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게, 복수가 떠올랐다. <네멋대로 해라>의 고복수(배역 양동근).
'뇌종양'이라는 말을 듣자, 그랬다.
뇌종양에 걸렸으나, 행복했던(아니, 마냥 행복해 보였던) 그 남자 말이다.
아무 상관도 없는데, '뇌종양'이 불러온 '뇌동냥'인가. ^^;;
고등학교 동창녀석이었다. 갑자기 '뇌종양' 진단을 받았다. 몇번 술자리를 같이 할 기회가 있었지만, 그때마다, 정말 그때마다, 야근이다, 회사다, 해서 못 만났다. 허구헌날 야근이냐고, 오지 않는 녀석을 상대로 타박도 해댔지만, 그럴 사정이 있었단다.
수술 전날 병실을 찾았더니, 그제서야 얼굴이 어렴풋하다. 안아주고 등을 두들겼다. 얼릉 나아서 술 한잔 하자고. 사실, 확신할 수 없었기에, 더 서글펐다. 악성인지, 양성인지, 모르는 상태인데다, 종양 부위가 만만치 않댄다.
어쨌든, 장장 13시간여의 수술. 당초 예상보다 5시간 이상 길어진. 얼마나 마음 졸였을까. 당사자는, 가족들은. 그래도 병원에선, 수술이 잘 됐단다. 그래도, 결과는 10일 후에나 나오지만.
녀석의 소식을 듣고선, 나는 흡혈귀를 생각했다. 직원들 피를 쪽쪽 빨아먹기만 하는 흡혈회사. 적극적으로 노동을 착취하는 구조. 녀석은, 뇌종양 통보를 받고도 수술을 위한 입원 며칠 전까지 회사에 나갔다. 아랫 직원들에게 거의 혼자 도맡다시피 하던 일을 인수인계 해 주느라, 마비증세를 안고서. 평상시 백업시스템도 안 갖춘 미친 구조. 죽도록 일하라고 다그치는 미친 강박증. 일하다 쓰러지면, '순직' 딱지 하나 달랑 붙여주고선, 고개 돌리는 것이 이 땅의 회사이거늘.
또 하나의 가족, 개소리다. 물론 녀석은 그 소릴 지껄여대는 회사에 다닌 건 아니지만. 나는 회사에서 씨부렁대는 '가족'이라는 말을 혐오한다. 얼어죽을. 지들 필요할 때만, 가족이지, 평소엔 종 아니면 소모품 취급하면서. 육갑 떠는 게지.
녀석은, 좋게 말하자면, '충신'이지만, 나쁘게 말하자면, '충견'에 불과했다. 녀석이야말로, 성실하고 회사말 잘 듣는 직원의 전형이었을 것이다. 물론 안다. 녀석도 하고 싶어서 그렇게 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하지만, 빠져나갈 수 있는 통로도 없었고, 녀석은 고지식하리만치 회사에 모든 것을 걸었던 듯 싶다.
그러나, 이런 써글 '뇌종양' 판정. 3자에 불과한 내가 보기에도 그런데, 녀석은 얼마나 억울할까. 물론, 직무와의 연관성이나 병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지목할 수 있는 의학적 근거를 나는, 댈 수가 없다. 그럼에도 나는, 자신의 욕망에 '참을 인(忍)'자를 붙여놓고 회사 일에만 매달린 녀석의 '뇌종양'에는 회사도 일정부분 분명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녀석의 결과가 좋게 나왔으면 좋겠다. 그래야 우린, 소주 한잔 걸칠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역시나 바란다. 이젠 더 이상 '회사인간'으로 생을 깎아먹지 않길.
새벽출근, 한밤퇴근, 노홀리데이의 '과로 정부'를 만들어 70년대로 역행한 '후진 정부'가 있지만,
설마 민간에서, 21세기에 그래서야 되겠어.
그래서, 녀석이나 내가 아는 당신에게 바란다.
"나는, 당신이 착하고 성실하며 의리 있다는 평가보다,
당신이 건강하고 생을 지속하고 있다는 말을 듣길.
그래서, 우리가 어디서든 서로 말을 건네고 소통할 수 있길.
살아있음이야말로 생의 가장 큰 미덕이고 예술이니까."
한걸음, 아니 한 백만스물두걸음 정도겠지만, 더 나아간다면,
"우리는 일하기 싫다. 그래도 생활을 보장해달라"는 구호가 바람직한,
'놀이사회'의 도래가 이뤄지길. 그래서 우리 함께 노닐 수 있길.
참고하자면,
대한민국의 노동 실태란 것이, 대충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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