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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털 싱글스토리

연애불능시대, 사랑탐구가 고미숙, ‘에로스 바이러스’를 뿌리다

'사랑'에 대한 오해가 있는데, 사랑은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나는 이것이 늘 불만이라면 불만, 이상하다면 이상한 것이었다.
사랑은 살다보면, 저절로 주어지는 감정이라는 편견.

그러나, 알다시피, 세상엔 '사랑불능환자'가 얼마나 많은지.
어릴 적부터 그렇게 사랑사랑, 타령을 해대지만,
사랑에 대한 아포리즘은 넘쳐 흐르지만,
우리는 언제나 사랑이 고프다.

왜!일까! 딴 이유 없다.
사랑을 제대로 배우고 체화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는 '사랑'에, 모든 것이 들어가 있다고 생각한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등.
우리가 알아야 할 모든 것이 사랑 안에 들어가 있으므로,
사랑만 제대로 알아도 기본은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최근 책을 통해 만난 두 사람의 '사랑학'에 적극 공감했다.
사랑은 그저 한 사람의 마음에 똬리를 튼 감정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사랑은 모름지기 사회적 관계의 산물이고 사회적 소통이다.
이들은 '사랑' 역시 배우고 익히는 것임을 강조하고 있었다.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거다.
정말이지, 왜 그리 반갑던지.^^

그들은,
한 명은 고미숙(《사랑과 연애의 달인, 호모 에로스》저자)이고,
다른 한명은 목수정(《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맛속까지 정치적인》저자)이다.
지난해 12월, 고미숙의 강연회를 찾았다.
주옥 같은 시간이었다. 행복했던 시간.

아래는 그 기록이고.
늦었지만, 지금에서야 올린다.
목수정의 사랑학에 대해서도 언급할 날이 있겠지만,
두 사람의 공통 분모는 사랑은 사랑하고 싶다면, 공부하라는 말씀.
완전 지당, 완전 공감.

최근에 읽은 책에도 이런 구절이 나온다.
고대 시대부터 사랑은 공부하는 것이었다는 증거.^^

"철학적 삶에 대해 플라톤이 주목한 또 하나의 사랑이나 욕구, 즉 에로스(eros)가 지닌 중요한 역할이다. 플라톤이 《파이드로스》에서 묘사한 소크라테스는 활력에 넘쳐 에로스의 요소를 철학적으로 탐구하고 있다.… 사랑은 무엇을 '위해' 있는가? 사랑은 우리에게 좋은 것인가? 우리는 자율성을 얻기 위해 우리의 사랑을 아주 작게 줄여야 하는가? 이것들은 오늘날 젊은 남녀들도 당연히 호기심을 품는 문제다." 《인문학스터디》(마크C. 헨리 지음 | 강유원 외 편역 / 라티오 펴냄)


누군가의 말마따나, "사랑은 교훈적으로 하는 게 아니라, 실존적으로 하는 거다."
그리고, 실존적으로 하기 위해서라도, 사랑에는 '공부'가 필요하다.
부디, 우리, 제대로 사랑합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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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불능시대, 사랑탐구가 고미숙, ‘에로스 바이러스’를 뿌리다
<고미숙의 에로스 특강>


세간의 어떤 말에 대한 불만부터 얘기해야겠다. 사랑(들)이 있‘었’다. 달이 차오를 때까지, 사랑했다. 그러나 헤어짐, 피할 순 없었다. 아팠지만, 쓰라렸지만,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다는 말,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됐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 이렇게 말한다. “인연이 아니었나보다.” 어이없었다. 췟, 그걸 위로라고. 인연이 아니라면, 우리가 어떻게 만날 수 있었을까. 우리는 어떻게 사랑할 수 있었단 말인가. 그 위로의 대부분은, ‘결혼’이라는 제도를 전제로 한다.

말인즉슨, 이렇다. 인연이 아니라는 말 앞에는, ‘결혼을 하지 못했으니’ ‘결혼에 이르지 못했으니’라는 말이 생략된 것이다. 아니, 사랑이면 사랑이지, 왜 결혼과 늘 연결 지을까. 결혼이 사랑의 완성이라는 이 엉성하고 빈약한 이데올로기에서 사람들은 왜 벗어나질 못하는 거지? 이상하다. 불만이다.

이런 위로 같지 않은 위로를 해주는 사람들에게 나는, 이렇게 얘기했다. “인연이 아닌 게 아냐. 인연이 딱 그만큼이었던 게지.” 인연이 아니라는 말, 나는 그것을 내 사랑에 대한 모독이라고 여겼다.

사랑은, 연애에 대한 나의 생각은 이랬다. 한 세계(우주)가 다른 세계(우주)를 만나는, 일대 사건 혹은 사고. 이 엄청난 스파크, 파파파팍! 이 넓은 세상, 저 길고 긴 시간, 그 수많은 사람들 중에 만난 우리 두 사람. 평행우주의 궤적이 어쩌다 공명하게 된 순간. 그게 사건사고가 아니면 대체 무어란 말인가. 사랑사건 혹은 사랑사고. 나는 약간 과장해서, 그 사건사고들, 신문방송에 나야한다고 본다. 시시껄렁한 사건사고로 지면이나 전파 낭비 말고 이 일대 사건사고를 왜 싣지 않냐고!

오죽하면, 트루먼 카포티는 이런 말을 했을까. “세상의 모든 일 가운데 가장 슬픈 것은 개인에 관계없이 세상이 움직인다는 것이다. 만일 누군가가 연인과 헤어진다면 세계는 그를 위해 멈춰야 한다.”

그리하여, 헤어졌지만 새로운 세계를 알려 준 그 사랑(연애)에 나는, 고마워했다. 물론 경우마다 사유와 충격의 깊이나 폭은 달랐을지언정, 나는 그 사랑(들)이 지금의 나를 형성하는 요소임을 부인하지 않는다. 내 안에 그들 있다!

다시 돌아가자. 그 불만이 있다손, 마냥 그들을 탓할 것만도 아니었다. 그들이 ‘배운’ 혹은 ‘훈육 받은’ 것이 그런 걸. 학교랍시고, 사회랍시고, 배워주지 않는다. 따라서 그건 사회구조적인 문제다. ‘사랑’을 제대로 알려주거나 공부하게 만들지 못한. 사랑이 중요하다고 시부렁거리면서, 정작 사랑을 공부하고 배울 수 있는 환경을 조성 못한 죄. 고작해야 영화나 TV드라마 등을 통해 왜곡된 사랑(연애)의 형태나 전달되도록 하고 말이야. 왜 이래? 아마추어같이. 그래서 일단 시작은, 그런 통념에 유죄판결부터 내리고. 꽝!꽝!꽝!

‘사랑탐구가’ 고미숙 선생을 만나다



좀 길었다. 그린비출판사와 YES24가 마련한 <고미숙의 에로스 특강! : 대한민국 연애발달장애-고미숙의 진단과 분석>이 지난 12일 서울 동교동 그린비출판사에서 있었다. 강사는 『사랑과 연애의 달인, 호모 에로스』(고미숙 지음/그린비 펴냄)의 저자 고미숙 선생. 그 특강에는 사랑과 연애에 대해 사유하고픈 혹은 사연과 고민을 품은 25인이 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