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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 정의(페어 푸드)

[맛콘서트-팝업] 소고기, 제대로 알고 먹고 있습니까?


소고기, 제대로 알고 먹고 있습니까?

 

인간은 목구멍으로 다른 생명을 집어넣어야 살 수 있다. 산다는 것은 먹는 일이며, 먹는 일은 매일 여러 번 반복해야만 한다. 그런 동물성의 육체, 인간에게 주어진 천형이다. 그렇다면 먹을거리는 단순히 생존과 건강만의 문제일까? 아니라고 답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먹을거리는 밥상만의 문제가 아닌 세상의 문제로 인식한다. 먹을거리에는 사회와 경제구조, 정치와 지구의 미래의 방향을 결정하는 지점이 있다. 따라서 먹을거리의 선택은 삶뿐 아니라 사회와 미래의 혁신과 연결된다.


지난 3월 27일, 서울 서교동 수운잡방에서는 맛콘서트가 열렸다. 맛콘서트는 가짜 맛에 길들여진 미각에 본연의 참맛을 일깨우는 강연과 테이스팅(맛보기)이 함께 진행되는 식문화 프로젝트


이날의 주제는 <한국인은 왜 쇠기름에 집착하게 되었나? : 육식의 반란 마블링의 음모를 만나다>. 황교익 맛칼럼니스트와 유룡 전주MBC 기자가 강연자로 등장했다.

 

한국인은 왜 쇠기름에 집착하는가!

 

우선 굽기로 획일화된 소고기 조리 방식에 대한 문제제기가 이뤄졌다. 특히 그 때문에 마블링이라는 소기름에 혹하는 행태가 지적됐다. 많은 이들이 소고기를 구워 기름을 살살 녹여먹고선 엄지를 지켜든다. 그런데 그것, 고기의 진짜 맛일까? 기름에 매겨진 등급이 주는 후광효과에 혹한 것은 아닐까? 근본적인 문제 제기는 이것이다. 우리는 소고기를 제대로 먹고 있는 것일까? 소고기 맛을 알고 먹는 것일까? 

 

황교익 맛칼럼니스트에 의하면, 한국인들이 소고기를 음식으로 먹기 시작한 역사는 오래되지 않았다. 아시아 소의 대부분은 일(하는)소로서 한우도 농우(農牛)였다. 일제강점기에 와서 고기소로서의 한우가 발견됐다. 예부터 소고기를 먹었다는 관념도 오해란다. 지금 우리가 먹는 한우는 30개월 안팎으로 고기질감이 부드럽다. 송아지를 갓 벗어난 소다. 더구나 일도 시키지 않는다. 그러나 과거의 소는 일소의 역할이 먼저여서, 늙거나 병든 소만 먹을 수 있었다. 그러니 질겼다. 냉장도 안 됐다. 결과적으로 과거 조상들이 먹었다는 소의 요리(조리)법은 허풍에 가깝다. 실제로 소를 맛있게 먹은 적이 없다는 것이 황교익 칼럼니스트의 설명이다.



그렇다면 불고기는 한국의 예스런 음식 아니냐고 물을지도 모르겠다. 그는 +고기로 이뤄진 말 자체가 우리말 구조가 아님을 우선 지적한다. 한국어가 속한 알타이어계의 음식 명칭은 목적어(재료)+동사(조리법)로 돼 있다. +볶이, 제육+볶음, +말이 등등이 그렇다. 일본의 야끼니꾸’(불고기)에서 가져온 말이 불고기다. 1939년의 요리책 조선요리제법에 설명된 불고기 조리법은 야끼니꾸의 것이다. 물론 일본은 천년 이상 불교국가였고, 소를 먹었다는 기록이 없음을 감안하면, 그는 일본인이 한국인보다 고기 맛을 더 모른다고 말했다 (참고 : "불고기란 무엇인가<1>-고구려의 맥적이 기원이라고?")

 

마블링 된 고기는 맛있다. 기름 맛 때문이다. 고소하거든. 우리는 고기 맛으로 먹는 것이 아니라 기름 맛으로 먹는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선다. 중요한 것은 우리는 맛있는 소고기를 먹어본 경험이 없다. 한우가 맛있다지만 다른 외국 소를 먹어본 적이 없다. 4~5번은 경험해봐야 맛있는 게 뭔지 아는데, 그걸 못해 본 것이 우리의 불행이다.”

 

마블링, 누구의 음모일까

 

<육식의 반란, 마블링의 음모>로 이달의 방송기자상을 탄 유룡 전주MBC기자가 바통을 이었다. 그는 아르헨티나 대평원 팜파스의 소와 요리법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다. 아르헨티나 소고기는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아사도라는 소고기 요리는 4시간을 구워 기름을 흘러내리게 하되 일시에 빼지 않고 몸에 해로운 것을 빼낸다. 중요한 것은 이들 소는 자유롭게 들판을 돌아다니며 풀을 먹고 자란다. 이렇게 자란 소로 만든 요리는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소고기, 옥수수에 종속돼 있다. 마블링을 만들기 위해선 옥수수가 필수다. 류 기자는 국내 축산은 미국산 옥수수의 큰 시장이라고 말한다. 인디언에게 옥수수라는 선물을 받은 미국은 소에게 옥수수를 먹였다. 소가 빨리 자란다는 것을 알았다. 대신 소의 건강엔 좋지 않다. 옥수수는 소의 위에서 부패가 일어나게 하고 내부 열량을 높인다. 고지혈증에 걸리게 하고 간을 망가뜨릴 수 있다. 특히 근육에 지방을 차게 함으로써 근내지방(마블링)을 형성하게 만든다.

 

미국의 정육업자들, 이 지점에 주목했다. 세계대전 당시 남아돈 옥수수를 처분할 겸 옥수수를 먹인 소고기에 등급을 매겼다. 미국 정부가 이를 승인, 공식적인 등급이 됐다. 사육업자와 정부의 야합이었다. 동물 복지에 대한 문제의식이나 죄의식 또한 없었다. 마블링된 소고기가 퍼졌다. 이런 등급제가 일본을 거쳐 1993년 한국으로 들어왔다. 정치적이자 상업적 판단이었다.

 

“1993년 수입개방을 이겨낼 방법을 고민하다가, 소고기 먹을 사람들은 어차피 부자인데, 한몫 벌어보자는 판단으로 농민과 정부가 등급제를 도입했다. 이때 주된 역할을 한 사람이 농림부 5급이었는데, 15년 뒤 축산물평가원 소장이 됐고, 한국종축협회 협회장을 하고 있다. 농업관료들이 기구를 만들고 기관장이나 협회장을 하는 일이 벌어졌다. 우리나라 농부들도 아르헨티나와 비교했을 때 축산이라 불러야할지 사육이라 불러야할지 정리해야 할 시점이다.”



한국의 축산업자들, 마블링에 1~3등급을 매기고 한 두 개의 플러스를 붙였다. 두 개의 플러스는 기름 함유량이 20% 이상이다. 이는 미국보다 심하다. 미국에서 가장 높은 등급인 프라임에도 기름 함량은 10%. 한국의 1등급은 미국의 프라임보다 기름 함유량이 많다. 미국에선 10년 전, 이미 기름이 많은 소고기가 해롭다는 것을 알았다. 많은 소비자들도 굳이 프라임을 선택하지 않는다. 더구나 미국도 이제 옥수수가 많지 않다. 소에게 먹일 옥수수가 풍족하지 않다. 따라서 한국도 마블링 소고기를 예전만큼 생산할 수 없는 조건으로 가고 있다.

 

우리나라는 자주 소고기를 안 먹어서 마블링이 많아도 괜찮다고 말하지만, 의도했든 아니든 소비자들은 속았다. 농부들도 축산인지 사육인지 명확히 해야 한다. 진짜 농부는 자기는 굶어도 종자는 먹어 치우지 않고 내년을 위해 살려둔다. 따라서 지금 많은 (축산)농부들은 농부가 아니다. 사육업자다. 미국도 파머가 아닌 피더라고 한다. 피더협회다. 한국 사회에서 농부라 불렀던 사람들이 스스로 사육업자라고 지칭하는, 정체를 드러내는 날이 오길 바란다.”

 

진짜 고기 맛을 찾는 것이 중요한 이유

 

지금의 소고기 음식() 문화, 생산업자(축산업자)와 자본이 만든, 왜곡된 미각을 강요하는 문화다. 맛없는 소고기에 익숙해지도록 만들었다. 즉석에서 숯불 등으로 먹는 직화구이로 획일화된 식문화가 그렇다. 황교익 맛칼럼니스트의 말을 들어보자.

 

마블링 없는 고기를 30일 정도 숙성하면 마블링 많은 고기보다 훨씬 부드럽다. 한국에서 숙성육을 파는 곳은 몇 군데밖에 없는데, 숙성하면 정말 맛있다. 우리는 이것을 안 먹어봐서 마블링 타령을 한다. 그러니 경험이 중요하다. 다양한 다른 것을 많이 먹어봐야 한다.”

 

먹을거리를 고민해야 하는 이유, 건강 때문만이 아니다. 먹을거리 선택은 사회를 바꾸고 문화를 바꾸는 중요한 기제가 될 수 있다. 여전히 많은 소가 고단위 지방을 생산하도록 강요받는 현실, 불편하지 않은가. 더구나, 소에게 먹일 사료라는 이유로, 가난한 사람들이 먹을 곡식마저 빼앗는 지극히 불편한 현실. 소고기 1kg을 생산하기 위해 8kg의 곡식을 소에게 먹여야 한다. 이에 지금의 획일화된 소고기 굽기가 업자들에 의해 길들여진 방식임을 깨닫고, 건강하게, 여러 사람이 나눠 먹을 수 있는 방법을 궁리해야 할 때다.

 

좀 더 근본적으로 우리는 제대로 잘 먹고 있는지 물어야 한다. 조용히 죽어가는 것은 소뿐이 아니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특히 가난한 사람들의 먹을거리를 앗는 마블링 이면의 행태는 폭력적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오늘 당장 당신의 먹을거리 선택에 신중하라. 작고 사소한 선택이지만, 허투루 볼 것이 아니다. 그럴듯한 사진과 감탄사로 범벅된 지성 없는 맛집블로거를 의심하고 보는 것. 지금 내가 먹는 것이 어디서 어떻게 왔는지 아는 것. 먹을거리 선택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이유다.

 

인간이 음식을 먹는 행동은 음식 섭취와 소화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음식을 먹는 행동은 의사결정과 선택을 수반한다. 먹을 수 있는 음식이라고 해서 다 먹는 것은 아니고, 맛있는 음식이라고 해서 다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삶에서 음식은 칼로리와 영양 이상의 의미가 있다.” 

 - 존 앨런, 미각의 지배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