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내가 발 딛고 있는
이젠 진짜 안녕, 시네코아...
스윙보이
2007. 10. 3. 23:43
"...이제 보니 우리 삶은 온통 죽음투성이였다. 모든 것은 떠나게 되어 있고 잊혀지게 되어 있었다. 나는 내 손에 들어오는 지폐에 빨간 동그라미 표시를 해서 그 지폐가 다시 돌아오는지 실험해보았다. 하지만 단 한 장도 돌아오지 않았다. 똥을 누고 물을 내리면서 나는 내 몸에서 나온 것이 영영 나로부터 멀어져가는구나, 하는 감상에 젖어 변기를 들여다보기도 했다. 나는 그 모든 이별의 순간들을 하나하나 의식하면서 치러냈다. 그 마지막엔 궁극적인 이별, 마침내 내 자신이 떠나고 잊혀지는 절차가 기다릴 것이었다..."
- <<햇빛 찬란한 나날>>(조선희 지음)의 '한때 우리 신촌거리에서 만났지' 중에서 -
- <<햇빛 찬란한 나날>>(조선희 지음)의 '한때 우리 신촌거리에서 만났지' 중에서 -
그랬다. 나는 내 추억 하나와 영영 안녕을 고했다. 이별의 순간. 9월의 마지막 날이었다. 나는 길을 나서야 했고, 그 이별의 순간을 의식하면서 치러냈다. 언젠가 나도 그렇게 존재를 지워야 할 날이 올 것임을 되새김질했다. 영원한 건 아무 것도 없음을, 만남도 이별도 그렇게 사람살이의 한 과정임도.
지난해 6월30일 '경영상의 이유'로 문을 닫았던, 그러나 '스폰지하우스'를 통해 명맥을 유지하던 시네코아가 이젠 영영 떠났다. '종폰지'(종로 스폰지하우스)로 불리며 시네코아의 감성을 유지하던 종로의 문화유산은 이젠 기억 한구석에만 둥지를 틀게 됐다. 이제 그곳엔 더 이상 (영화)극장이 없다.
☞ <추억의 극장 '문닫거나 혹은 바꾸거나'>
스폰지하우스(시네코아) 1관(4층)
2007년 9월 30일 (일) 18시30분
4층 B열 136번(4회)
판매일자 : 2007-09-30 18:06:03
티켓번호 : 07093000010474
판매처 : 스폰지하우스(시네코아)
내 시네코아와의 마지막 인연은 이렇게 장식됐다. <데쓰 프루프>. 보고 나서는 마지막으로 꽤나 근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은 여전히 자신만의 취향을 전면에 내세워 관객들과 소통하고 있었다. 순수한 영화적 쾌감의 절정이었달까.
영화제 같은 경우가 아니라면, 꽤나 경험하기 드문데, 사람들은 함께 소리치고 발 동동구르면서 탄성을 질러댔다. 시네코아에서의 마지막 영화 경험치고는 꽤나 괜찮았다. <데쓰 프루프>는 시네코아의 마지막을 아주 멋드러지게 장식해줬다. 이어지는 '안녕, 시네코아'라는 명분을 단 진짜 마지막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결국 보질 않았다.
글쎄, 관객석에 앉은 다른 사람들도 같은 심정이었을까. '시네코아'란 이름으로 10년 이상 친구가 되어줬던 극장을 떠나보내는 것이 마냥 쉬운 일만은 아니었다. 일년에 비록 10번 안팎으로 드나들면서 그렇게 애틋하게 둥지를 튼 곳은 아니었지만, 막상 이별하는 순간만큼은 약간은 시큼했다. 20대 초반부터 다가왔던 그를 떠나보내자니 내 나이는 이미 삼십대 중반에 가까워졌고. 때론 팍팍해진 내 심상을 위로해줬고, 유쾌한 기분으로 나를 붕 띄워놓기도 했고, 연애의 한 장소로서 흔적을 남겼으며, 갈 곳 없는 청춘의 시간을 건사해주기도 했던 곳. 이렇게 몇 줄의 애도사로 긁적이고 말 노릇이 아니겠지만, 이미 필름은 끊겼다. 이렇게 사라지지만, 지워지지 않을 이야기들.
나는 다시 차이밍량 감독의 <안녕, 용문객잔>을 떠올렸다. 이전 삼일극장이 그러했듯. 아직 보지는 못했지만. 내일이면 문을 닫을 극장의 마지막 상영에 관한 이야기. 영화의 주연으로 등장한 소멸 직전의 극장. 역시 사라지는 것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곧 없어질 극장에서 알프레도 아저씨가 남긴 키스 장면을 혼자 보면서 눈시울 적시며 추억에 젖은 토토의 모습이 아련한 <시네마천국> 또한. 스폰지하우스 사람들도 관객이 떠난 자리에서 그런 장면을 연출했을까.
네박사의 백과사전은 '시네코아'를 이렇게 얘기하고 있었다.
1997년 11월에 개관한 복합상영관으로 코아토탈시스템(주)이 운영한다. 서울특별시 종로구 관철동 33-1에 있다. 4개 상영관으로 출발했다가 2000년 제5관을 마련하여 총 5개 상영관을 갖추었다. 좌석수는 총 1,679석으로 1관 372석, 2관·3관·4관 각 355석, 5관 242석이다.
좌석 간격이 충분하고 좌석을 사다리꼴로 배치하여 어느 자리에서나 영상을 감상할 수 있다. 스크린은 중형이고 음향시스템은 돌비 디지털프로세서(CP-500)를 갖추었다.
개관기념작으로 제48회 칸영화제 감독상 수상작 《증오》, 제49회 칸영화제 특별초청작 《어느 어머니의 아들》, 안젤리카 휴스톤((Anjelica Huston)의 첫 감독데뷔작 《돈 크라이 마미 Bastard out of Carolina》(1996), 자크 드와용(Jacques Doillon) 감독의 《뽀네뜨 Ponette》(1996) 등 4편을 상영하였다. 영화상영 외에 제2회 국제독립영화제, 애니메이션영화제, 인디포럼, 프랑스단편영화제 등의 영화제와 이벤트를 유치하였다.
좌석 간격이 충분하고 좌석을 사다리꼴로 배치하여 어느 자리에서나 영상을 감상할 수 있다. 스크린은 중형이고 음향시스템은 돌비 디지털프로세서(CP-500)를 갖추었다.
개관기념작으로 제48회 칸영화제 감독상 수상작 《증오》, 제49회 칸영화제 특별초청작 《어느 어머니의 아들》, 안젤리카 휴스톤((Anjelica Huston)의 첫 감독데뷔작 《돈 크라이 마미 Bastard out of Carolina》(1996), 자크 드와용(Jacques Doillon) 감독의 《뽀네뜨 Ponette》(1996) 등 4편을 상영하였다. 영화상영 외에 제2회 국제독립영화제, 애니메이션영화제, 인디포럼, 프랑스단편영화제 등의 영화제와 이벤트를 유치하였다.
어찌 이런 무미건조한 말로 시네코아의 전부를 이야기 할 수 있겠는가. 그 속엔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이 도사리고 있을진데. 떠나는 발길 옮길 때마다 채이는 기억과 이야기를 품고 있을 시네코아도 발목을 휘감는 미련과 후회로 이별의 발걸음을 떼기가 쉽진 않았겠지. 그래 하긴, 시네코아만 떠난게 아니잖아. 이미 다른 시대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 않은가. 한때 우리 곁에 머물렀던 그 무엇들이. 담백한 이별을 청해야 하는 것 아닌가 모르겠다. 그럼에도 그 아쉬움을 어찌해야 할 지 모르겠다.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감정의 흔들림...
지난해 11월 내 고향의 삼일극장이 사라지는 순간에도 가슴이 싸했다. 나의 문화유산이자, 추억의 플랫폼이었던 그곳. ☞ 삼일극장, 시네마천국 62년만에 막내린다
그건 어쩔 수 없다. 언젠가는 없어질 것을, 소멸할 것을 알고는 있었다지만, 막상 그 슬픈 예감을 맞닥뜨린다는 것은 또 다른 감정의 동요와 조절을 필요로 한다. 사라지는 것은 그렇게 감정을 들썩이게 만든다. 서글픔 혹은 애잔함 또는 아스라함. 그리고 그곳 곳곳에 묻혀있을 추억들. 언젠가는 내 존재도 사라질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일까. '더 이상 존재할 수 없음'은 슬픈 일이지, 그렇게...
삼일극장. 그 이름을 아는 사람은 제한돼 있겠지만, 이 말을 들으면 '아~'하고 끄덕일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영화 <친구>에서 유오성, 장동건 등이 친구 패거리들이 다른 학교 녀석들과 패싸움을 벌인 장소. <친구>를 본 사람이라면 극장에서 일어난 그 소동을 어렴풋이 기억할 수도 있겠다.
삼일극장은 이른바 '3번관'이었다. 재개봉관도 아니고 그 다음으로 거치는 곳. 이른바 영화필름의 막장. 필름이 거의 닳고 닳아 종착역 비슷하게 다다르는 곳. 더구나 한편만 상영하진 않는다. 이른바 동시상영관. 제목도 휘황찬란한 에로꼬롬한 영화들 꽤나 많이 상영했다.
내 학창시절의 일정부분은 그곳에 빚지고 있다. 내가 거친 고등학교는 삼일극장서 멀지 않았고 보림극장(보창), 삼성극장 등 그 근방은 꼬롬한(?) 극장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남포동과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의 범일동 극장가. 중학교 때부터 '까졌던' 나는 자주는 아니지만 그곳을 다녔다. 심장 두근반 세근반 하면서. 선생들의 임검을 피해 몰래 들어가는 삼류극장의 추억은 해 본 사람들만 알 터이다.
그런 극장이 없어졌었다. 보창이라고 불렸던 보림극장은 이미 97년에 공연장 폐지신청을 했고 삼일, 그리고 삼성까지 줄줄이 문을 닫았던 것이다! 삼일극장은 환갑을 넘었다. 62년의 세월이라고 했다. 그렇게까지 오래된 줄은 몰랐건만. 그 세월 속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추억과 애환이 담겨있을까. 그 속엔 또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이 담겨 있을까.
그런데 삼일극장은 나를 기억하고 있을까. 모르긴 해도 내 흔적들도 그 세월의 나이테 속에 아주 작은 먼지만큼 숨을 쉬고 있었을 터이다. 극장은 무생물이라고 얘기할 지 몰라도, 최소한 난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는 않군. 그들 역시 세월과 함께 숨 쉬면서 수많은 이야기들을 품고 있을 테니까.
언젠가 한 사진작가를 만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 사진작가는 '사라지는 것'을 테마로 하고 있다고 했다. 그의 카메라렌즈에는 사라지는 것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지난해 다시 '개발'된 청계천이 사라지기 직전의 풍경들을 봤는데 나는 그 속에서 그 사진작가의 마음을 봤다. 덩달아 내 마음도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애잔함이 피어났고.
그러나 삼일극장의 마지막을 나는 보지 못했다. 내 오랜 흔적을 좇아 마지막이라도 볼 수 있으면 좋았으련만. 아쉽고 또 아쉽다. 나는 마지막 날, 마지막 상영 때 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싶기도 했다. 관객은 물론 영사기를 트는 사람과 극장 종업원들, 극장주. 그래서 그들은 물론, 극장 자체의 감정도 함께 느끼고 싶었다.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기록. 나의 문화유산이 저 멀리 과거 속으로 소멸한다.
그저 노파심이지만, 삼일극장을 비롯한 그들을 3류 에로영화나 틀어대는 천하의 몹쓸 모리배나 위해시설로만 몰아세우진 마라. 그런 사람이라면 묻고 싶다. 당신은 그들만큼 누군가를 흥분시키거나 위로해 준 적 있었느냐고. 그들만큼 사회로, 세계로부터 소외당하거나 생이 외로운 사람들을 당신은 달래준 사람이었는가. 그곳에서 위안 받던 사람들은 이제 어디로 갔을까.
어쨌든, 세월은 그렇게 깎이고 또 깎인다. 각기 다른 색깔일 지라도 시네코아에 자신의 흔적을 묻은 사람들과, 시네코아를 기억하는 모든 이들과 함께, 언젠가 망각으로 빠져들지라도, 안녕을 고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오늘도 가을비가 잠깐 고개를 들이밀었다. 아직은 파란 잎이지만, 이제 가을비 한두번, 혹은 세번? 여튼 가을비가 재촉할 것이다. 파란 잎이 곧 노랗고 붉으락 물드는 건 순식간이다. 가을이 월반하듯 껑충 뛰어왔다. 나는 가을 속에 있고, 가을과 함께 익어간다.
삼일극장에 안녕을 고했듯, 시네코아 역시.
안녕, 시네코아.
그리고 뒤늦었지만, 이 말을 전한다. 17년 만에 좋아한다,는 말을 건넸던 그들의 이야기처럼.
시네코아에서 봤고, 개인적으로도 좋아하는 영화. 시네코아의 화장실 들어가는 목에 위치해 언제나 그 길을 들어설 때 날 기분좋게 했던 포스터.
이젠 더 이상 볼 수 없기에 마지막으로 말하는 영화의 제목이자 나의 뒤늦은 고백.
좋아해 (好きだ, 2005)
시네코아와 만난 마지막 흔적
스폰지하우스가 새로 둥지를 틀 중앙극장, 이제는 스폰지하우스 중앙. 중폰지라고 불릴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