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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적 퇴폐와 고질적 순수의 공존

당신과 나, 혹은 그들의 스무살에게...

오늘밤.
최근 ≪은교≫를 낸 소설가 박범신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었다.
지금 뭐라 딱히 한마디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천천히 곱씹고 있다. 정리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아니면 말고! ^^; )
마음이 정화되는 느낌이랄까. 천천히 거닌 내 밤길이 내겐 그랬다.

그 정화는 아마도, '욕망'에서 비롯됐다.
누구로부터, 특히 자본으로부터 주입된 가짜 욕망이 아닌,
내 안의 깊은 곳에 있는 진짜 욕망, 말이다.  
최근 만난  ≪나는 차가운 희망보다 뜨거운 욕망이고 싶다≫의 김원영 씨의 것과 같은 맥락에서 일컬어진 그 욕망.

스무살.
'성인'이 됐다고 여기저기서 떠들어대지만, 
실상 대부분 어른들은 무책임하고 치사하기 짝이 없다.
스무살 그네들이 온전하게 자신의 욕망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해야 했다.
그저 자신들이 휘둘리고 있는 가짜 욕망을 그들에게 주입하고자 용을 쓴다.
하긴, 나도 그랬다. 온전히 내 욕망을 모른채 그 가짜가 내 것인줄 알았다.

얼마 전, 한 강의.
김규항 선생님은 열아홉까지 생을 잃어버린 한국의 아이들을 말했다.
스무살 이후를 본격기 인생이랍시고, 아이들에게 온전한 자신의 욕망 혹은 생을 봉쇄하도록 만든 부모들, 그러니까 어른들.  
'오늘이 인생임'을 알려주지 못한 죄.
하긴, 어른이라는 작자들도 모른다. 그네들의 욕망이 제 것인지 아닌지.

무라카미 하루키는, 그랬단다.
어른들한테 호감을 주는 학생은 문제가 있다고. 
적당히 나쁜 짓, 연애질도 하고, 적당히 민폐도 끼쳐야 건강한 청춘.
'요새 젊은 애들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 건지, 쯧쯧' 소리를 들어가면서 학창시절을 보내는 것이 가장 유익하고 정상이라고 믿었다고 한다.

오늘, 스무살이 된 청년들이,
혹은 스무살이 되기 전의 아이들이,
그리고 '스무살 이후'임에도 아직 자신의 욕망을 모르는 어른아이들이, 
온전하게 자신의 욕망과 마주대할 수 있기를.

나 역시 그러하기를. 
아주 약간 정화된, 오늘 내 마음 한 구석에서 부는 바람에게 바라본다.
'정화'라는 표현을 쓰니, 임권택 감독의 <하류인생>이 생각나네.
암! 김민선처럼 예쁜 사람을 만나 사랑하면 충분히 그리 될지니. ^^;

아울러,
어른이라는 작자들, 스무살 이전의 아해들에게,
무한경쟁이랍시고 남들 짓밟고 혼자 잘 먹고 잘 살라고 강요할 것이 아니고,
누군가 어떤 사랑을 하든, 그것을 혐오하지 않고, 억압하지 말 것을 알려줬어야 했다. 학창시절, 동성애를 병처럼 여기며 알랑방구 끼던 어른들의 뻘소리를 나는 아직 기억한다.

5월17일은, 그렇게 아이다호 데이(IDAHO-International Day Against Homophobia & Transphobia,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란다.

지난 1990년 5월17일.
세계보건기구(WHO)가 정신질환 목록에서 동성애를 삭제한 날을 기념하기 위한. 성인이 되는 것은, 그렇게 사람들을 품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나와 달라도, 그들이 가진 진짜 욕망을 인정해주는 것. 이해까지 바라지도 않아!
5월17일 ‘아이다호데이’를 아십니까 / 서정은
게이, 아직도 신기한가요?

아울러, 5월18일. 30년이 됐다.
광주민주화항쟁을 제대로 알려주는 것도 어른들의 몫이다.
나는 스무살이 될 때까지, 어떤 어른으로부터도 5.18을 제대로 듣지 못했다.
나는 그것이 여전히 아프다. 참 좆 같은 일이다.

스무살, 너에게 바친다,
성년의날에 생각하는 미디어와 세계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