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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적 퇴폐와 고질적 순수의 공존

변양균이 '팜므파탈' 신정아에 빠진 날

신정아-변양균을 둘러싼 작금의 저널리즘 현실에 대해서는 굳이 언급하지 않겠다.

언론이 '사회적 공기'라는 인식에 부합한다면,
현재 일부 거대 언론(의 탈을 쓴 찌라시)의 보도(라는 형태의 상업적 배뇨)는,
우리 사회의 주류가 품은 악취를 그대로 보여주는 사례가 될 것이다.

그 언론들이 사회적 산물임을 감안한다면,
그 보도들은 역시 우리 사회의 수준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겠지.

여튼, 그 얼척없는 보도들을 둘러싼 비판 지점들에 나는 완전 공감한다.
아래를 참조하시라.

지금-여기의 저널리즘과 관련해서는,
그렇게 위의 글을 참조하면 될테고.
내가 하고자 하는 말들이 다 있는데, 굳이 내가 중언부언할 이유는 없고.  
나는 그저 전 청와대 정책실장 변양균의 추락을 보면서 다른 헛소리나 하겠다.^.^;  

사실 나는 한편으로 감탄했다. 신정아에게.
"캬~ '팜므 파탈'이라면 이 정도는 돼야지~"하면서.

별로 알고 싶지도 않고, 알 수도 없는, 통속극이나 이불 속 얘길 하자는 것이 아니라,
"나는 30년 공무원생활을 바르게 한 사람이다"라던 이를 한큐에 무너뜨린 팜므 파탈의 위용을 말하는 것이다.

두산백과사전에 나온 팜므 파탈(femme fatale)의 정의를 보자.
"남성을 유혹해 죽음이나 고통 등 극한의 상황으로 치닫게 만드는 '숙명의 여인'을 뜻하는 사회심리학 용어."

그렇다. 남성을 파멸로 이끄는, '악녀' 혹은 '요부' 등으로 사용되곤 하는 팜므 파탈.
사람살이는 어쩌다 그렇게도 된다. 예고? 웃기는 소리. 그런게 어딨어.
병적인 유머센스가 발현되는 그 순간만큼은 누구도 알 수 없다.

변양균의 실책이라면 신정아를 만난 것이겠지.
누가 알았겠어. 그 만남이 변양균의 삶을 '완전 난감'하게 만들지. 아니 파멸이지 파멸.
그날. 그날이 분명 있었겠지. 변양균이 '팜므 파탈' 신정아에 빠진 날.

그렇다. 파멸이 보이건 그렇지 않건, 인생은 때론 병적인 유머센스가 발현된다.
일생에 한번 오는 유일한 기회란 것도 있다.
'일생에 한번 오는 유일한 사랑'이란 수사도 그래서 나오는 법이겠지.

그럴 때면 어쩔 수 없다. 귀신에 홀린 셈 쳐야지.
나는 때론 '팜므'(여성)에 모든 것을 걸고픈 욕망이 스멀스멀 피어난다.
나의 욕망은 상상 속에서, 밤그림자처럼 팜므의 라인을 훑고 지나간다.

단 한번,
그것이 내 모든 것을 파멸로 이끌지라도,
추락의 길로 인도할 지라도,
파국의 종말에 다다를 지라도,
팜므 파탈에 내 모든 것을 배팅하고픈 욕망도 꿈틀댄다.
장렬한 전사,는 그럴 때도 충분히 사용될 수 있다.
팜므 파탈의 매력이 바로 그런 것 아니겠는가.

치명적일수록 더욱 향기로운,
설득력 있는,
공감 얻을 수 있는,
고개를 끄덕이게 할 수 있는.

불행하더라도 좋다. 그 이유가 팜므 파탈이라면.
노예여도 좋다. 그 주인이 팜므 파탈이라면.
사악해도 좋다. 그것이 팜므 파탈이라면.

허허. 팜므 파탈에 빠진 이들은 그런 심정이었을까.
나는 그 심정이 궁금해진다. 인생의 병적인 유머센스가 발현되는 그 어느 순간, 그 마음의 동요.
물론 진짜 빠졌을 경우, 마땅한 댓가를 받고 치뤄야지.

그러나 당연하게도 나는 어떤 권력도, 돈도 없는 찌질한 직딩이다보니,
달려들 팜므 파탈이 있을리야 만무하지. 팜므 파탈이 노릴만한 어떤 목적이 있을 수가 없잖아. 흑.
허허. 난 그래서 다행이다~ 라는 짙은 한숨을 쉰다.

여성들에겐, 물론 반대로 '옴므 파탈'에 대한 욕망이 숨을 쉴 수 있겠지.
괜히 궁금해지네. 팜므 파탈과 옴므 파탈이 만나면 어떻게 될까. 오호. 그것 참 재밌는 구도가 되겠는걸.

뱀발. 그러나 역시 진정한 팜므 파탈이라면, 변양균에게 '진정한' 사랑을 속삭여서는 안 되는 법. 그런 면에서 중앙일보 보도를 통해 변양균을 잘 모른다고 생깐, 용감한 정아씨는 팜므 파탈의 기질을 갖추고 있다고 봐야하나. 그래 '진정한' 팜므 파탈이라면 모름지기 목적을 위해 한 남자로 끝내선 안되지. 아 파멸도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닌가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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