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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내가 발 딛고 있는

벌써 1년, 사회적기업가학교의 봄

물론 그때 그 봄은 다시 돌아올 수도 재생할 수도 없지만,
봄은 다시 꽃망울을 틔운다.

약 1년 전, 성공회대 사회적기업가학교에 입학했던 나는,
다시 찾아온 봄의 교정에 얼굴을 묻었다.

4월9일, 사회적기업가학교 입학식.
정작 나의 기수였던 3기 입학식엔 참석하지 못했는데, 이번엔 발걸음을 디뎠다.

홍세화 선생님이 열강 중이셨다. 
자기 형성의 자유,  
그리고 소유(여부)가 존재를 규정하는 비극적 시대를 자유인으로 건너는 방법.  
사회적 존재, 사회적 인간으로서 이웃에 대한 상상력을 가져야 하는 이유.
 

하루에도 몇 번씩, 아직도 고개를 넘나들어야 하는 나는, 
홍세화 선생님을 통해 작은 안도를 얻고 사유를 곱씹는다.  
나는 어떤 세상에 살고 싶은가. 나는 어떤 사람들과 함께 일하고 싶은가.
뭣보다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더불어, 나는 이렇게 많은 동지들을 얻었다.
사회적기업가라는 이름으로 또 다른 세상,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
어쩌면, 누군가는 혁명을 꿈꾸고 있을 테고. 누군가는 이 문구를 새기고 있을지도.


아, 나는 외롭지 않구나.
사월의 깊은 밤, 벚꽃이 죽음처럼 흩날려도 나는 견뎌낼 수 있다.

며칠 전, 지하철에서 대학로를 향하는 길, 홍세화 선생님께 한 약속대로,
손수 볶은 동티모르 공정무역 커피를 건네드렸다.
선생님이 수줍게 고맙다고 말씀하신다.
 
어긋난 세상의 불의에는 불호령과 호통을 치시는 선생님이지만,
가엽고 사회로부터 내쳐진 약자들에겐 더 없는 관심과 공감을 건네주신다.

오늘 강연이 끝난 뒤,
부리나케 당신이 화이트보드에 쓰신 글을 손수 지우시던 그 모습.
참으로 소박한 그 모습, 참 인상 깊은 한편으로 마음이 따땃해졌다.


일정상 뒤풀이에 참석하지 못한 채 떠났지만,
사회적 동지들을 언젠가는 만나게 될 터.
4월의 교정은 그렇게 충만했다.

헌데, 오늘 반성할 것. 
나를 완전 헛걸음질 하도록 만들고 시간을 뺏은 KT의 행태에 완전 짜증이 나서, 
문제의 노동자가 퇴근한 후라, 같은 말을 반복하게 만든 다른 상담노동자에게 화를 냈다.
굳이 그럴 건 없었는데, 감정노동에 지쳤을 이름 모를 그녀에게 미안하단 마음을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