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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

[한뼘] 가난 '가난'에 대한 어느 이야기. 부와 관련해서, 많은 사람들에게는, '상대적 박탈감'이라는 괴물이 자리잡고 있는데, 이것이야말로 무서운 존재다. 그 상대적으로 박탈된 것의 충족을 위해, 어떤 이들은 '필요 이상의 것'을 무리해서 손에 넣는다. 더 무서운 것은, 그 과정에서 어떤 죄책감이나 죄의식도 작동하지 않는다. 그저 남들이 하니까 한다는, 개성이나 판단력을 상실한 '따라쟁이'들만 있을 뿐. 이 땅의 많은 장관들이나 될 뻔 했으나 되지 못한, 될 수 있는 고관대작들께서도 대개 그러하드만. 아래 글에서 '도쿄'를 '서울'로 바꿔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서울도 이미 '더러움'에 오염돼 있다. 서글픈 풍경이다. "... 가난은 비교할 것이 있을 때 비로소 눈에 띈다. 이 동네에서는 생활보호를 받는 집이나 그.. 더보기
꿈을 주는 회사와 동행하고 싶어라... 알고 지내는 한 선배가 한겨레에 기고한 글과 마주쳤다. ☞ 꿈을 주는 은행 단어들의 얼토당토 않은 조합이다. 꿈과 은행이라니. 돈독이 든 '지금-여기'의 은행들은 서민들에게 꿈은커녕 좌절을 주는데 더 익숙하지 않던가. 이른바 '없는' 자들에게 은행의 높은 문턱과 대출이자 독촉은 그렇지 않아도 강퍅한 생을 더욱 찌들게 만든다. 그나마 없는 돈을 맡겨놓은 엄연한 고객이건만, 내 돈 1만원을 찾을 때도 최고 10% 이상의 수수료를 빼가는 도적질(!)은 어떻고. 은행간 경쟁이 심하다지만, 다 그놈이 그놈 같은 건 어찌할꼬. 사실 지금-여기의 은행들은 자산가 VIP 모시기에만 공을 들일 뿐, 금융소외는 관심 밖이다. 그런 상황에서 꿈과 은행, 이토록 이질적인 두 단어의 공존이 가능한가, 라는 의구심은 가질만하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