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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아라, 직딩아~

노동절! 노동하고, 또 놀자~

나안~, 노동자일 뿐이고.
몸뚱아리를 의탁하고 있는 적을 둔 것은 아니만, 그렇다고 '노동자'가 아닌 것은 아니다.
회사를 나온 이유야 삐질삐질 설명했으니, 넘어가고.
지금의 나는 말하자면, '임금노동자' 아닌 '청부날품팔이 노동자'.
조만간 다른 노동자로 변화가 있을 테지만, 어쨌든 나는 노동자!


그래서 '노동절'(메이데이)은 중요한 날이다.
비록 지금-여기서 이날을 축제로 만끽할 수 없다는 것은 말하지 않아도 비디오.
노동자들에겐 여전히 엄혹한 나날들. 특히나 비정규직 혹은 실업노동자.
부디, ☞ [기고] 비정규직을 위한 메이데이는 어디에(한윤형)
"만국의 노동자들이여, 단결하라"는 구호는, 여전히 유효하다, 고 나는 믿는다.

이와 함께, '일하지 않아도 먹을 권리' '빵과 함께 장미를 받을 수 있는 권리'.
몇년 전부터 생각해오던 한 명제가 지금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지금, 그것의 일환으로 논의되고 있는 '기본소득(Basic Income)'.
“국가가 온국민에 월급을”/ ‘기본소득제’ 포스트 자본주의를 향한 화두로
고용없는 시대…‘기본소득’은 실업자 생명줄
평등한 사회 꿈꾸는 ‘기본소득제’

"일을 하든 안 하든 간에, 일자리를 갖고 있든 아니든 간에, 사회 구성원이면 누구나, 그리고 아무런 조건 없이 일정 수준 이상의 소득을 누릴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게 그 뼈대다. 마치 시민운동가에게, 예술가들에게, 어린이에게, 백수에게, 가정주부에게 나라에서 다달이 꼬박꼬박 지급하는 ‘월급’이라고나 할까."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중에서)


그리하여, 노동해야만 먹고 살 수 있다는 패러다임에서 벗어나기.
'노동해야 밥 있다'는 명제는, 사실 자본이 강요한 굴레 아니었는가.
그때 내게, 'Jobber운동'이라는 것을 처음 알려주고,
노동권과 생존권의 재결합이 필요함을 알려주던 이 기사.
일 안해도 빵 먹을 권리 있다 (최우성)
그 필자가 지금 다시 그것을 언급하며, 일하지 않는 자도 먹을 권리가 있다
우리에게 되묻는다.

"시장과 자본의 무자비한 폭주로 대변되는 자본주의 실험의 한 시대가 저물어가는 지금, 일하지 않아도 먹을 권리를 움켜쥐자는 기본소득의 도발적 문제제기는 과연 21세기판 공상주의자들의 헛된 요설로 끝맺음할 것인가? 아니면 뿌리 깊은 노동중심주의의 탯줄을 과감하게 끊어내고 ‘대안사회’를 열어가는 ‘트로이의 목마’ 노릇을 할 것인가? 그 ‘열린’ 가능성은 바로 지금 우리 눈앞에 놓여 있다." (르디플 중에서)


아참, 나를 아는 분들은,
오늘을 '근로자의 날' 말고(!) '노동절'이라고 말해 주시라.
나는 '근로자의 날'이라는 말을 들으면, 빈정이 팍 상해버린다.
'근면성실'을 모토로 내걸고 노동에 대한 몰이해를 덮기 위해,
박정희가 만든 정치적 유산의 명칭, '근로자의 날'. 바끄네나 그렇게 말하라지.
냉전체제의 시각도 물씬 묻어나고.
작년 정치권서 '노동절'이니 '노동자의 날'이니 바꾸겠단 소리도 나오더니,
감감무소식일세. 부디, 노동자들에게 '노동절'을 돌려달라.
'노동절'과 '근로자의 날'


버티고 견디는 것. 살아남아서 놀아보자.
당신과 내가 그렇게 함께 놀아났으면 좋겠다.
오늘 추천하는 영화는 역시나, <빵과 장미>. 켄 로치가 당신을 즐겁게 할 것이다.
2008/05/01 - [세계, 내가 발 딛고 있는] - 너에게 켄 로치를 권한다 … <빵과 장미>
또 게으르면 어때. 우리는 개발독재시대의 동원 근로자가 아니지 않은가.
"일할 권리가 있다면 게으를 권리도"

더불어, 한 잔 입에 들이킬 커피는,
커피 노동자(생산자)들과 좀더 교감하면서 세계를 사유할 수 있는 공정무역 커피로.


2008/04/17 - [나는 당신을, 감탄한다...] - 나는 노동자입니다, 당신(들)을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