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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내가 발 딛고 있는

사회적기업가 학교 수료


생은,
사는 것이기보다 버티고 견디는 것,
이라고 믿는 내게,
선택은 그래서 중요하다.
버티고 견딜 수 있는가,
지속가능할 수 있는가의 문제. 

사회적기업가 학교를 선택했다.
다행이다. 낙마 안 했다. 수료했다.
장하다. 나에게 토닥토닥. 
 
그럼에도, 나는 안다.
다음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지금보다 더 잘해내는 것이 중요하다.


솔직히,
나는 사회적기업이 이 미친 세상의 완벽한 대안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사회적기업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글쎄.
내가 생각하기에, 그건 '진짜' 혁명이 아니면 안된다.
기득권을 송두리째 날려버리는, 체제를 완전히 바꿔버리는, 그런 혁명.
사람이 희망이라고?  
음, 나는 사람을 믿지 않는다기보다 사람의 가변성을 믿는다.
아침의 주림을 저녁의 다담상으로 잊는 것이 사람이다. 나도 그렇다.

물론, 아주 사소하고 작은 균열이 세상을 조금씩 바꿀 것이다. 아마도.
김성기 교수님이 뒷풀이에서 물었다. 무엇이 좋았고 아쉬운 건 뭐였냐고.
나는 좋은 것에 대해선 그랬다.
다른 무엇보다 비슷한 마음을 가진 동지들을 만난 것이 가장 좋았다고.

마음의 동지.
나는 그것이 영원하리란 기대 따윈 않는다. 살아보니 그렇더라.
동지들의 마음이 앞으로 어떤 행동으로 발현되고,
어떻게 더 잘해낼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다만, 어설프게 이런 생각은 있다.
우리 동지들이 메이저가 아닌 '인디'로 계속 남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인디는 자본의 극강마수에 포섭되지 않고,
무한이윤과 암세포의 성장이 미덕인 흉포한 자본에 복무하지 않는 것.
인디는 그 자체로 정체성이자, 삶의 태도와 자세다.  
인디에서 메이저가 되는 것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인디 그 자체로 한결같이 살면서 달팽이의 속도로 꾸준히 거니는 것.
그것을 확고히 믿는다거나 확신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되면 좋겠다.

사회적기업(가)이,
한 시대를 대표하거나 시대적 대세(트렌드)로서 자리잡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이라면,
꾸준히 일관되게 지키기로 마음 먹은 것을 지키면서 살아가는 게 아닐까.
내가 그랬으면 좋겠고, 누군가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으면 좋겠다. 


《절망의 구》에 대한 서평이었을 것이다. 이런 말이었다.
"가장 끔찍한 건 절망의 구에 쫓겨 달아나면서 점점 그 구를 닮아가는,
자신 속에 잠재된 구를 보지 못하는 인간 군상의 모습이다."

아니라도, 그것은 어쩔 수 없다.
이것이 행복하지 않다면, 즐겁지 않고 고통스럽다면,
나는, 우리는, 과감히 이것을 버릴 줄도 알아야 한다. 
그런 순간이 오지 않길 바라지만. 


태어나 처음으로 신영복 선생님을 뵀다.
가장 보통의 사람인 내게 이런 영광이 올 줄은 몰랐다.
더구나 신영복 선생님 이름이 박힌 수료증, 거참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수료생 가운데 사회적기업을 일군 사람을 위해선,
직접 캘리그래피를 써주시겠다고 하셨다.
이거, 확 구미 '땡'기는 제안이지 않은가.
 


어쨌든, 그랬으면 좋겠다.
 

누구보다 크게 울 줄 알고
누구보다 견디고 버틸 줄 알며
누구보다 정당하게 분노할 줄 아는데다
누구보다 싸울 줄 아는 한편
누구보다 용서할 줄 아는,

그런 사람.
어쩌면 영원히 오지 않을 내 희망사항.

아, 그러기 위해서는,
파라과이가 우승했어야 했다. ㅠ.ㅠ
파라과이 축구팀이 8강전에서 떨어져서 너므너므 아쉬웁따!

왜냐고? 에이, 알면서 뭘 물어보나!
'형제의 나라, 파라과이'니 뭐니 하는 호들갑은 떨지 않겠다.
다만, .....................................


.........................다시 태어난다면, 음, 그녀의 휴대폰으로 태어나는 것, 
안되겠니, 응? ^^;;  

뭐? 변태라고? 맞다, 난 변태준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