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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세화

희망버스 부산 가을소풍, 잡스와 체의 혁명이 다른 이유 10월8일, 김진숙 위원이 부산 영도 한진중공업 85호 타워크레인에 오른 지 276일째다. 그를 지키는 정흥영, 박영제, 박성호 씨가 오른 지 104일째 되는 날. 5차 희망버스가 그 276일째, 부산을 향했다. 부산국제영화제(BIFF)와 맞물려, 부산은 축제의 도가니다. 축제를 모르는 무식쟁이 공권력만 엄한 똥폼 잡으면서 얼굴 찌푸리고 있나보다. 부산에 못 가서 미안하다. 고향에서 열리는 축제에 동참 못해서 아숩다. 더구나 롯데 자이언츠가 정규시즌2위로 가을야구에 동참해서, 부산이 들썩이는 이 가을. "김진숙, 그녀와 영화를 보고 싶습니다"며, BIFF에 참석한 많은 영화인들이 지지선언까지 하면서 부산에서 소풍을 즐긴다. 부럽다. 또 함께 소풍을 즐기지 못해서, 일과 사정이 있다는 핑계로 어깨동무 못해.. 더보기
벌써 1년, 사회적기업가학교의 봄 물론 그때 그 봄은 다시 돌아올 수도 재생할 수도 없지만, 봄은 다시 꽃망울을 틔운다. 약 1년 전, 성공회대 사회적기업가학교에 입학했던 나는, 다시 찾아온 봄의 교정에 얼굴을 묻었다. 4월9일, 사회적기업가학교 입학식. 정작 나의 기수였던 3기 입학식엔 참석하지 못했는데, 이번엔 발걸음을 디뎠다. 홍세화 선생님이 열강 중이셨다. 자기 형성의 자유, 그리고 소유(여부)가 존재를 규정하는 비극적 시대를 자유인으로 건너는 방법. 사회적 존재, 사회적 인간으로서 이웃에 대한 상상력을 가져야 하는 이유. 하루에도 몇 번씩, 아직도 고개를 넘나들어야 하는 나는, 홍세화 선생님을 통해 작은 안도를 얻고 사유를 곱씹는다. 나는 어떤 세상에 살고 싶은가. 나는 어떤 사람들과 함께 일하고 싶은가. 뭣보다 나는 어떻게 살.. 더보기
혜화동, 홍세화 선생님 오늘(3월30일) 여러 기분 좋은 사건 가운데, 가장 째지게 좋은 사건. 당신에게 속살속살하고픈 이야기. 아마, 당신도 이 얘길 들으면 함께 꺄아~하고 소릴 지르지 않았을까. 퇴근길, 지하철을 타고 혜화,동으로 향하던 길. 2호선에서 4호선을 갈아타는 통로 앞. 앗, 낯익은 얼굴. 갑자기 커진 동공. 홍세화 선생님!!!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줄 알았지'(버나드 쇼의 묘비명), 하는 후회에 대한 생각할 겨를도 없이, 꾸벅 인사를 하고 있는 것 아니겠어? 그러니까, 1년 하고도 3개월여 전의 만남을 말씀드렸더니, 마침 선생님도 기억 나셨나봐. ^^ ☞ “나는 내 생각의 주인인가?”, 스스로 묻는 소수와 함께 마침 선생님께서는, 대학로에 사회풍자연극인 를 보러 가시는 길. 나의 목적지도 대학로에 있었기에, 함.. 더보기
“나는 내 생각의 주인인가?”, 스스로 묻는 소수와 함께 지난해 봄, 후배의 결혼식에 주례를 서신 홍세화 선생님을 봰 이후 한 8개월 만에 다시 뵀다. 물론 그땐 인사도 못 드렸으니, 앞에서 인사를 드린 건, 아마 3~4년 만? 홍 선생님께서 날 기억 못하는 것이야 당연한 것이겠지만, 나야 홍 선생님을 그렇게 독대한다는 것만으로도 가슴 설레는 일. 그러니까 이것은, 지난 연말경 홍 선생님을 뵌 기록. 가슴이 떨렸고, 나의 생은 위로를 받았다. 책을 통해서도, 선생님과의 만남을 통해서도. 지배세력이 주입하는 가치에 더 이상 휘둘리지 않길 바라는 내 마음 앞에, 선생님은 그 존재만으로도 힘이 된다. 다행이다. 한때 나도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최선의 가치라고 사육당했고, "부자 되세요"라는 개소리를 생각이나 비판도 없이 사용했었다. 야만과 천박함에 고스란히 노출돼 .. 더보기
[한뼘] 미디어의 포로에서 벗어나는 법 '지금-여기'의 매스미디어와 구성원들의 관계의 일면. 물론 이것이 다는 아니겠지만. '전쟁'과 '테러'를 강자와 약자의 위계로, 혹은 미국의 시선에서 구획하는 지금-여기의 미디어가 전파하는 전쟁의 실상이란 뻔하지 않겠는가. 일부 미디어들이 수용자-소비자들의 반응과 소통에 적극적인 것처럼 나대지만 나는 아직 의심한다. 아직 많은 미디어들은 수용자-소비자들과 수평의 위치가 아니라 그들 위에 군림하면서 조정한다. 그 미디어들은 간교하고 얍삽하게, 수용자-소비자들이 포로 혹은 인질이라고 느끼지 못하게 배후조정까지 한다. ...사회 구성원의 의식은 미디어의 포로가 된 지 오래다. 가령 미국에서 60년대의 베트남 반전운동에 견줘 오늘 이라크 반전운동이 크게 일어나지 않는 배경 가운데 하나는 ‘군·산·언’복합체로 군..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