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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은둔 속에 핀 예술혼, 에밀리 디킨슨 은둔 속에 핀 예술혼, 에밀리 디킨슨 (Emily Dickinson, 1830~1886년) 그리고 1775편의 시 살아생전, 주목받지 못했습니다. 1800여 편에 달하는 시는 그저 혼자 내뱉은 독백 같았습니다. 사랑, 이별, 죽음, 영혼, 천국, 자연 등을 다룬 시는, 은둔생활 속에서 핀 꽃이었나 봐요. 그는 내내 고독했지만, 그 고독은 그의 모든 것이었던 시를 잉태한 동력이었습니다. 시와 고독을 평생 친구로 곁에 두고 지냈던 이 사람, 영문학사상 최고 시인 중 하나로 꼽히는 에밀리 디킨슨(Emily Dickinson)입니다. 이상하고 의외의 일이죠? 그가 살아서는 별 볼 일 없는 시인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 말이에요. 하긴 별 볼 일 없다는 것도, 그의 시를 제대로 접할 수 없었던 까닭도 있었겠지요. .. 더보기
사랑은, '오렌지주스'에서 시작한다... 연말연시, 곧 덕담이 난무하는 시즌. 누구에게든, 상투구든 뭐든, 좋은 말 한마디씩은 던지는 것, 익숙하지. 전화, 문자, 대면 등을 통해 주고 받은 새해인사를 담자면, 누구나 트럭 백만스물두개 정도는 될 터. "복 받아라"는 클리셰가 가장 흔할 테고, 내 경우, 다음으로 많은 것은, "결혼해야지" 정도가 되시겠다! 뭐, 결혼 안(못)한 종족들의 피할 수 없는 덕담? 악담? "올해는 결혼하냐?" "좋은 소식 좀 듣자" "올핸 국수 먹게 해주는 거냐?" "새해 장가도 좀 가고..." "새해엔 결혼해서 부모님을 즐겁게 해주는 한해가 되길 바란다. 사회적 어른!..." 뭐, 이런 말들이 우수수 쏟아지더군. 몇년째야, 대체.^^;; 이 말 건네는 사람들도 슬슬 지겨워질 때가 됐지 싶은데, 제일 만만한 덕담인가?.. 더보기
파블로 네루다, 그리고 <일 포스티노> 영화를 본다는 행위가 세계를 넓힌다는 것과 때론 동일한 의미로 사용될 때가 있다. 최소한 내게는 그렇다. 물론 모든 영화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 한편의 영화가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이 세계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진 않지만, 한 사람의 세계를 바꿔놓을 수는 있진 않을까. 세계관을 뒤흔들어 놓을 수도 있지. 당연, 영화가 반드시 그래야할 이유는 없다. 영화는 때론 혼자만의 것이니까. 오늘 묵은 영화 한편을 꺼내는 건, 역시나 그런 의미다. 내 세계를 넓혀 준 한편의 영화. (IL POSTINO). 떠들썩 하진 않았지만, 알게 모르게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영화지. 누군가는 '시와 음악이 물빛 그리움으로 번지다...'라는 시 같은 헌사를 바치드만. 메타포 그리고 파블로 네루다. 가 준 선물이었다. 그만큼 .. 더보기
[한뼘] 위로 첫 소절을 만나고선 눈물이 울컷 솟는 어떤 노래들이 있다. 어쩌다 들을 때 특히 더 그렇다. 그건 어떤 추억과 맞닥뜨려서일 것이다. ㅠ.ㅠ 언젠가 우리 다시 만나면 에이 안 되겠지, 하면서도 한편으로 혹시나하며 기대했던 어떤 축제에서 작은 상을 타게 됐다. 오래전에 써 놓은 글이었지만, 시간이 흐른 뒤에도 날 위로해 주기도 하는구나. 그래, 아주 작지만 지금-여기의 내 생에선 크나큰 위로다. 요즘 같이 너절한 슬럼프에선 더욱더. 생은 가끔 이런 식으로 위안을 받는다. 나는 숨을 쉰다. 휴우. 그런데 '언젠가 우리 다시 만날' 수 있는 일말의 기적 혹은 기대감마저 박탈당한 사람에겐 저 노래가 너므너므 아플 때가 있다. 죽음이 그렇듯, 연애도 사랑도 결코 익숙해질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매번 그 대상..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