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 당신이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를 외치며 산화한 그날 입니다. 벌써 37년이 흘렀습니다. 오늘, 다시 돌아오셨네요. 저는, 당신을 추모하는 노동자입니다.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의 한 장면
당신의 그 외침이후, 사람들은 더 이상 스스로 기계가 아님을 자각했고, 인간답게 살기 위한 '노동운동'이 본격화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시대는 변했다고들 했습니다.
2005년 '전태일의 거리' 개막식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당신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2005년에는 전태일 거리·다리의 조성도 있었고.
표지판, 출처:전태일기념사업회(www.chuntaeil.org)
당신이 섰던 그 자리엔 표지판이 이렇게 새겨져 있습니다. '인간다운 삶'.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것이 정말 힘들었던 시대를 보여주는 것 같네요.
마석 모란공원 전태일열사 묘역, 출처:전태일기념사업회(www.chuntaeil.org)
누군가는 당신을 찾아, 마석 모란공원 묘역을 찾겠지요. 이미 추도식이 치러졌겠군요. 11시에 있다고 했으니.
출처:전태일기념사업회(www.chuntaeil.org)
37주기. 당신을 위한 다양한 행사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당신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흠, 제가 당신을 처음 만난 것은, 바로 이 책을 통해서였습니다. <<어느 청년노동자의 삶과 죽음>>에서 <<전태일평전>>으로 이름이 바뀐 개정판. 친구의 강요에 가까운, 권유 때문이었습니다. 몰랐고, 놀랐습니다. 제가 태어나기도 전, 그같은 일이 있었는지. 학교에서는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습니다. 그렇듯, 어떤 사람들은 고 조영래 변호사가 쓴 당신을 통해 당신을 만났습니다.
혹은 영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이었거나. 당신은 그렇게, 우리의 가슴에 부활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지금-여기'의 풍경은, 당신을 떠올리기 부끄럽게 합니다.
노동자들은, 점점 설 곳이 좁아집니다.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70년대 구호가 아직도 유효한 세상입니다. 정말, 당신의 죽음 이후에도 변한 것이 없는 듯 싶습니다. 그 엄혹한 풍경에서 한치도.
출처 : 민주노총(www.nodong.org)
20년 넘게 전봇대를 오르내린 전기공, 정해진씨는, "전기원 노동자 파업은 정당하다"고 외치며 스스로 몸을 불살랐습니다. 주5일제도 아니고, 격주 토요휴무제를 요구했을 뿐이었습니다. 그가 죽었는데도, 달라진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동료의 넋두리가 가슴을 후빕니다.
MBC 화면 캡처
서울 창전동 아파트 10층 높이의 교통 관제탑에는,
이랜드-뉴코아 조합원의 고공 투쟁이 있습니다. 20일도 넘었습니다. 그들은 매장에서 하루 6시간 이상 서서, 손님들을 상대하고, 바코드를 쉴새없이 찍고, 화장실도 제대로 못갔습니다. 그 댓가라는 것이 80만원도 채 되지 않았습니다. 그같은 노예노동을 몇년동안 해도, 언제 파리채에 걸릴지 모르는 파리 목숨이었습니다. 그것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는 요구를 합니다. 그러나 요구조차, 들어줄 수 없는 것이 이땅입니다. 그 회사 사주가 십일조 헌금으로 교회에 내는 돈만 130억원. 혼자만 구원받고 싶나 봅니다.
이것이, 비정규직 보호법안의 현실입니다. 900만에 가까운 비정규노동자들은 낭떠러지에 서 있습니다. 이 모습을 보고선, 지난 2003년 고공크레인 위에서 목숨 건 투쟁에 나설 수밖에 없었던, 어느 일하는 아버지가 생각났습니다. 세상을 떠나는 마지막 길에서도, 초등학생인 세명 아이들에게 휠리스를 사주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린다던, 그 아버지. 결국, 그 엄혹한 풍경에서 한 치의 나아감도 없습니다.
왜 노동자들의 눈물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을까요. 모든 것이 변한다는 이 시대에도 말입니다. 저도, 이랜드, 혼내주고 싶습니다. 물론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작습니다. '후아유'를 비롯해 이랜드 생산 옷은 이제 절대로 사지 않습니다. 뉴코아 홈에버 가지도 사지도 않습니다.
10여년을 거리에서 붕어빵을 팔던 중, 지자체의 폭력 단속에 견디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노점상인, 이근째씨도 있었습니다. 어떻게 된 일일까요. 우리는 한발짝도 나아가지 못한 건가요. 당신은 17년 전 오늘,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건만, 21세기에 접어든 지금도 1970년대의 구호가 여전히 유효하다니, 당신의 죽음 앞에 나는 부끄럽고 화가 치밉니다.
샛길이지만, 며칠 전, 신문을 보다가, 당신을 열사로 만든 대마왕의 유산을 그대로 이어받은, 작자들이 뭉친 당의 광고를 보고, 띠바, 토할 뻔 했습니다.
그 계쉐요, 씨베리아 쉐리들은, 아직도 성공이데올로기를 끊임없이 주입시키고 있었습니다. 아직 70년대의 구호속에 살고 있는 듯한 그네(근혜?)들의 인식 앞에, 나는 섬뜩했습니다. 그네들이 정권을 잡게 됐을 경우, 펼쳐질 성공 지상주의의 늪이 펼쳐져서. 그네들이 말하는 '성공'이란 불을 보듯 훤한 것이지요.
나는 다시 한번, 이 말을 되새김질 합니다. "성공에 목매는 사회, 성공하지 않으면 불행을 피할 수 없는 사회에 살다보면, 성공 지상주의가 구성원들의 마음 속에 내면화해 이데올로기가 된다."
제가 감히 말이 길었습니다. 그 예전, 정은임 누나의 말처럼, 조용히 외로운 싸움을 계속하는 사람들은, 쉽게 그 외로움을 투정하지도 않을텐데 말입니다. 당신도, 그 외로움을 투정하지도 않았고, 우리에게 큰 선물을 주고 가셨잖아요.
올해 나온, 당신과 관련한 이야기. 특히 아이들에게 꼬옥 권하고, 읽히고 싶은 이 책. <<태일이 1·2>>. <고래가 그랬어> 기획.
그리고 청계피복노조의 빛나는 기억. <<청계, 내 청춘>> "모든 것은 그 사람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은임 누나의 말로 오늘, 당신을 추모하는 한 노동자의 넋두리를 대충 마치고자 합니다.
새벽 세시, 고공 크레인 위에서 바라본 세상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100여일을 고공 크레인 위에서 홀로 싸우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의 이야기를 접했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올 가을에는 외롭다는 말을 아껴야 겠다구요.
진짜 고독한 사람은 쉽게 외롭다고 말하지 못합니다. 조용히 외로운 싸움을 계속하는 사람들은 쉽게 그 외로움을 투정하지 않습니다.
지금도 어딘가에 계시겠죠? 마치 고공 크레인 위세 혼자 있는 것 같은 느낌. 이 세상에 겨우 겨우 매달려 있는 것 같은 기분으로 지난 하루 버틴 분들, 제 목소리 들리세요?
저 FM 영화음악의 정은임입니다.
그리고, 제발, 플리즈, 이 소원이 이뤄졌으면 좋겠습니다. 당신처럼, 누군가 죽지 않더라도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