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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당신을, 감탄한다...

[항빠순례기②] “새로운 삶을 선택할 용기가 있는가”

말하자면, 나는 극소심한 '김규항 빠돌이(항빠)'인데, 
몇 년 전, 지인의 결혼식에 규항 선생님이 주례를 서신 것을 보고,
정말이지 부러웠다. (그때의 주례사가 궁금하다면,  ☞ 주례사)

늙어가는 이 총각은 우습게도, 멋진 선녀선남 결혼 부러웠던 것이 아니라,
규항 선생님을 주례로 모실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어찌나 부럽던지... 그런 기억이 난다.

오죽하면, 선생님 주례를 하사받을 수만 있다면,
누구하고라도(그것이 남자라도?), 덜컥 결혼(식)을 할 수 있다는 생각까지 짧게...ㅋㅋ
(뭐, 지금은 행여나 결혼을 하게 된다면, 주례 없는 결혼식을 생각하고 있다!)  


지난해 8월, 시기상 여름의 끝물이었지만,
여름이가 그리 순순히 물러날 손. 후끈후끈.
뜨거웠던 그 여름, 그럼에도 내 심장을 더 뜨겁게 달궜던 어떤 강연.

규항 선생님도 강연자로 자리하셨던, 새로운 세상에 대한 꿈을 꾸게 했던 그날의 이야기.

마침 그날 8월28일은,
1963년의 그날은,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워싱턴DC 링컨기념관에서,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라는,
세기의 명연설(물론, 표절 의혹이 있긴 하나)을 한 날.

그날의 강연은 그리하여, 한편으로 묻고 있었다.
당신에겐, 타인이 주입한 것이 아닌, 어떤 꿈이 있습니까!
당신은 어떤 세상에서 살고 싶습니까!

참, 언급한 바 있지만, 내 생의 F4는, 여기 강연을 하신 분 모두는 아니고,
규항 선생님은 F4에 포함되지만, 나머지 세 분은 다른 분들이다.
다시 더 자세히 얘기할 기회가 있을 게다. 

2009/08/30 - [나는 당신을, 감탄한다...] - 'F4'를 만나 오르가슴을 느낀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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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4’가 묻는다, “새로운 삶을 선택할 용기가 있는가”
[독자만남] 『괴짜사회학』출간기념 괴짜 학자들 4인방 대담회


울먹인다. 대학 신입생이란다. 이제 스물 언저리의 청년. 지난 5월 촛불집회 1주년 기념행사에 나갔다가, 전과자가 됐고, 억대 소송도 당했단다. 평범한 사람인데, 전과자가 되고, 보복이 들어오고. 스무 살 언저리의 청년이 감당하기엔 벅찬 무게. 두렵다고 했다. 옳다고 생각해서 한 행동이지만, 이 사회는 그것조차 용납하지 못한다. 이 옹졸함을 어찌 하오리까.

울먹이던 그가, 진중권 교수에게 마음가짐을 묻는다. 장내는 숙연하고, 내 속에서도 울분이 끓어오른다. 내 안구도 젖는다. 대체 누가 무엇이, 평범한, 별다른 죄도 짓지 않았을 법한 이 청년을 울린 건가. 세상이 대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건가. 이에 대한 진 교수의 이야기는 나중에 듣기로 하자.


그래, 잘 들어라. 니가 깜짝 놀랄만한 얘기를 들려주마. 아마 절대로 기쁘게 듣지는 못할 거다. 왜냐 하면, 이것은 ‘F4’를 만난 기록이기 때문이다. 구준표, 윤지후, 소이정, 송우빈, 그 이름만으로도 꺄아~ 소리 지르고 싶겠지만, 그깟 애들, 잊어라. 돌멩이 맞을 각오로 하는 말이지만, 그따위 F4, ‘저리 가라’다. 그렇다면, “도대체 뉴규?”라고 묻겠지. 좋다. 김규항, 우석훈, 진중권, 홍기빈이다. 꺄아아아~ 소리 지르는 당신, 그래! 이 혼미한 세상에서, 그나마 제 정신이로군. 하하.
 

사진제공 : 프레시안


지난달 28일 건국대학교 새천년관. 이른바 ‘괴짜(학자)’ 네 명이 모였다.(그러니까, F4의 ‘F’는 ‘Freaks’의 줄임말?) 김영사, 예스24, 프레시안이 주최한 행사, <『괴짜사회학』출간기념 대담회 “괴짜 학자들, 한국 사회를 뒤집어 보다”>를 위해 모였다. 수디르 벤카데시(Sudhir Venkatesh) 콜럼비아대 교수(사회학)의 <괴짜사회학(Gang Leader For A Day)>의 출간을 기념한다는 명분. 이 괴짜들의 대담은 무려 4시간을 넘어, 따로 쉬는 시간도 없이 달렸다.

따라서 이것은 웃고 울리며, 그들과 함께 호흡했던 시간을 담은 기록이다. 괴짜들이 펼치는 괴짜 대담. 당신도 괴짜(가 되고 싶다)면, 작금의 한국 사회를 고민한다면, F4를 만나라. 이것은 한편으로, 한국 사회에 청진기를 들이댄 불온한 아이콘 4인방이 전하는 지금-여기의 환멸을 참고 견디는 법. 쥐의 공습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법. 사회를 맡았던 김민웅 교수의 인사말로 그 진단은 막을 올린다. 

“반갑다. 오늘 이 자리에서는, 『괴짜사회학』이 고민한 것이 우리 사회에도 통할 수 있을까를 진단해 본다. 이 책에서 저자는 시카고 빈민가의 흑인 갱단에 들어가 갱들과 어울리면서 지역 문제를 파헤치다가 보스와 친해진다. 4년 정도 갱과 어울리면서 저자는 마약, 매춘, 재개발 등등 미국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들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오늘 4명의 소장 중견학자를 모셨다. 이 분들은 한국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를 거침없이 일격하면서, 우리 사회를 눈뜨게 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한 분씩 모셔서 얘기를 들어보자.” (박수) 

각자의 심볼로 알아보는 F4의 근황

‘88만원 세대’, 우석훈 교수 : 『88만원 세대』는 당초 전체 12권 정도로 한국 사회의 문제를 다루고자 시작했다. 한국이 갖고 있는 독특한 20대 문제를 다루면서 2천권이 팔리든지, 10만권이 팔리든지, 둘 중의 하나라고 봤다. 20대가 책을 안 본다고 가정하면 2천부, 20대가 보면 10만부라고 예상한 건데, 출판사는 1천부를 봤다. 그런데 예측이 틀렸다. 10만부가 넘었다. 『88만원 세대』로 20대 문제가 (사회적으로) 약간 환기가 된 것 같은데, 문제가 풀린 것은 없다.

다만 1~2년 내 폭발적인 전기가 오지 않을까 기대한다. 사람이라는 게 너무 맞고 무시당하면 못 참거든. 1~2년 내 못 참을 때가 올 것 같다. 대통령이 이명박이니까. 다음 계획이라면 농사를 지어보고 싶다. 한 7년 정도 됐는데, 마흔이 되면 은퇴하고 농사를 짓겠다고 마음 먹었었다. 지금 마흔이 됐는데, 은퇴할 준비가 안 돼서 아직은. 장소는 서울에서 먼 곳으로 가고 싶다. 우리밀 소주를 만들고 싶다.

‘뇌주름 섹시’, 진중권 교수 : 잘리는 경험이 처음인데, 그렇게 중요한 인물인지 몰랐다. 과대평가한 게 아닐까. 스스로 평가하는 것보다 저들이 과대평가하고 있는 것 같다. 잘 생긴 것도 아닌데, 다만 뇌주름이 섹시하다고는 하더라. 통섭교육은 생산력 형태가 달라지는데 따른 자연스러운 변화다. 통섭은 좌우 상관없이 다른 나라에서 다 하는 것이다. 반대하는 분들은 생각이 없는 분들이다. 아예 무대를 뽀개고 있으니. 교수자리 3개를 끊고, 저들은 내가 생각하는 상상 이상이다.

‘싸가지 없다’는 지적이 많은데, 내가 싸가지까지 있으면 큰 일 나지 않겠나. 우리 사회는 그런 면에서 참 답답하다. 풍속의 감시자인양, 왜 어법 갖고 문제를 삼는지. 진중권의 문체가 하나만은 아닌데. 어법의 강점? 절대 흥분하면 안 된다. 흥분하면 지는 거다. 가장 훌륭한 복수는 적보다 행복하게 사는 것이고, 그 사람을 미워하면 지는 거다. 한 달 반 동안 내가 좋아하는 그림에 대해 새 책을 한 권 썼다. 미술작품 12개 정도를 뽑았다. 유명 명화는 아니더라도 느낌이 와서 꽂히는 것들을 섬세하고 디테일하게. 

‘칼 폴라니’, 홍기빈 : 우리는 지난 100여년 동안 시장경제체제를 놓고 없애느냐, 살리느냐, 고칠 거냐, 이 세 개 옵션만 놓고 논의해 왔다. 그러나 폴라니는 (이 체제가) 좋다, 나쁘다를 얘기하기 전에, 이것이 인간사회에 어떤 위치에 있는지, 실제 존재하는 것인지를 묻는다. 차원이 다른 종류의 얘기다. 지난 금융위기를 거치며 미국에서는 케인즈가 복권됐다고 하는데, 케인즈 복권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시장이 인간 사회에서 차지하는 위치에 대해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경제보다 더 심각한 것은 환경문제다. 케인즈는 금융시장을 아주 혐오했고, 범죄적으고 문제 많은 제도라고 생각해서 정부를 통해 고쳐야 한다고 봤다. 칼 폴라니가 시장 문제에서 주목한 것은 국가가 아니라 사회였다. 케인즈와 하이에크를 지나 이번에는 폴라니 차례가 돌아온 것 같다. 80년대 초부터 형성된 신자유주의 지구적 질서는 근본적으로 끝났다. 지금 상태로 계속 갈 수는 없다. 정치와 경제의 구분은 무의미하고 잘못됐다.

경제학을 공부하는 목표는 경제학자에게 속지 않기 위한 것이다. 그러니까 제가 말할 때 속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이명박 정부가 4대강 사업에 22조원을 투입하겠다는데, 고속철 사업에서 보듯, 예산은 짓다보면 늘어나고 잠재 예상은 100조원이 될 거다. 그 100조를 확 나눠줬으면 좋겠다.

‘불온한 B급 좌파’, 김규항 : 『나는 왜 불온한가』는 출판사 마케팅팀에서 붙인 제목이다. 바꾸면 안 될까 하고 물어보기도 했는데, 민망한 제목이다. 불온은 중립적인 말이다. 민주화 30년은 정치적 민주화를 말하는데, 이것은 정치적 자유뿐 아니라 자본에게도 자유를 줬다. 현재 한국을 살아가는 아이들 보면, 민주화된 것은 분명하다. 내가 학교를 다닐 땐, 학생과 교사가 서로 ‘건설합시다’라는 구호를 하면서 경례를 했다. 참 더러운 세상이었다. 또 그 때는 오후 3시에 소재가 파악되는 아이들은 아프거나 징계 중인 아이였다. 나머지 아이들은 노는 거였다.

그러나 지금은 1시간 정도 소재가 파악이 안 되면 사고다. 세계에서도 아이들이 이렇게 생활하는 아이들은 대한민국 밖에 없을 거다. 민주화가 됐는데, 지금 아이들은 군사파시즘 시절의 아이들보다 더 못하게 살고 있다. 어른들도 비슷하게 살고 있고. 지금 이명박 씨가 우리에게 하는 모습과 우리가 아이들에게 하는 모습이 똑같다고 생각한다. 그는 외계에서 우리를 괴롭히기 위해 온 게 아니다. 나름 최선을 다하고 있다. 가치관이나 철학이 잘못된 사람이라서 그렇지. 아이들 미래를 위해서,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서라고 하는 건 똑같다. 우리 안에도 이명박이 있다. 어떤 체제를 반대하는 사람들 자체도, 체제가 내면화될 수밖에 없다.

일례로 이건희를 욕하는 사람과 이건희와의 차이가, 돈 있고 없고의 차이 밖에 없다면, 그건 차이가 없는 거다. 『예수전』은 예수가, 우리의 문제와 고민들을 직관적으로 통찰력 있게 보여주고 해명해 주는 부분이 많다는 생각에서 썼다. 한국 교회에 대한 비판이 적어서 섭섭하다는 얘기도 많이 들었다. 집이 보수 신도들에게 포위되고 린치 당하고 이럴 줄 알았는데. 2권을 쓴다. 교회 개혁운동 얘기 많이 하는데, 이건 좀더 근본적일 필요가 있다.


이어진, 대담의 시간. 사회자 김민웅 교수가 토론에 앞서, 『괴짜 사회학』의 배경인 ‘시카고’가 미국에서 가지는 역사적․사회적 의미와 인도 뭄바이를 배경으로 한 『슬럼독 밀리어네어』의 얘기를 꺼내며 화두를 던진다.

“부자인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에게 질문만 던지고, 가난한 사람들은 대답만 해야 한다.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에게 질문을 던질 수 없을까? 용산참사에서 보듯이 우리 사회는 가난한 사람들이 던진 질문에 어떻게 대답할 수 있을까? 『괴짜 사회학』은 재개발 프로젝트라고 하는 것이 빈민을 쫓아내기 위한 것임을 폭로한다. 용산참사 역시 마찬가지가 아닐까.”

“우리 사회는 가난한 사람들의 질문에 어떻게 대답할 수 있을까”

- 한국에서의 경찰은 도대체 어떤 존재인가.

(진중권, 이하 진) 촛불집회 처음에는 달랐다. 커피를 주기도 하고, 닭장차를 타면 제도화된 민주주의 느낌이 있었다. 그러나 이번 정권에서는 적대적이 됐다. 요즘 경찰의 구호가 ‘국민에게 달려가겠습니다’인데, “제발 오지마”라고 말하고 싶다. (웃음) 섬뜩한 느낌이 든다. 과거의 경찰 이미지가 다 무너져 내렸다. 80년대의 익숙한 경찰로 다시 돌아온 것 같다.

(우석훈, 이하 우) 두 가지 관점이 있는데, 노무현 정부 중간에 경찰국가로 바뀌고 있다고 생각했다. 한국 자본주의가 경찰 없이는 지킬 수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이번 정부 와서 그 속도가 빨라진 거다. 정서적으로 경찰국가에 사는 게 괴롭다. 5년 간 죽었다고 생각하고 사는 주의인데, 한국 우파들은 참 무능하고 치사하다.

국내총생산(GDP) 2만달러 정도 가면 대개 지하경제를 통제하는 수준이 돼야 한다. 지금 통계상 10~15%를 지하경제로 보는데, 실제는 그보다 더 클 거다. 한마디로 깡패국가다. 두목이 이명박이고. 지금 시스템은 깡패들이 살기가 제일 편하다. 비공식 경제는 깡패들이 갖고 있는 비중 높은 편인데, 사실 그건 경찰들이 막아야 한다. 그러나 최근 경찰 보여준 모습은 비열하다. 

(홍기빈, 이하 홍) 흥미로운 현상이 있다. 쌍용차 사태와 관련해, 경찰이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했다. 경찰 조직이 공적 기구인지, 민간 행위자인지 헷갈리는 거 같다. 가령, 소방서가 불을 꺼준 뒤 수도값 내라고 얘기하고 대원들 다친 돈 내놔라고 하면 골 때릴 수 있는 건데. 지금 경찰이 손배소송을 냈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다. 한 마디로, 그들은 공적기구라기보다 사적영역에서 싸움꾼 행세를 한다는 거다. 근본적으로 인식을 전환하고 있는 것 같다. 이게 걱정된다.

(김규항, 이하 김) 남미에 가보면 부잣집 앞에 라이플을 든 경비들이 있다. 경찰들도 부자 편인데 그것도 모자라 사설경호원까지 둔다. 군사독재에서 자본독재로 전환하면서, 경찰 임무가 국가기강과 같은 것보다 부자들 이해를 돕는 쪽으로 전환하고 있다. 주체적으로 경찰이 바뀐다기보다 사회가 어떤 상태인지를, 경찰이 하는 짓을 보면 파악할 수 있다. 

- 폭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사진제공 : 프레시안

(김) 비폭력주의가 2000년대 이후 양식 있는 사람들에게선 중요한 얘기로 회자되고 있다. 거기에 대해 비판적인 얘기를 한 적 있는데, 세상에 폭력주의자는 한 명도 없다. 폭력이 좋다고 말 하는 놈은 한명도 없다. 변태나 사적인 영역에서 미친 짓하는 사람 아니면. 부시도 악의 축에 맞선 저항이라고 했지, 폭력이라고 한 적은 없다.

말로서 비폭력주의는 아무 소용이 없다. 서재나 일 년에 빰 한 대 맞을 일 없는 안온한 사람이 폭력은 나쁘다고 말장난 일삼는 건 정말 끔찍한 폭력이다. 작금의 촛불에서의 폭력이 대단한 폭력은 아니다. 그렇게 말하는 건 어폐 있지만, 사람이 사회의식을 갖는다는 것은, 사회적 지평을 봐서 더 못한 사람, 그 전에 생각을 못했는데, 더 많이 맞는 사람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자각에서 비롯된다. 진정한 비폭력주의자는 폭력주의자에 의해 희생당한다. 예수, 간디를 봐라. 간디는 비폭력주의자였지만 항상 폭력의 현장에서 있었다. 그것이 중요하다. 이런 것에 대해 성찰할 필요가 있다.

(진) 80년대 관통하다 보니, 어딘가로 끌려가고 물도 먹고 매혈도 해야 맞았다고 말할 수 있지. (웃음) 경찰버스창을 깨고 이러는 걸, 폭력이라고 말하는 것은 굉장히 불편하다. 사실 법질서의 토대가 폭력이다.

두 번째로는 우리 사회는 과개발의 정치와 저개발의 정치가 어정쩡하게 겹쳐 있다. 과개발은 선진국, 저개발은 후진국형인데, 촛불집회가 전형적인 과개발의 정치였다면, 용산사태는 전형적인 저개발의 정치였다. 폭력을 얘기하기 전에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용산 같은 경우가 성남에도 있었는데, 아무 문제없이 해결됐다. 해법이 있다. 정부나 언론이 그것을 해야 한다.

(우) 내가 제일 폭력주의자일 것이다. (웃음) 짱돌 정도는 던져도 된다고 생각한다. 내 기준으로는 방화는 안 되지만, 유리창 정도는 깨도 된다. 프랑스에 살았는데 3년 전 프랑스 정부가 시행하려고 하던 고용법이 통과가 안 됐다. 프랑스 시위가 평화롭다는 말은 다 뻥이다. 걔네들은 일정한 패턴이 있다. 앞에 대형 스피커를 달아놓은 무대차가 지나간다. 그 위에서 애들이 그냥 춤추고 논다. 프랑스 대학생들은 손뼉 치고 노래 부르면서 꽃을 들고 다닌다. 그 뒤로 십대 청소년들, 무장한 10대가 있다. 유리창이란 유리창은 다 깨고 눈에 보이는 것은 불지른다.

생각해 보라. 십대가 불 지르면 뭐라 하기도 참 난감하잖나. 걔들은 그렇게 하는데, ‘우리나라엔 무장 10대가 없어서 지는 구나’ 싶다. 앞으로 집회하는 분들은 전략적으로 무장 10대를 달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방화는 하지 말자가 내 소신이다.

(홍) 폭력하면 대개 물리적 폭력 말하는데, 그게 다가 아니다. 우리 사회 심한 폭력은 언론이다. 특히 조중동. 이들 신문을 가끔 보면 섬뜩하다. 이렇게 노골적으로 증오와 적대를 선포하는 신문을 보지 못했다. 깡패 용어로 다구리라고 하는데, 이건 몰매를 맞는 게 낫지, 이렇게 당하는 건 문제가 크다. 우리 사회는 이런 폭력을 폭력으로 보고 제어를 하는 게 약하다. 조중동은 정치적 논조와 무관하게 폭력의 관점에서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시장의 폭력에 대해서도 한마디 하면, 줄빳다라고 들어봤는지 모르겠다. 한국과 일본에 있다. 일본의 통치 구조를 보면, 천황을 정점으로 조금씩 기울어져 있는 저울형태다. 천황이나 상급자가 줄빳다를 치면 그 사람은 아래 하급자를 패고, 인간 피라미드에 의해 빳다의 물결이 흐르는, ‘다단계 빳다’가 형성된다. 돈은 위로 흐르고 빳다는 아래로 내려간다. (박수)

유럽 근대국가는 사회 전체를 법과 국가 폭력 앞에 줄빳다 세우는 원리로 형성됐다. ‘법 앞에 모든 사람이 줄서야 된다’는 거다. 19세기 들어오면서, 이 줄빳다 논리는 시장으로 간다. 폴라니가 쓴 『거대한 전환』에서는 국가 줄빳다에서 시장 줄빳다로 전환하는 순간이 2/3를 차지한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박정희에서 전두환으로 가는 과정이 전 사회를 줄빳다 놓는 시기였다. 지금 우리가 처해 있는 시점이 줄빳다의 논리가 시장으로 옮겨가고 있는 시점이다. 신자유주의 질서가 본격적으로 들어오면서 김대중-노무현 정권 10년 동안 ‘이것저것 다 필요없다. 돈 버는 게 장땡’이라는 합의가 이뤄지고 있잖나. 이 합의 위에 세워진 이명박 정권은 1970년대에 비유하자면 유신과 같다. 용산 참사, 쌍용차 사태는 72년에 유신이라는 폭거와 마찬가지로 시장이 본격적으로 사회를 줄빳다를 치기 시작했다는 신호로 봐야 하지 않나 싶다.

(우) 선진국은 사람들 행위가 돈으로 50% 이상 설명되지 않는 국가를 말한다. 반면 후진국은 90% 이상 행위가 돈으로 설명이 된다. 프랑스가 (GDP) 2만달러 넘어설 때, 독일계 가수의 노래가 1등 먹었다. 부자들 조롱하는 노래였다. 그런데, 우리는 어땠나. 2만달러 넘어설 때, 너나 할 것 없이 ‘부자 되세요~’라는 인사말을 썼다. 그렇게 해서 선진국이 된 나라는 하나도 없다.

원래 시장은 폭력적이나 합리성이라도 있는데, 한국은 촌스럽다. 주먹, 돈 많은 작자들의 치사함이 있었다. 게임값 물더라도 죽이겠다는 것이 한국의 시장이다. 시카고, 파리, 런던은 시장의 폭력을 얘기할 수 있는데, 한국은 돈에 대한 욕망만 있지, 시장이라고 할 만한 게 없다. ‘부자 되세요~’라는 말의 속도가 퍼진 만큼의 속도로 망할 거다. 그러지 않기 위해선 노는 것을 회복해야 한다. 삽질하는 나라는 생각하는 나라를 이길 수 없다.

- 왜 가난은 발생하는가. 빈곤은 뭘까.

(홍)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자유주의가 만들어놓은 근대사상의 허구가 있다. 부와 자유가 개인의 속성이라는 것이다. 개인이 잘해서 개인이 부유해질 수 있다는 건 거짓말이다. 농경사회에서는 가능하나 산업사회는 불가능하다. 농경사회에서는 나라님이 뭘 하든, 전쟁이 나든, 내가 내 땅에서 노동을 해서 거뒀다고 할 수 있으나, 산업경제에서 누가 어느 만큼을 기여했느냐는 회계분석을 해도 안 나온다. 사회 전체가 다 같이 뭔가 하지 않으면 풍요해질 수 없다.

신자유주의는 존 로크나 아담 스미스가 농경제가 압도적일 때 이론을 만들다보니, 산업경제에서는 절대 적용할 수 없는 거다. 자유주의는 자기가 잘 나서 자기가 부유해질 수 있다고 얘기하는 거다. 섣불리 말하자면, 신자유주의식으로 경쟁시켜서 게임을 하면 사회 전체는 거지가 된다. 서로가 사회 전체의 파이를 늘리는 일에는 관심이 없게 되고.

지금의 경제학은 파이가 느는 것, 그 사람이 돈을 벌었다는 것은, 사회에 기여를 했다는 증거라고 가르치는데, 이건 기만이다. 농경제 시대의 빈곤발생 메커니즘과 산업화 시대의 빈곤발생 메커니즘은 다르다. 산업화 시대에서는 산업조직을 어떻게, 부를 어떻게 배분하느냐에 따르기 때문에 빈곤은 철저히 사회적이다. 분명히 산업경제에서는 개인의 부가 아니라 집단의 부가 먼저 있었다.

(김) 예수는 철저히 가난한 사람들의 편이었다. 그러나 제자들에게 내일 입고 먹을 일에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깊은 통찰이 들어있다고 생각하는 게, 이 체제에서는 가난하다는 의식이 또 가난을 만들어 낸다. 실제로 빈곤하다고 할 수 없는, 오늘 삶에 감사하고, 문화적 풍부하게 살 수 있는 사람들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안정이라는 공포가 있다. 절대 빈곤 상태는 아니다.

진짜 먹고사는 문제에 시달리는 사람은,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해 얘기할 틈도 없다. 신자유주의가 뭔지 떠들만한 것도 없다. 잔고가 0인 사람은 걱정이 없는데, 잔고가 100만원인 사람은, 잔고가 80만원으로 내려가면 불안하다. 아직 가난하고 모자란다는 생각이 실제적인 가난을 만들기도 하고, 내 아이니 미래를 위한답시고 죽어가는 거다.

구전 가요 중 진리가 있다.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무계획 무책임하게 살자는 얘기가 아니다. 쉬고 놀고 서로 사랑하고 문화적 활동하면서 사는 것이다. 일은 그런 걸 하기 위해 하는 것이다. 아직은 모자란다는 의식이 우리 삶을 굉장히 조악하게 만들고 있다.

지금 한국이 재난영화의 현실이다. 재난영화에서 아이를 가진 부모가 할 일은 정신을 차리는 일이지, 아이 손을 잡고 미국으로 가는 일이 아니다. 가난을 실천해야 한다는 이런 걸 떠나 ‘내가 아직은 가난하다’는 의식 자체가 오늘의 삶을 없앤 것이다. 내년이고, 5년, 10년이고 공포에 젖어 가는 거다.

이명박 씨가 민주적 절차로 뽑힌 것도 한국의 정치적 의식을 보여주는 것이다. 공포의 심리다. 이명박 씨가 경제를 살리겠다는 것 하나로 대통령이 된 것도 시민들 스스로에게 가난하다는 공포가 작용됐기 때문이다. 정말, (이명박 씨는) 미감을 해친다. 사실 신경 쓰지 말자고 해 놓고선, 저도 감정이 있는 사람으로서... (웃음) 아이들에게 (이명박 씨가) 왜 싫으냐고 물었다. 초등 고학년들인데, 스타킹으로 씌워 놓은 것 같단다. (폭소) 성찰하자는 것이 아니라, 가던 길 멈추고 한번 되돌아보자 얘기하는 거다.

사진제공 : 프레시안

(우) 1970~80년대에는 체계적인 기아가 없었다. 90년대 들어 기아인구가 전세계적으로 늘어난다. 지금 전 세계의 딱 반이 기아인구다. 세 끼를 다 못 먹는. 한국은 1%가 세 끼를 못 먹는다. 그렇다면, 누가 가져갔느냐.

기아가 생긴 이유를 다국적 기업이 가져갔다 얘기하는데, 그건 정답이다. 세상의 빈곤이라는 게 없어질 수 있을까. 정치인을 정의해보니, 빈곤과 싸운 사람이 진짜 정치인이었더라. 인류는 국가를 만든 이후로는 빈곤에게 이겨본 적이 한 번도 없다. ‘밥은 먹여라’, ‘아프면 치료해줘라’, ‘공부하고 싶으면 책을 좀 줘라’, 이것만 하면 ‘좋은 경제’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이거 세 개 다 해결이 안 된다. 태어나면 이 정도 해줘야 하는데, 부모들이 이걸 해 줄 수 없으니까, 애를 안 낳는 거잖나.

- 학교는 뭐하고 있을까. 대학은 죽어가는 반면, 비제도권에서는 인문학 강연이 풍성해지고 있는 현상은 어떻게 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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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 대학이 다 망해가고 있다. 기업 연수원 비슷해졌다. 대학이라는 것은 국가와 협력할 때는 하고, 시장과 협력할 때는 하고, 국가나 시장이 잘못되면 경고시스템을 줘야하는데 그걸 안 한다. 근시안에 의해 대학이 몰락하고 있다. 인문학, 사회학 등 다 죽여 놓고. 한 대학은 교양필수과목이 ‘회계학’이다.
미래는 상상력이 콘텐츠가 생산력의 시대 아닌가. 일본 만화를 보면, 이건 그냥 만화책이 아니다. 웬만한 인문서적보다 낫다. 우리나라는 아니다. 성과 없으면 감사하고, 이런 발상들만 있다. 우리나라에도 콘텐츠 학과라고 있다. 뭐 배우냐고? 그냥 콘텐츠만 중요하다고만 배운단다. 역사, 철학, 문학 없이, 상상력, 창의력 다 죽여 놓고 가능하겠나. 대학은 사회적 경고음을 날리는 존재다.

(김) 통계를 보니 80년대 초에 한국의 대학진학률이 20% 정도였는데, 지금은 90%에 가깝다. 대학 가려고 하면 다 간다. 정원이 많아졌고, 상향지원만 않으면. 문제는 대학생이나 부모는 관심이 없다는 거다. 훌륭한 인간을 키우기 위해 대학에 다니거나 보내는 게 아니다.

학벌 없는 사회 운동이 안타까운 것은, 학벌문제를 비판하는 게 학벌주의자라는 것이다. 악순환이다. 정서적인 얘기를 하는 게 아닌가 싶지만, 진보와 활동하는 인텔리는 탐욕이 있다. 공포가 아닌. 내 아이가 좋은 일류대학을 가서 진보 엘리트가 되길 바라는 거다. 욕심도 많지 않나? 노동운동 하는 사람이 자신의 아이가 노동자나 민중이 되는데 공포를 느낀다. 윤리적인 얘기를 한 것이 아니라, 어떤 삶이 더 충만하고 행복한가를 따져 묻는 거다. 모든 부모는 자기 아이가 잘 살 수 있도록 노력하고 지원해야 하는데, 문제는 잘 산다는 것이 뭐냐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한다는 점이다. 지배체제나 소수가 가지고 있던 생각을 지금 광범위하게 가지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 교회 문제를 얘기해보자. 이명박 체제의 문제 가운데 교회 요소가 빠질 수가 없다.

(김) 한국에서 사업하려면 대형교회를 나가야 한다. 그 안에서 모든 비즈니스와 아이들 결혼 등이 이뤄진다. 현실적으로 일어나는 폐해의 연원을 들여다보는 게 유익할 수 있다. 따져 보자. 예수는 기독교인이 아니었다. 분명히 예수는 새로운 종교 만들려고 한 흔적이 없다. 예수의 신성조차도 325년 니케아 주교회의에서 결정됐다. 교회와 기독교 문제를 생각할 때 어느 정도까지를 진정한 교회를 두는가, 연원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교회라는 사회문화정치의 현상으로서 간단히 비평할 수 있을 뿐인데, 그런 것으로는 한계가 있다.

(진) (이명박 씨가) 소망교회의 장로가 되기 위해 주차장 정리했다고 하잖나. 그것은 정치를 위해서가 아니라, 정말로 교회를, 예수를 믿는 것 같다. 그래서 문제가 된다고 생각한다. (웃음) 그래서 종교를 버리는 게 낫겠다.

(김) 첨언을 하면, 종교를 버리겠다는 것이 종교적이다. 천당지옥을 얘기하는 건 전근대적인 사고방식이 반영된 것이지, 종교 자체의 것은 아니다. 조화롭게 큰 욕심 없이 살아야 한다는 것이 종교적이라고 보는데, 현실에서 종교라고 하는 것은 종교 체제다. 종교를 버리겠다는 것에서 종교적인 느낌이 든다. 주변에서 종교적이라고 생각되는 사람은, 종교를 버리겠다거나 종교가 없는 사람들이다. (웃음)

(홍) 한국자본주의의 정신적 기반과 한국교회의 정신적 기반이 일치하는 게 있다. 무데뽀 정신으로 물질적 풍요를 이루겠다는 것이 똑같다. 이건 60년대 이후 한국 기독교를 얘기하는 것이다. 맨손으로 교회를 만들었더니 캐쉬 플로우(현금 흐름)가 발생하는 거다. 기독교 패러다임과 박정희 이후의 자본주의 패러다임도 똑같다.

인류학적으로 얘기할 필요도 있는데, 교회를 한번 생각해보라. 대단한 비즈니스다. 원자재비용이 없다. 설교자만 있으면 된다. 설교자도 인덕이 있어서 아주머니들을 잘 구슬리면 돈이 생긴다. 이 정도의 현금 회전율을 가진 것은 비즈니스 차원에서 환상이다. 한국 자본주의의 정신적 기초는 내가 보기에 한국 개신교의 부흥교회와 일치한다.

요즘 내 생각은 (교회는) 본연의 임무에 충실했으면 좋겠다. 신자유주의 이념이 호모 이코노미쿠스다. 돈이 되지 않는 욕구, 상상은 처박아 두라는 메시지를 주고 있는데, 이에 싸워야 되는 사람은, 첫째 인문학자고 둘째 종교인이다. 이런 얘기 팽배할 적에 영혼의 의미는 무엇일까, 라는 그 질문에만 대답했으면 좋겠다.

교회 얘기에서 떠오른 한편의 영화. 최근 개봉한 영화 <독>에는, 종교에 관심도 없는 아버지, 형국이 갑자기 교회에 나간다. 어릴 때 갔었다는 이유를 들며. 진짜 이유는 물론 다르다. 비즈니스 때문이다. 그의 공장과 비즈니스를 하는 윗집의 박 장로와 장 권사가 기독교인이다. 가족을 데리고 교회에 나가고 300만원이나 되는 돈을 헌금으로 내놓기까지 한다. 교회의 힘을 본다. 기독교 아닌 한국 기독교의 어떤 힘을 본다. 거기에는 순수한 종교적 열망이나 신념은 없다. 그저 중산층 커뮤니티로 입성하는 단계이자 사업적 관계를 위한 포석, 자신의 죄에 대해 어떻게든 용서를 구해 어떤 벌도 받지 않고 잘살고 싶은 욕망이 뒤범벅된 우리의 굴욕이 있을 뿐이다. 

- 최근 두 분 대통령이 돌아가셨다. 대통령 당시 비판을 많이 했었는데, 지금은 아픔과 슬픔을 나누고 있다. 느낀 바가 있다면. 

(우) 노무현 정부 생전에 많이 싸웠다. DJ 때는 정부기관에서 일했다. 그래서 DJ는 공직자 시절의 기억 같은 것이다. 사실 DJ가 돌아가실 줄 몰랐다. 평생의 숙적이라 YS가 죽기 전까지 돌아가실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눈물은 안 났는데, 앞으로 한국 어떻게 될까 생각하니 길이 안 보이더라. 김대중만한 사람이 한국에 나올까. 안 나올 거다. 다만 안티히어로는 있는 것 같다. 안티히어로에 의해 우리가 영웅을 만드는 시절이 오지 않을까.

(홍) 두 양반의 노선을 반대했고, 지금도 반대하지만, 뜨끔하고 괴로웠다. 반대함에도 눈물 나고 죄송했다. 이 두 분이 개인적 신념은 어찌됐든, 이 분들은 중도였다. 두 양반의 노선은 한쪽에 치우치지 않으려고 면도날 위를 기어가는 달팽이처럼 기어가면서 속은 썩어문드러졌을 것이다.

(진) 서거 추모는 추모로 끝날 것이 아니라,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가 더 중요하다. 잃어버린 10년을 계속 써야 한다. 1년 반 만에 우리는 10년을 잃어버렸다. 두 분 대통령 돌아가신 뒤, 통합 얘기 나오는데, 시대를 향한 메시지가 있어야 한다. 시대정신을 설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김) 두 분이 먹고살만한 사람들한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지만, 서민에게는 나쁜 대통령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맘이 안쓰러운 것은, 여건이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구제금융을 수습하거나 권력은 시장에 넘어갔다는 말을 할 만큼 신자유주의가 진행된 시절에 권력을 넘겨받아서 안쓰러웠다. 

이어서, 각자 한명 씩 청중석을 돌아다니며, 직접 문답을 나누는 시간이 돌아왔다.

- 중앙대 학생이다. 최근 중대에서 진중권 교수 임용 거부를 계기로 ‘줄빳다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어떻게 보나.

(홍) 최근 진 교수가 겪은 일련의 사태를 보면 그렇다. 옛날에 데모했을 때는, 제재가 감옥에 가거나 징계를 당하는 방식이었다면, 지금은 스펙에 흠집을 내는 방식이다. ‘어디 잘 되나 보자’는 방식이 더 무섭다. 온 나라의 20~30대에게 영어공부 물결친 지가 10년 넘었는데, 이는 기업들이 토익점수를 보겠다고 해서 이렇게 물결이 친 거 아니냐.

그런데 문제는 대기업의 그런 기준에 대해 욕하는 사람이 없다는 거다. 서점의 경제경영서를 보면 코웃음 쳐지는 책이 있는데, 『마시멜로 이야기』. 대체 누가 100만부나 사라고 한 거냐. 시장 줄빳다는 이런 식으로 작동한다. 방식은 다르지만, 효과는 더 높다. 자발적으로 하니까. 이게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지 보면, 시장 폭력이구나 싶더라. 진중권 선생이 중요한 케이스가 아닌가 싶다. 우리는 연대할 필요가 있다.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 행동도 않고 비판도 않는 20대에 대해 ‘시대 개새끼론’이 있다. 88만원 세대라고 해서 동정도 받지만, 행동을 않는다고 비판도 받는 게 20대다. 왜 이리 비판받고 힘들 수밖에 없는지 모르겠다. 20대에게 한 말씀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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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 어느 쪽에도 찬성하는 건 아니다. 내가 신촌을 사는데 연대 쪽으로는 안 간다. 돈, 호르몬, 술이 흐르기 때문이다. 영혼이라는 문제를 생각해보라. 육체적으로는 2차 성징이 나타나면 크나, 영혼은 23~24세에 큰다. 아리스토텔레스를 보면, 영혼이 큰 인간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20대에게 하고 싶은 말은, 30~40대, 50~60대 부닥치는 문제들 가운데 돈 가지고 해결되는 문제들은 없다는 것이다. 그때 내 영혼이 얼마나 강건하고 풍부한가, 그것밖에 없다. 지금 20대들 스펙관리한다고 하는데, 안타까운 것은 스물다섯이 넘어서는 영혼이 더 이상 커지지 않는다. 영혼의 크기가 형성되는 시기임을 잊지 말고 70~80세 까지 행복하게 살려면 영혼을 키워야 한다. 스펙 때문에 영혼을 찌그러트리지 말라.

- 10대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나, 서울을 떠나 지방으로 가는 것에 대해 해 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우) 대세를 따라간다는 생각을 버리면 된다. 대학 못가면 어떤가. 20대들이 보수화 됐다는 그런 말이 있는데, 그게 아니고, 쫄아 있는 것 같다. 쫄아 있는 게 문제라고 생각하는데, 아직은 덜 맞은 것 같다. 아직 3년 반이 남아서 충분히 시간도 있고, 우린 이명박 씨의 얼굴만 조금 본 거잖나. 속마음도 못 봤고, 뇌도 못 봤고. 이명박 씨가 충분히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웃음) 20대 때 농촌으로 가는 것은 지금 가면 뻔하니까, 가라고는 말은 못하겠다. 그런데 책 잘 파는 저자들이 사회에 기여하는 바가 별로 없다. 사회한테 받은 건 사회에 돌려줘야 한다.

- 중학교 2학년이다. 3시 반에 수업이 끝나는데 강연이 2시 시작이라 조퇴를 하고 왔다. (박수) 촛불집회에 참여했는데. 친구가 이것을 학교 게시판에 올렸다. 선생님들이 불러 뭐라고 하더라. 10대로서 갖춰야 할 것이 있다면, 사회 나갔을 때 어떤 것을 갖춰야 하는지. 

(김) 돌아가신 권정생 선생이라고 계신다. 아동문학가 중에서 인세수입이 가장 많은 분일 거다. 이 분이 생전에 한달 생활비가 한 30만원이었다. 그것도 당신이 다 쓰는 것이 아니었다. 권 선생 안동 집에 가보면,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집이 아니다. 뱀이 방 안에 들어오고 정말 생태적인 집이다. 이오덕 선생의 아들 분이 생전에 권 선생을 충주의 소박하고 작은 집에 모셨다. 모시자마자 불편하니 (안동)집으로 가고 싶다고 하셨다. 권 선생은 가난해야 된다, 그런 생각으로 한 게 아니라, 그게 더 편한 거다. 30만원 쓰고 집 같지 않은 집에서 사는 게 더 편한 거다. 이른바 ‘자발적 가난’인 거지.

몇 억 원을 벌면서도 이런 식의 삶의 태도가 훌륭하고 가치가 있어서 본받아야 된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다. 우리는 많이 벌고 쓸수록, 경쟁에서 이겨야 된다는 기준을 갖고 있는데, 꼭 그렇지 않다. 가령 대기업 다니는 사람도, 억지로 잡혀 있는 것처럼, 그만두지 않는 가장 고상한 방식을 쓰고 있다. 싫으면 그만둬라. 안 죽는다. 원래부터 대기업 안 다닌 사람도 많다. 실제로 그렇게 한 사람에게 나중에 몇 달 후나 1년 후에 물어보면 그런다. 처음에는 조금 힘든데, 훨씬 편하고 가족들도 밝아지고 좋아진 거 같다고.

우리는 위로 꼭 가야된다는 전제를 갖고 있는데, 꼭 위로 가지 않아도 된다. 더 나은 삶이 있는데, 전혀 생각하지 않을 정도로 엄마아빠가 공포에 젖어서 그런 거다. 다른 삶도 가능하다. 얼마든지 비껴나서 살 수 있고, 죽지 않는다. 놀기 위해 살아야 한다. 놀기 위해 일해야 한다. 두려워 할 것도 없고.

청중들과의 이야기가 끝나고, 대담을 마무리 하면서 사회자가 소회를 겸해 “딱 하루 대통령이 된다면?”이라는 질문을 던졌다. F4 각자는 이렇게 얘기했다.

(우) 책 보는 사람들은 절대 지지 않을 거다. 특히 골프 치는 놈들한테는 지지 않을 거다. 내 신념이기도 하고, 내가 살아가는 모습이기도 하고. 대기업 그만두는 짓을 해 봤는데, 꽤 높은 직급이었다. 그래도 먹고 사는 데 아무 지장 없더라. 물론 순수하게 그랬다고 말하긴 어려운 측면도 있지만. 대통령이나 장관 같은 건, 한 번도 생각 안 해봤지만, 12시 전에 일어나는 것은 무조건 싫다. 대기업 그만두고 얻은 2가지 특권이 있다. 넥타이 안 매는 것에 3천만 원, 아침 12시 전에 일어나지 않아도 되는 것에 2천만 원을 걸 용의가 있었다. 어쨌든 대통령은 생각 안 해봤지만, 최근 한국은행장을 해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이 든다. 내가 보기에 이명박 씨가 등장한 것은, 한국은행장이 나쁜 놈이라서 그런 거다. 내가 대통령이 되면, 나를 한국은행장으로 만들 거다.

(홍) 대통령이 되면 딱 하나. 사퇴하는 거다. (웃음) 오늘 느낀 바는, 고민의 무게라는 게 알량하게 주둥이로 몇 마디 나불거린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거다. 자극도 됐다. 사퇴하겠다는 얘기는 정권 잡는다고 우리가 말한 문제가 풀리지는 않을 거라는 거다. 문제가 풀리는 건 극히 드물고 오늘 고민은 국가권력 잡는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거다.

(진) 대기업 박차고 나오는 건 못할 것 같고, 잘릴 것 같다. 스스로는 못하고 (웃음) 대통령이 되면, 실험할 수밖에 없다. 현직 대통령보다 잘 굴러간다는 것을 입증하고. 한 가지 하고 싶은 말씀은, 자기 자신을 배려해라는 것. 자본은 여러분들의 교양, 삶에 관심이 없다. 자본은 자기 자신의 확대재생산에만 관심 있고 필요 없는 건 버린다. 남이 욕망하는 것을 욕망하지 말고. 한국사회는 쏠림이 강한데,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는 고독함, 무시를 견뎌야 한다. 자기가 하고 싶어 하는 일을 3년 하면 전화가 걸려온다.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견디는 것이 중요하다.

(김) 사퇴는 하는데, 한 가지 알리는 말씀을 해야겠다. 지구상에서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된다는 단순한 말을 들려주지 않는 국가는 한국이 유일하지 않을까. 문제는 ‘고래가 그랬어’를 부모가 사줘야만 볼 수 있다는 문제가 있다. 고래동무라고 해서 후원자가 있다. 대신 고래에 돈을 내주면, 고래가 300개 공부방, 도서관으로 간다. 잡지 하나가 할 수 있는 일은 아주 작지만, 한 달에 8500원만 내면, 30명의 아이들이 고래를 볼 수 있다.


그렇게 F4의 이야기는 끝이 났다. 4시간을 훌쩍 넘어 웃고 울고 함께 했던 행복한 시간. 이들은 해답이 아닌, 화두를 던졌다. “새로운 삶을 선택할 용기가 있는가.” 그리하여, “새로운 삶에 대한 선택이 우리 사회를 더욱 풍성하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지금-여기는 ‘남들처럼 살고 싶은 욕망’만 들끓는다. 내가 아닌, 남들이 짜놓은 기준에 의한. 행복함이 오로지 자본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남들 보기에 부끄럽지 않은 모양새만 가지려는 욕망만. 남의 불향이 나의 행복이 되는 이상한 세상. 결국 타자를 통해서만 나의 행복이 가능한 것이라면, 그것은 변태다.

김혜리 기자(씨네21)는 프랑스의 화가 오노레 도미에의 <돈키호테와 산초 판자>를 통해 이렇게 말했다. “돈키호테는 사회가 꿈꾸기를 허용하지 않을 때 그 거대한 풍차를 향해 돌진하는 개인이 윤리적일 수 있음을 주장하는 문학적 마스코트다.” 지금 시대는 그렇다. 이것저것 재지 않는 미친놈, 즉 돈키호테가 많이 나와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새로운 삶을 선택하는, 행동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참, 서두에서 얘기했듯, 진중권 교수는 이런 대답을 내놨다. 정답이 아닌. “가장 가슴 아픈 게 이런 것들이다. 평범한 사람인데, 전과자 되고 보복이 들어오고. 지금의 상황을 어떻게 이겨나가야 할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나 역시 강의가 잘리고, 프로그램이 폐지되고, 소송이 들어오고, 보복을 당하고 있다. 그래도 지나고 나면 괜찮은 것 같다. 시간 밖에 없는 것 같다. 우리를 괴롭혔던 그 사람들은 욕을 먹고 불의에 대항하다 핍박 받은 사람들은 복권된다. 큰 흐름들은 그렇다. 후퇴도 있고, 업&다운이 있지만, 큰 맥락에서는 장기적으로 올바른 방향으로 나가지 않을까.”

버티고 견디는 것. 그것이 내가 일상을 돌파하고, 환멸을 견디는 법이다. 진 교수는 중대에서 마지막 강의할 용의가 있다고 했다. 자화상에 대한 강의가 될 것이라고 했다. 마지막 수업. 그렇게 우리는 버티고 견디고 있다. 당신도 그렇지 않은가. 함께 버티고 견디자. 그리고 손을 맞잡자. 우리는 다른 삶을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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