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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내가 발 딛고 있는

3월7일 기형도

나는 사실 기형도를 잘 모른다. 그의 시집이든 산문 한권을 제대로 읽은 적도 없고, 그의 시 한편을 제대로 외우지도 못한다. 그렇다고 그의 생을 잘 아는 것도 아니다. 그는 내게 그저 풍문이고 풍월이었다. 간혹 어떤 자리에서 그는 회자됐고 죽음 혹은 세상과 호흡하던 시절과 관련한 여러 이야기들을 줏어 들었을 뿐이었다.

3월7일은 어쨌든 그의 기일이다. 18주기. 누군가는 80년대의 마지막을 장식했던 가장 빛나는 전구라고 일컬었다. 1989년의 3월7일. 앞선달 2월16일 김정일의 생일과 같은 날 태어났던 기형도. 서른을 채우지 않은 채 마감했던 생. 1989년, 만29세. 그 아홉(9)의 나열이 어쩐지 채우지 못한 생을 대변하고 있는 것 같다. 한치만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었을 법한 거리에서 그만 힘을 빼버린 채 주저앉은 듯한 모양새. 힘이 빠져서도 아니고, 그냥 "에이 그만할래"라며 돌아선 이유없음 혹은 이유를 알 수 없음.  

나는 어떤 경험 때문인지, 요절에 혹하곤 한다(그렇다고 모든 요절에 다 혹하는 것은 아니다). 그건 어쩔 수 없다. 내 DNA는 그렇게 학습돼 있고, 가슴이 그들을 불러내곤 한다. 어쩌면 요절 울렁증이다. 한때 내 꿈도 요절이었지 않았겠는가. 물론 천재라는 전제하에서지만!

기형도의 요절 역시 그런 케이스다. 살아생전 그의 존재를 알지도 못했다. 요절 이후 그를 언제 어떻게 알게 됐는지도 당최 기억이 없다. 그렇지만 그는 내게 또 한명의 요절'스타'다. 살아 있다면 '형'이었을 기형도가 스물 아홉까지의 생에 이룬 문학적 성취가 대단한 것이었다 할지라도 나는 그가 생을 호흡했던 시간의 총합을 넘어섰다. 한마디로 나는 그를 넘어선 것이다! '입 속의 검은 잎'을 잘근잘근 씹어대며 나는 시대의 우울, 세상의 절망에 적절히 타협하면서 적당히 버티고 견디고 있다. '짧은 여행의 기록'보다 약간은 더 길어보일 듯한 여정을 거닐고 있으며,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의 속편을 계속 집필 중이다.

이날 누군가는 기형도를 호출하겠지. 나 역시도 누군가와 기형도를 불러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뭐 호들갑만 아니라면야, 거리에서 깝죽대는 가증스러움은 없을 것이다. 이종도 선배가 얘기했듯 말이다. 거리가 아닌 골방에서 조용히 수음도 하고 기도도 할 지어다.
너무 이른 죽음

아니면 '시의 길을 열고, 생의 문을 닫은' 기형도 이야기를 훑어보는 것도.
"나는 이제 다르게 살고 싶다. 그럴 경우 모든 굳은 체념들이 살아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