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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내가 발 딛고 있는/위민넷

르네상스 시대의 비극적인 에너지

르네상스 시대의 비극적인 에너지

[세상을 이끄는 여성]
루크레치아 보르자 (1480.04.18~1519.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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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의 꽃이 핀 르네상스 시대라고 하지만, 중세는 여전히 엄했습니다. 종교에 기반을 둔 엄격한 율법과 금기는 상존했습니다. 일탈보다는 속박이 더 익숙했다고나할까요. 하긴 어떤 시대라고 일탈이 사회를 넘어서긴 하겠습니까마는. 르네상스 시대의 이탈리아. 어떤 생각이 드세요? 다양하고 격조 높은 예술작품들과 대가들이 먼저 떠오르지 않으세요? 후세들에게 르네상스라고 할 때 떠오르는 상징은 그렇게 각인돼 있지만, 좀더 속살을 파고들면 배신과 음모, 권모술수로 얼룩도 덕지덕지 묻어있습니다. 어쩌면 르네상스 시대에 문화예술이 부흥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런 정치사회적인 얼룩에 저항하거나 에둘러 풍자하기 위한 예술가들의 몸부림이 있었던 때문은 아닐까요.

여하튼 그런 시대에 한 여성이 있었습니다. ‘루크레치아 보르자’. 이름이 약간 익숙하다 싶지 않으세요? 맞아요. 마키아벨리가 쓴 <군주론>의 모델인 ‘체사레 보르자’가 그의 오빠입니다. 정치적 야망을 위해 동료나 친구를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제거했던 냉혈한이었죠. 그의 구호도 무시무시합니다. ‘카이사르(황제), 아니면 무(無)’. 마키아벨리가 이상적 군주의 모델로 삼았으나, 온갖 음모와 숙청 등을 일삼은 ‘악행의 자서전’을 쓴 인물. 그렇다면 그의 아버지가 바로? 역시 맞습니다. 교황 알렉산데르 6세입니다. 역대 교황 가운데 가장 타락했다는 평을 받는(혹자는 좋게 말해서, ‘가장 세속적인 그리스도’라고 하더군요). 루크레치아 보르자는 그런 가문 출신입니다. 교황의 딸이자, 이른바 ‘사생아’. 그것 자체만으로도 ‘이단아’로 충분히 낙인이 찍히고도 남을 태생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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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로 그의 생은 불행에 가까웠을지 모르겠습니다. 야망이 이글대는 아버지와 오빠를 둔 영양(令孃)에게는 불가피한 운명이었겠죠. 더구나 사료나 역사가들은 그를 당대 최고의 미인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권모술수와 정쟁에 골몰하는 가문에 미인이라는 점까지 덧붙여진 탓인지, 그는 3차례의 정략결혼과 추문 등으로 만만찮은 생을 꾸렸습니다. 그래서 ‘팜므파탈’이란 타이틀로 입길에 올랐죠.

그러나 ‘팜므파탈’의 타이틀로만 그를 규정하는 것은 한편으로 부당합니다. 그 말은 대개 부정적인 의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으로 받아들여집니다. 주변의 정치적 배경과 놀음에서 자유롭지 못한 한계를 감안한다면, 그는 정략과 정쟁의 희생이 된 비극의 여인입니다. 아니, 외려 그에겐 진짜 에너지가 있었습니다. 에너지가 때론 불온함에서 비롯되듯, 종교와 율법의 억압과 정쟁의 소용돌이에서 그는 탈선의 쾌감을 느끼지 않았을까요. 물론 한계가 뚜렷하긴 했지만요. 아름답고 매력적인 자신의 장점을 활용한 그는 외교술과 화술의 달인이었습니다. 명랑하고 활력이 넘쳤으며 그것이 또한 자신을 ‘가문의 영광’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코자 하는 타자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이 아니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