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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적 퇴폐와 고질적 순수의 공존

Imagine & Love

딱, 2년 전이었다. 뉴욕과 첫 키스를 했다.
나는 키스하기 전부터 지속된 살떨림과 설렘으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가벼운 경련이 일었건만, 그녀는 별다른 감흥이 없었는지, 그저 나를 우두커니 바라만보고 있었다. 지가 무슨 '빙글빙글'이냐. 그저 바라만보고 있게. 먼말인즉슨, 뉴욕 JFK공항에서 나는 한동안 발이 묶여 있었다. 오기로 한 친구는 나오질 않았고, 무슨 이유에선지 전화통화는 안 되고 있었다. 젠장젠장 투덜거림과 오기가 갑옷처럼 무장할 무렵, '짜안~'하고 나타난 녀석. 그리고 뉴욕을 질주했다. 휘유. 끝장이었다. 바로 앞서의 심정은 무장해제됐고, 나는 헤벌레레, 뉴욕에 그냥 빠졌다. 풍덩. 그때만큼은 나는, 뉴욕의 왕자였다.^^;;;;;;;;;;;  

전날이 친구의 생일이었고, 존 레논의 기일이었지만,
그까이꺼, 내가 뉴욕의 왕자가 된 날이 더 우선이었다.
그래도 존 레논이 한때 서식했던 뉴욕.
센트럴파크의 스트로베리 필즈에서는 오노 요코가 만들어놓은 기념비가 있다.



어제 8일, 겨울비가 추적추적. 그냥 아무 연관 없었다. 혼자 비 속에서 찌껄였다.
"녀석, 너도 존 레논을 생각하는구나. 짜식...피식"

1980년 12월8일, 초딩 상꼬맹이.  
존 레논이 뭐하는 개뼉다구인지, 흉탄에 누가 스러졌는지, 세상 아무것도 몰랐을 그때. 아마 그날도 친구들과 니나노~ 노니느라, 정신 팔렸을 그 초딩. 그리고 조금 더 대가리 굵어진 어느 날에서야, 비틀즈를 알게 됐을테고, 레논 형을 접하게 됐을 터.

그리고 2008년 12월8일, 세상의 별 볼 일없는 비정규직 날품팔이.
레논 형을 듣고 있다. Imagine과 Love, 그리고 Oh my love까지. 그럴 수밖에 없잖나. Imagine. '천국도, 지옥도, 국가도, 종교분쟁도, 소유도, 배고픔도 없고, 오로지 우리 위에 하늘만 있어서, 모든 사람이 '오늘'을 위해 살고, 평화로운 삶을 영위하며, 오직 인간에 대한 사랑만 존재하는 그런 세상을 꿈꾸'는데, 당연 동참해야지. 없는 놈이 MB에 붙어 찬송가 부를 순 없잖냐. 오로지 분투, 몽상. 시파, 좆같은 세상.

 

그래서 '몽상가', 존 레논.
그런 세상을 우리들과 함께 하길 바랐던 음유시인, 존 레논. 그런 존 레논이 열혈 팬의 총을 맞고 이상주의자의 생을 마감한 날이 12월8일. 벌써 28년을 허겁지겁 달려왔다. 《도쿄타워 : 엄마와 나, 때때로 아버지》는 그날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었다. 아마도 이 묘사는, 당시 릴리 프랭키의 것이었겠지.


"1980년 12월8일이었다. 믿을 수가 없었다. 너무 놀라 뱃속까지 울렁거렸다. 그 며칠 전에 5년 동안의 휴식기간을 끝내고 막 새 앨범을 출간한 참이 아닌가. 그날도 카세트 테이프에 녹음한 그 <더블 판타지>를 들었는데! 그 앨범의 첫 번째 타이틀은 <스타팅 오버>. 5년 동안 나는 존 레논이 음악활동을 재개하기를 간절히 염원해 왔다. 그리고 기다렸다. 왜냐하면 우리를 그토록 기다리게 하며 휴식에 들어간 이유에 대해 존 레논은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라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나는 존 레논이 부러웠다. 멋있다고 생각했다. 그가 보여준 아버지의 존재방식에 동경을 품었기 때문이다. 스타팅 오버. '재출발'이라는 그 곡과 함께 돌아와 새롭게 일어서려는 순간, 흉탄에 스러져간 존 레논. …"


1960년대, 안녕~
존 레논의 '영면'은 기실 그의 죽음으로만 그친 것이 아니었다. 비틀스의 영광과 함께했던 1960년대의 음악, 기성세대를 향한 반항과 저항, 반전운동 등으로 들썩거렸던 1960년대의 운동성, 그 모든 것이 막을 내렸다. 한 시대를 대표하던 아이콘을 상실한 그 시점은 실로 절묘한 타이밍! 네오콘(신보수주의) 기치를 뿌린 로날드 레이건 대통령의 취임이 바로 한달여 뒤인 81년 1월12일이었으니까. 한달여 휴지기를 가졌던 시대의 바뀜, 아우라의 교체. 그야말로 막장시대의 개막을 위한 아이콘의 살해!

탐미주의자에게 영광을!
물론, 지금도 위대한 '존 레논'의 노랫소리는 어디서든 만날 수 있지만, 한 시대의 접힘은 당대를 풍미했던 자의 죽음으로서 명실상부하게 체감하는 것이 아니던가. 장국영, 최진실에게서 그런 걸 느낀 사람들도 있듯이. 그렇게 아이콘을 살해하고 문을 연 막장시대가 침몰위기에 봉착(근데 정말 그럴까?)한 이 즈음, 다시 레논 형을 끄집어내는 것은, 물론 별 다른 의미 없다.^^;; 그냥 그의 음성이 듣고 싶어 떠올릴 뿐이다. 자신의 이상과 사랑을 좇아 목소리를 높였던 급진적 몽상가의 생도 괜히 반추해보고. 반전·인권운동에 전념하면서도 오노 요코와의 사랑에 소홀함이 없었던 그는, 얄미운 욕심쟁이 유후후~ 사실 레논 형은 어쩔 수 없는 '탐미주의자'다. 아름다운 세상에, 아름다운 사랑에 탐닉하고자 했던, 세상의 하나됨을 '망상'했기에! 시파, 조낸 부럽다.

아이엔뷰~
나~안, 레논 형이 제일 부러운 것은, 오노 요코를 만났다는 뿐이고! 비틀즈 해산의 결정적인 도화선이 됐다고 알려진 그 여인. 그래서 '팜므파탈'이라는 오해를 뒤집어쓰기도 한 그 여인. 뭐, 그거야 어찌됐건, 비틀즈를 내팽겨칠만큼, 레논 형에겐 오노 요코가 중요했다는 것 아니겠어. 오죽하면 이리 말했겠어. "난 태어났노라! 살았노라! 요코를 만났노라!" 오노 요코와의 만남으로 그는 이전과는 분명 다른 길을 걸었고. 그것이 존 레논을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일 뿐이고!  

"우리는 같은 온도를 가지고 있군요!"
그들의 관계가 마냥 부럽다. 서로가 서로에게 예술적·정치적 영감을 불어넣고 받을 수 있는 동반자 관계. 7살 연상의 오노 요코를 처음 만난 레논 형의 궁극의 작업멘트. "우리는 같은 온도를 가지고 있군요." 예술적 온도가 맞아서 예술적 상승을 공유할 수 있는 예술가를 만나 사랑에  빠지길 꿈꿔 왔던 레논 형의 당연한 멘트. 아, 시파. 이런 말이 마음에서 절로 우러나야는데 말이쥐.



이 죽일 놈의 사랑!

알다시피, 세상에서 가장 유명하고 훌륭한 잡지표지 중 하나인 1980년 12월 롤링스톤의 표지. 발가벗은 레논 형이 요코에게 휘감듯 매달려 키스하는 장면. 유명 사진작가 애니 리보비츠가 롤링스톤의 표지 사진을 찍으려고 레논 형집을 찾아갔다. 애니가 레논 형에게 물었다. "당신은 오노 요코를 얼마나 사랑해?" 웃기지도 않은 레논 형, 그 자리에서 옷을 훌러덩훌러덩 벗는다. 그리고 요코를 껴안듯 매달려선 입을 맞춘다. 쪼옥~ 그리고 던지는 이 닭살 멘트. "이게 내가 요코를 사랑하는 방식이야." 아, 시파, 인정인정. 형은 로맨티스트요! 그리고 이 촬영을 마치고 몇 시간 뒤, 레논 형은 흉탄에 스러진다. 가장 절절한 사랑고백을 한 뒤, 스러지다니, 이건 대체.....뭥미!!!

12월은 그렇게 연속구간이다.
1일 에이즈의 날을 관통하며, 우리의 편견을 건드리고,
8일은 레논 형,
10일은 세계인권선언일,
12일은 조영래 변호사(《전태일 평전》의 저자인 인권변호사) 기일,
18일은 세계이주민의 날,
그리고 마침내, 크리스마스.
뭐, 다들 '사랑'을 가르치는 날이잖나.
그런데 세상은 왜 이래, 시파. 아마추어 같이.

아, 그나저나 레논 형, 잘 계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