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또 다른 미디어

[책하나객담] 우리 안의 불평등 불감증은 왜, 누가?

우리 안의 불평등 불감증은 왜, 누가?

[책하나객담] 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


은수저를 물고 태어났다는 말이른바 돈 많은 부잣집의 자제로 태어나 (경제적부족함 없이 살고 있음을 비유한다대부분의 우리는 부러움의 의미를 품고 그렇게 이야기한다나라고 다를까은수저 물고 한 번 태어나봤으면 어떨까허구 한 날 노동에 짓눌려 보낸 날이면 그런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그런데그 말참 흉포하다태어날 때부터 불평등을 구조화한다전생에 나라를 구해서 은수저를 물고 태어난 것일까그렇다면 전생에 지은 죄가 많아서 대부분의 우리는 맨입으로 세상에 나온 것인가.


어쩌면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불평등을 감수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불평등에 쉬이 분노하는 것 같지만깊은 불평등구조적인 불평등에 대해선 눈을 뜨지 못하는 것이 우리다고작해야 새치기 당할 때 눈을 부라리고 목청을 돋우는 게 고작이다


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를 보니 불평등은 나름 정교하게 직조된 구조물이다인간 사이 불평등은 자연적인 것이라고 주입한 협잡의 산물이다이 책은 명확하게 주장한다.

 

인간은 원래부터 불평등하다는 주장은 궤변이다불평등한 세상을 만들기로 결정했기 때문에 출현한 것이다.”

 

그렇게 만들기 위한 프레임이 경쟁과 질서였다피라미드 구조가 그것을 대변한다위로 향할수록 자리가 좁아질 수밖에 없다는 피라미드는 사회적 위계를 구조화했다불평등을 감수하도록 만든 셈이다


반대와 저항의 가능성을 감소시키고 실패에의 투항과 체념의 고통을 견디기 쉽게 해줌으로써 우리가 도착점에서 만나게 되는 무시무시하게 부풀어 오른 엄청난 불평등을 감수하게 만든다요컨대 그것들은 사회적 불평등이 지속되고 심화되는데 이바지한다.”(p.88)

 

삼성의 이건희는 과거에 말했다. 1명의 천재가 1만 명(수치는 정확하지 않다!)을 먹여 살린다과격하게 말해서소수의 능력자에게 다수가 매달려 뒷받침해주고 떡고물이나 받아먹으라는 계시(?)소수의 능력자와 다수의 비능력자로 세상을 단순 구획하는 발언이다그런데 더 큰 문제는 우리가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빈부의 격차가 커지는 것 또한 불가피한 것으로 여긴다


그 결과, 우리가 당면한 것이 격차사회인류 역사상 이렇게 격차가 커진 적이 없었다책이 수치로 제시한 부분은 놀랍다그렇게 경제성장 지상주의로 밀어붙이건만 대기업의 성장을 촉진하면 중소기업과 소비자에게도 혜택이 돌아가 총체적으로 경기를 활성화시키게 된다는 낙수효과(트리클 다운)는 없다빈곤은 사라지지 않고 더 커져가는 현실이다부유한 사람은 더 부유해지고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해진다.


프랜시스 베이컨과 데카르트가 살던 시대계몽주의 시대더 나아가 헤겔이 살던 시대까지만 해도지구상에서 생활수준이 가장 빈곤한 지역의 두 배 이상인 곳은 전혀 없었다그러나 오늘날 세계 최고 부국인 카타르의 1인당 소득은 최빈국 짐바브웨의 428배에 이른다.”(p.10)

 

그럼에도 그 불평등에 대해 우리 대부분은 행동하지 않는다많은 부분, ‘현실이라는 이름으로 포기한다책을 읽자니우리가 현실적이라는 이름 앞에 얼마나 무릎을 꿇고 있는지 그림이 그려진다부정의의에 대한 교의가 뿌리 깊게 박혀 있는 셈이다현대판 미신이다국가권력과 자본권력이 조장한 주입식 세뇌작업그 믿음은 의외로 단단하다. ‘현실성이 없다라는 이름으로 우리로 하여금 상상하는 능력을 잃게 만들었으니까상상하지 못하는 질서에 갇힌 세계의 언어적 표현이 현실감이다바우만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현실이라는 것은 우리가 우리 자신의 내적 소망을 방해하는 외적 저항에 붙이는 이름이다장애물들의 저항이 강할수록장애물들은 그만큼 더 현실적으로 느껴진다.”(p.41)

 

대중을 쉽게 현혹했던 피와 인종에 대한 그릇된 믿음을 나치가 공식적인 국가관으로 구현했다면불평등은 신자유주의가 공식적인 경제관으로 확립시킨 것이 아닐까인간 사이의 불평등이 정당한 근거가 없음에도이 허튼소리는 확고부동한 믿음으로 자리매김했다인간의 힘으로 맞서거나 바꿀 수 없는 당연한 세상의 이치가 됐다어리석은 일반화다악랄한 조작이다인류가 전쟁을 피할 수 없고억제하기가 불가능하다는 궤변과 같은 맥락이다. ‘경쟁은 전쟁의 순화된 대체물이 맞다인류의 역사가 존재하는 한 전쟁은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단정의 근거에는 인간이 전쟁의 필요성을 느끼도록 설계되어 있다는 그릇된 믿음이 있다.

 

버트런드 러셀은 나는 정부가 행동에 나서서 일반 대중으로 하여금 믿게 할 수 있는 헛소리의 영역에는 한계가 없다고 확신한다고 말했다불평등이라고 다르지 않다. “가난은 나라도 구제할 수 없다는 말로 정부는 빠져나갈 구멍을 마련한다더 나아가 자본의 헛소리 영역은 정부조차 무력하게 만든다전쟁이든 불평등이든 우리가 그것을 만들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그릇된 미신이 가져온 부당한 믿음이다.

 

불평등 불감증에 걸린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뭐여럿이 있겠지만우선적으로 질문이 아닐까불평등을 이대로 감내한 채 그릇된 미신에 종속돼 살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더글러스 러미스의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라는 질문처럼. GNP(국민총생산)과 GDP(국내총생산)의 수치에 배제된 부의 배분 방식에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그토록 경제성장을 지속하고풍요로워졌다는 세상에서 나는 왜 배제됐는가물어야 한다소수에게만 부가 편중되는데나의 사회적 지위와 자존감은 왜 자꾸 떨어지는가질문해야 한다.

 

피할 수 없다면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는 믿음을사람들은 바로 이런 세상이 우리가 살아가야만 하는 세상이라고 결론을 짓는다옳은 결론이다그리고는 이런 종류의 세상에서는 어떠한 대안도 없고 있을 수도 없다고 결론짓는다잘못된 결론이다.”(p.47)

 

각종 경제위기 상황에서 더욱 창궐하는 긍정주의’ 역시 경계해야 한다그 지긋지긋한 긍정 찬가는 모르핀이다불평등에 대한 거짓 믿음을 유지하기 위해 긍정의 힘을 설파한다불평등 때문에 터질지 모르는 분노의 뇌관을 잠재우기 위함이다불평등의 희생자들이 되레 불평등을 옹호하고 평등의 외침을 비웃는 기이한 현상


그것을 깨기 위해 꼭 필요한 것 중의 하나는 불평등에 희생당하고 있는 우리의 질문과 성찰이다. ‘슈퍼 갑의 사회를 깨뜨리는 출발은 을의 성찰이다바우만은 섣불리 희망을 노래하지 않는다쉽게 현실을 인정하지도 않는다대신 그는 권한다어떤 식으로건 문제를 회피하지 말 것손쉽게 타협하지 말고 철저하게 사유할 것책의 제목처럼 우선 질문하자회의하자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우리의 불평등 불감증은 어디에서 기인한 것인가?


(*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썼고, 내 감상 그대로를 긁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