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다시 얘기할 기회가 있겠지만,
<필라델피아>(1993, 감독 조나단 드미)는 AIDS에 대한 편견과 차별에 대한 사고를 제고시켜준 영화였다. 배우들의 열연도 한몫했지만, 이에 어우러진 한 목소리가 마음을 움직였어. 관객들이 어떤 깨달음을 얻고 정치적인 태도를 바꾸는데 이 목소리가 놀라운 힘을 발휘했다고, 나는 아직 믿고 있거든.
유능했지만, AIDS에 걸려 추락한 변호사 앤드류(톰 행크스)는 죽어가고 있지. 조(덴젤 워싱턴)은 복직투쟁을 하고 있는 앤드류를 변호하고 있고. 사실 조는 변호인임에도 앤드류를 온전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상태야. 마지막 증인 심문을 앞두고 조가 앤드류를 찾았는데. 링거를 꽂고 힘겹게 버티고 있는 앤드류는 오디오 볼륨을 높이며 아리아를 배경으로 절규하듯 토로를 막 하지.
이 아리아는 둘의 정신적 교감에 절대적 역할을 한 듯 싶어. 마리아 칼라스가 부른 오페라 아리아, 'La Mamma Motar(어머니는 돌아가시고)'. 이탈리아 작곡가 움베르토 조르다노의 오페라 'Andrea Chénier(안드레아 셰니에)'의 3막에 나오는 곡. 둘은 눈물을 흘렸고, 나 역시 두 배우의 열연과 아리아의 선율에 마음이 움직이더라. 눈물이 뺨을 적셨어.
마리아 칼라스(Maria Callas, 1923.12.2~1977.9.16). 나는 그를 그렇게 처음 만났다.
9월16일. 세기의 디바, 천상의 목소리라고 불리던 그가 생을 마감한 날이다. 1977년. 정확히 30년 전, 프랑스 파리의 한 아파트에서 쓸쓸히 생을 마감했어. 54세. 심장마비라고 알려졌었지. 그리스계로서 뉴욕에서 태어난 디바의 곡절은 더 이상 연장되지 못했고.
나 같은 문외한이야, 그의 목소리가 매혹적이라지만, 솔직히 잘 모르지. 내가 겪은 매혹은 <필라델피아> 그 하나로도 충분하다(한국에서도 1974년 가을 두 번의 공연을 했다는데, 당시 공연을 찾은 사람들의 이야기도 어딘가에 있겠지). 말하자면, 그의 목소리에 대한 매혹보다 끊임없이 이야기를 만들어낸 그의 흔적들에 더 놀랍고 더듬이가 움직였을 따름이야. 특히나 세기의 연애사 혹은 스캔들은 화제를 몰고다니는 셀리브리티로서의 면모를 여실히 보여준다 하겠다.
사진만 봐도 그가 뿜어내는 아우라가 장난이 아냐. 너무도 강렬하기에 그 생이 순탄하지 않았을 것이란 생각을 절로 들게 만들더군. 선입견에 의한 것이지만. 그의 흔적을 훑어보자면, 성공이데올로기에 사로잡힌 완전속물의 행적도 뚜렷하지만, 그 수면 아래서 피똥을 싸댔을 모습 또한 그려지지. 엄청난 재능을 타고 났음에도 말이야. 그는 어쩌면 컴플렉스 덩어리였는지도 모르겠다. 스스로에게 만족할 수 없었기에 자신을 더욱 위악적으로 만들었을지 모른다는 그냥 억측. '악녀' '팜므 파탈'이란 별명도 어울릴 듯한.
특히나 그리스의 선박왕 오나시스와 JFK의 부인이자 미국의 퍼스트 레이디였던 재클린 케네디(재키)와의 삼각관계는 두고두고 회자될 얘기지. 그러고보니 재키는 세계의 권력(JFK)과 재력(오나시스)을 움켜쥔 남성들을 자신의 품안에 담았군. 후~ 남편까지 버리고서 오나시스에 올인했던 마리아 칼라스는 그러나 재키에게 밀린 뒤 우울증에 시달렸다고 한다. 결혼생활 중 목소리에 금이 가면서 유산에, 자살기도까지도 하고. 예술은 그렇게 힘을 잃어갔고 여인은 윤기를 잃은 셈이지. 그렇지만 오나시스는 죽기 전, "진정한 연인은 마리아 칼라스였다"는 말을 남겼다는군. 재키의 낭비벽에 질려서 그랬을지는 모르겠지만, 마리아 칼라스는 위안을 얻었을까.
어쨌든 마리아 칼라스의 공연 파트너였던 스테파노는 그의 죽음 이후 이런 말을 남겼다.
오페라에서의 'B.C.'는 'Before Callas(칼라스 이전의 시대)'를 뜻한다. 프랭코 제프리엘 리라는 이태리의 연출가가 한 말에서 비롯됐다지. 오페라의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낸 오페라의 디바는 쓸쓸히 세상을 떠났지만, 그 떠남도 30년이 됐지만 추모 열기는 뜨겁다. 마리아 칼라스의 힘 아니겠는가!
그리스는 올해를 '마리아 칼라스의 해'로 정했고, 아테네에서는 칼라스 기념 콘서트가 열리고 있다고 한다. 이태리 밀라노의 라스칼라에서는 오늘 '칼라스'라는 96분짜리 다큐영화가 상영된단다. 뉴욕 등지에서는 전시회가 개최되고 있다고 하고, 한국에서도 다음달 11일부터 11월10일까지 의정부 예술의 전당에서 '마리아 칼라스 페스티벌'이 열린단다. 유품 전시회와 성악가들의 공연. 휘유~ 마리아 칼라스는 확실히 악녀다. 죽어서도 자신을 사람들이 잊지 못하게끔 만드는 것을 보면 말이다.
얼마전 생일을 한달여 앞두고 71세로 타계한, 마리아 칼라스 이후 오페라 대중화에 가장 공헌한 성악가였다던, 루치아노 파바로티도 생각이 나지만, 그에 얽힌 추모야 최근에 넘치고 넘쳤고. 그리고 파바로티에 대해선 내가 별로 간직하고 있는 기억이 없거든. ^^; 쨌든 칼라스도 가고, 파바로티도 가고. 한창호 영화평론가는 그러더라. 이젠 오페라 같은 음악을 누가 보급할 수 있을 지 걱정이라고. 스타의 존재가 대중화에는 유리한데, 오페라가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 아니냐고. 흠, 그럴지도 모르겠네.
뱀발.
신촌에 '마리아 칼라스'라는 가게가 있다. 꽤나 유명한 카페 겸 레스토랑인데, 그 언젠가 마리아 칼라스의 생을 접한 뒤 소개팅 장소로 삼았던 적이 있다. 성악을 전공한 주인께서 마리아 칼라스를 흠모하여 지은 이름이다. 진짜 언덕 위의 하얀 집인데, 주택을 개조했다. 유명 건축가 김중업씨가 지은 영국식 주택. 디자이너 안홍선씨의 아트 퀼트 또한 엿볼 수 있다. 1~2년에 걸쳐 만든 스타일과 스토리를 가진 퀼트다. 그 옛날, 영화 <겨울나그네>에서 다혜(이미숙)의 집으로 활용됐고, 이후 카페로 개조됐다. 메뉴 이름 역시 특이하다. '에르나니'(나의 사랑이여), '리골레토'(그리운 이름이여) 등 오페라 아리아 용어의 음식도 있고 요구르트의 이름도 '세리오조'(점잖게), '브릴리안테'(화려하게), '칸타빌레'(노래하듯이)등과 같은 음악 용어다. 누군가에게 고백하고 싶다면, 이 곳 나름 괜찮다. 가고 싶어? 그럼 예약해. 홈페이지야. ☞ 카페 마리아 칼라스
참, 그때 그 소개팅 어떻게 됐냐고? 어이 이봐, 난 고백하러 간 게 아니었다규.^^;
이 정도면 답이 됐나? 궁금하면 따로 물어봐.ㅋㅋ
☞ 디바 마리아 칼라스
<필라델피아>에서 마리아 칼라스 목소리가 영상과 만난 장면이 궁금하다면,
☞ 필라델피아
카르멘과 마리아 칼라스를 비교해놓은 글이 보고 싶다면,
☞ 정염의 화신, 정열의 화신 카르멘과 디바 마리아 칼라스
책도 있다규,
☞ 마리아 칼라스 : 내밀한 열정의 고백
☞ 마리아 칼라스 : 하늘이 선물한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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