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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당신을, 감탄한다...

고종석 선생님을 만난 날,

고종석.

한때 '고종석주의자'를 자처했던 나는,
지금은 다소 그 물이 빠졌지만,
여전히 고종석은, 내게 선생님이고, 보고 싶은 사람이다.

더 어린 시절, 내 민무늬 정신에 주름을 새긴 글쟁이라면,
그건 단연코 고종석이다.
(두 명 더 있는데, 한 명은 작년에 언급했고,
나머지 한 명은, 언젠가 언급할 일이 있겠지.)


그런 고샘이, 지난 20일 번개를 쳤다.
앞선 일을 처리하고, 좀 늦었지만, 좋다고 달려갔다.

두번째 만남.
와우~ 대체 몇 년 만인가.
그동안 몇번의 기회가 더 있었지만,
고샘이 갑자기 바쁘시거나,
내 일정이 맞질 않아 포기해야 했던 터.
그러기에 더욱 반가운 시간.
고샘도, 역시 세월을 빗겨갈 순 없는 법.
이전보다 확연히 늙으신 풍모가 됐지만,
그건 내게 일종의 안도를 불러왔다.
고샘도 나와 같이 늙어가고 있다는 사실.


본인은 부인하시겠지만,
그 세월의 흐름 속에서도 '꼰대'가 되지 않은 고샘을 나는 존경한다.
나도 그 세월 속에서,
고샘처럼 꼰대가 되지 않길,
아니 꼰대가 되지 않을 순 없고,
꼰대가 되는 것을 최대한 늦출 수 있다면 좋겠단 바람, 정도는 갖고 있다.

아울러,
고샘의 희끗한 머리카락과 주름이,
고샘이, 어쩌면 제대로 세월을 머금고 있는 노장임을 대변하는 것 같아서,
나는 좋았다.

무엇보다 내가 아는, 고샘은 '쾌락주의자(hedonist)'다.
쾌락을 알고, 즐길 줄 아는 사람.
내가 고샘을 좋아하고 감탄하는 이유 중의 하나!

역시나 오랜만에 만난 나와 동류의 사람들도 반가웠고.
그렇다. 나는 자랑스런, '고종석 팬클럽(말들의 풍경)'의 회원이다. 하하.


나는 여전히, 아직도, 지금까지도, 고종석을 감탄한다.^^

아래는, 2005년 고종석팬카페, <말들의 풍경>에 가입하면서 적었던,
가입인사.

때는 1995년 즈음(으로 기억한다).
인분을 떠먹게 만드는 만행은 없었지만...
강요와 억압을 품은 공기가 유령처럼 배회하면서 온몸을 휘감고 있던 군대 시절...
그 엿같기 그지없던 '짬밥'도...
시간의 흐름에 따른 숙성으로 책을 보는데 있어서도 약간의 숨통을 틔이게 했다...

툭~ 건드리면 터질 것 같은 열혈방장의 청년도...
기실 그 분위기에 어느 정도 젖어 푹푹 매너리즘에 빠져들 찰나...
SK그룹에서 발행되던 사외보를 다시 만나게 됐다...
것도 짬밥의 숙성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리고 거기에 연재되고 있던 고종석 선생님의 '유럽통신'을 만났다...
그것은, 막막한 군생활의 숨통을 틔워주는 산소호흡기였고...
조금 뻥을 보태자면 구원 그 자체였다...
이후 나는 그의 팬을 자처했다. 유럽통신 전도사가 됐고...

친구들에게 무작정 권했다... 당근 단행본도 샀고...
그 인연도 이제 10여년에 다다랐다...

나는 그를 통해 세상을 보고 읽었으며...
아직도 그렇게 배우고 있다...

그의 글, 혹은 그를 보는 일은...
그때 그 시절마냥...
너절너절하고 구질구질한 사람살이에 하나의 청량제이자 자극이 되고 ...
숨통을 틔울 수 있는 방법이 되고 있다...

어쩌면...
다.행.이.다...


이건, 몇년 전, 고종석 선생님을 처음 뵀던 첫 정모 모임의 풍경에 대해,
카페에 올렸던 단상. 제목하야, <고종석, 미안하다 사랑한다>

10년의 기다림... 그리고 해후...
그건 <냉정과 열정 사이>에나 있는 아오이와 쥰세이의 이야기인 줄로만 알았다...
더구나 그들은 미덥잖지만 '약속'이라두 있지 않았나 말이다...

어떤 기약도, 약속도 없었다...
쉽게 말하자면, 나는 너를 아는데, 너는 나를 모르느냐,와 같은 일방적인 관계...

"어떤 이에겐 대수롭지 않은 가을바람이 다른 이에겐 절절하게 와 닿는다.
어떤 이에게 대수롭지 않은 노래일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절절히 와 닿은 노래였다..."고 신현림 시인이 읊어댔듯...  

어떤 이에겐 대수롭지 않은 어떤 만남이...
나에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설렘이고 기다림이었다는 사실...
누구에게 그저 흔하디 흔한,
길가다 발길에 채일 사람 중의 한명이 고종석일지 몰라도...
나에게 그는 내 젊은 어둠의 한 구석에 촛불 같이 존재로 빛을 건네준 존재였다...
그 어느해 대한민국의 축소판, 군대에서 뺑이 치면서,
세상에 빡빡 외마디 신음만 지르던 내게 그가 왔다.
파블로 네루다에게 시가 그랬던 것처럼...

퇴로를 확보하지 못한채 쫓기던 군바리에게,
그는 적진 돌파의 실마리를 안겨준 희망이었다...

그리고 그를 품고 산지 10년...
이번엔 내가 그에게 갔다...

고종석 선생님을 만나러 가는 길...
의당 그러하듯, 그런 설렘과 기다림의 길이 마냥 순탄치만은 않은 법...
질질질~ 바지 끄댕이를 잡고 늘어지는 일상의 포악함(?)은 그저 애교다...
마냥 걷고 싶은 감정을 불러일으키기엔 역부족일성 싶은,
이 서울의 길은 헤매임을 또한 강요한다...
물어물어 밟은 길이 때론 '이 길이 아닌가벼 -.-'와 같이 전혀 의도하지 않은,
결론을 도출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0년의 기다림을 건너 뛴 설렘을 누가 막을소냐...
커튼 사이로 힐끔 삐져나온 '화실'의 불빛이 심장에 펌프질을 해댄다...
"그래 저기다...저기..."
몸을 날려버릴 듯 새차게 휘몰아치는 눈발을 뚫고,
베이스캠프에 도달한 탐험가의 심정이 그러했을까....
.
.
.
조심스레 발을 디딘 화실의 바닥은 내 설렘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한 듯 삐걱거린다...
그리고 어떤 섬광, 10년.
그 10년동안 미이라처럼 박제돼 있던 한 실체가 내 눈 앞에서 꿈틀거린다...

이런 이런...
내 이십대 청춘에 숱한 얼룩을 남긴,
그리고 삼십대에도 아직 그 멍울의 흔적을 간직케 만드는...
'그'가 눈 앞에 있다...

그리고 자유 혹은 개인 바이러스를 흩뿌린 교주(?)가 지상에 내려와 있다...
놀랍다... 그리고 그를 둘러싼 신도들...
허허... 예상보다 많은 신도들에 순간 흠칫했다...^^;;;
어쩌면 태산 같았던 그의 존재감은,
혹자는 그가 생각보다 키가 크다는 것에 놀랐다지만,
내 경우엔 움츠러든 그의 어깨에, 환상이 산산조각났다...

잘된 일이다.
그의 글에 대한 중독성으로 본의 아니게 만신전에 올려놓았던 고종석을,
현실의 자리로 내려놓을 수 있는 첫번째 계기...

내용물을 토해놓는 와인병이 쌓이는 숫자만큼 술자리는 익어가고...  
그의 풀어져버린 마음과 육체를 보며...
나는 또 한번 므흣~해 했다... 그 역시 나 같음을...^^
그것이 너무 기뻤다...
내 멋대로 얼토당토 않게 높은 곳에 놓았던 그를,
현실의 자리에 붙여 놓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실토컨대 나는 그가 뿌린 씨앗을 힐긋힐긋 줏어먹고 자란 '고종석주의자'다...
나는 어떤 '주의'라는 말로 스스로를 '규정'하는 것을 싫어한다...
자유주의자가 됐건, 개인주의자가 됐건...
내게 있어 주의 혹은 이즘은,
어쩌면 자신을 속박할 수 있는 기제가 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에,
나는 그런 것을 배격한다...  

그런 한편으로 내 생각과 행동, 사고체계와 인식이 어디까지 고유한 내 것이고,
어디부터 주입되고 흉내낸 것인지 구분할 수가 없다...
다만 일정 부분, 구획지어질 수는 없지만,
고종석의 영향이 지대했을 것이란 관측만 뚜렷하다...

그런 면에서 내가 진정 '고종석주의자'인지, '고종석 유사주의자'인지는 모르겠다..
구럼에도 나는 여전히, 적잖이 그 때문에, 불순함을 옹호하고 개인을 우위에 놓는다...

그날...
고종석선생님은 우상 파괴 공작을 스스로 자행(?)했는지 모르겠으나...ㅎㅎ
나는 그래도...아무리 고샘이 수작(?)을 부려도...
이 말을 해 주고 싶다...

"고종석! 미안하다, 사랑한다..."

숱한 고종석주의자, 고종석 유사주의자들과의 회동은 그래서 즐거웠다...
아뒤를 일일이 열거하지 못함을 용서하시라...
고종석이 있기에 그대들을 만났으므로...
또한 나의 목적은 어떤 진중하고 사색적인 대화들보다,
오로지 '고종석 만나기'에 온 신경계를 세우고 있었으므로...

그래서 나의 이번 회동에 대한 단상은...
고종석주의자들을 위하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