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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적 퇴폐와 고질적 순수의 공존

여름, 목이 주는 아찔함

역시, 여름이 좋은 이유.

모딜리아니 '목이 긴 여인'

"흔히 여름을 '시의 계절'이라고 한다. 여름은 다른 계절보다 유난히 아름다운 풍경을 많이 연출하기 때문이다.
 
때로는 나무 그늘 아래서 질투의 바늘로
그녀의 목을 겨냥한다.
아, 눈처럼 하얀 목들이
마치 번개처럼 내 눈 앞에 흘러 다닌다.
우리 젊음의 눈에 비친 기쁨의 선물이여.

폴 베를렌이 묘사한 목은 질서를 벗어나 따뜻한 여름 바람을 맞으며 자유롭게 방랑하는 목이다. 남자들은 자신이 여성에게 다가가는 최초의 동기는 바로 뒤에서 여인의 목을 자유롭게 감상한 후라고 말한다. 여인이 뒤돌아보며 미소를 날리기 전, 등 뒤에서 여인의 목을 자유롭게 응시할 수 있다는 건 남성에게 이미 대단한 기회가 될 수 있다.

뜨거운 태양이 이글거리는 여름이 다가오면 여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기다렸다는 듯 어깨와 등, 혹은 가슴을 드러낸 옷을 걸친다. V자형 셔츠는 목을 길어보이게 하는 효과가 있다. 특히 목덜미는 화살표처럼 미묘하게 시선을 끌어당겨 목을 쳐다보게 만든다. 깊게 파인 '-' 자형 옷은 목과 가슴의 아름다움을 대담하게 연결하여 자유롭고 우아하며 성숙한 미를 보여준다. 여름을 맞아 구속에서 해방된 목은 조금의 '꾸밈'도 없는 그 본연의 모습을 드러낸다." 

- 《매혹의 신체》(량얼핑 지음/김민정 옮김|미래의 창 펴냄) 중에서 -

 
단, 목은 신체 나이를 가늠하기 가장 좋은 부위란다. 말인 즉슨, 신체의 다른 부위보다 더 빨리 노화되고 자리에 드러눕는 것이 목이다.

쉽게 주름지고 쳐지는 목이어서일까. 한 작가는 이리 말했단다.
"한 노인의 목주름을 볼 때면 나는 이보다 더 가슴 아픈 일은 없다는 생각이 든다. 목주름은 수많은 인간의 연약함과 적막감을 그리고 있다."
어쩌면 사람들이 목을 관리하고 목의 성적 매력을 중시했던 이유.

모딜리아니는 '목이 긴 여인'을 사랑했다. 그의 그림 속 여인을 보라. 
헌데, 그 여인은 잔느. 모딜리아니를 사로잡았던 것 중의 하나는,
잔느의 길고 가느다란 하얀 목이었던 걸까. 
사진을 보면, 잔느는 실제론 그런 것 같진 않지만.
 
여인의 초상화만 그렸던,
화가 중 최강 핸섬가이로 지칭되기도 했던,
화려한 여성편력의 역사를 써 가던,
모딜리아니는 서른 여섯, 결핵형 늑막염으로 요절했다.

이틀 뒤, 잔느는 아파트에서 투신했다. 잔느 나이 스물 둘.
뱃속에는 8개월 된 모딜리아니의 아이가 자라고 있었다.

사람들은, 
잔느가 모딜리아니의 부재가 슬퍼 그를 뒤따른 것이며,
두 사람의 애절하고 슬픈 사랑이라고 말한다.
천국에서도 내 그림모델이 되어 달라고 자주 말했던 모딜리아니였고,
그럴 때마다 그러고마 했던 잔느였으니.

그런데, 나는 살짝 의심한다.
잔느의 투신은, 
어쩌면 모딜리아니를 향한 분노나 화가 아녔을까.
글쎄, 아무도 모를 일.
 
길고 가는 목을 좋아했던 화가와 사슴 목을 지닌 여자는 어쨌든 요절했다.
1920년 1월의 일이었다.
목이 긴 여인의 새로운 초상은 이제, 구름의 저편에서만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