는가를 의식 안 하게 됐다. 어느 순간, 와 있더라.

문장에 대한 기본기가 제일 첫째다. 그런 뒤, 관련되는 잡다한 지식을 섭렵해야 한다. 닥치는 대로 읽어야 한다. 잡학이어야 한다. 기자는 아는 척 하는 직업이다. 칼럼니스트도 그렇다. 저널리스트의 기본자세다. 모르면 전문가를 찾고. 어떤 분야의 글이든, 기본은 가지고 해야 제대로 된 글을 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