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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당신을, 감탄한다...

해철뫙, 내게 세계를 생각하게 만드는 사람

1988년. MBC대학가요제. 무한궤도. '그대에게'.
뫙(해철님)이 내게로 왔다. 중딩 눈에 무한궤도 혹은 뫙은, 완전 간지작살.
그저, 좋아좋아. 무한궤도는 당시 내게 최고의 그룹, 뫙은 최고의 아이돌.
무한궤도의 첫 앨범.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도 좋았지만,
내 귀를 간지럽히던 건, '여름이야기''비를 맞은 천사처럼'.
여름날 햇빛 속 옛동네를 걸어가다, 건널목 앞에서 늘 마주치고팠던 그런 이야기.

고딩. 뫙은 여전히 나의 아이돌. 솔로 독립을 했다. 그리고 1집.
간지러운 노랫말과 리듬으로 범벅된 '슬픈 표정 하지 말아요'.
그래도 어쩌리. 뫙은 토로하지 않던가. "나는 그대를 사랑해." 흑, 사랑한다는데, 어떡해.
'연극 속에서', 짱.

그리고 이어진 2집, Myself. 어라, 이상해졌다. 뭐랄까. 뫙의 본색이 슬슬 드러나기 시작했달까,
말랑말랑 아이돌이었던 뫙이 드뎌 드라큘라 이빨을 반짝 드러냈달까.
뫙은, 이제 사랑보다 삶을, 인생을, 논하기 시작했다. '째즈카페'의 고독감도 나를 감쌌지만, 뭐니뭐니해도 압권은,'나에게 쓰는 편지'. 사춘기. 딱, 이런 심정.
"난 약해질 때마다 나에게 말을 하지. 넌 아직도 너의 길을 두려워하고 있니. 나의 대답은... 이젠 아냐... 나는 조금도 강하지 않아!"
당시 뫙을 함께 좋아하던 내 친구. 녀석과 나는 주야장천 뫙 노래를 질러질러. 누가 뫙 노래 제대로, 잘 부르나, 따위의 티격태격을 해 대면서. 뫙은, 이제 아이돌 아닌 뮤지션.

(* 참고. '뫙'은 '마왕'의 줄임말. 즉, 해철님을 뜻함. ^.^ )

뭐, 나중에 좀더 걸쭉한 뫙에 대한 잡설을 풀어놓기로 하고.
한 열흘 전, 뫙을 알현했다. 내 생에 처음으로 뫙을 눈 앞에서 목도한 감격적인 순간.
미디어나 콘서트를 통해서가 아니고, 눈 앞에서 만나고 악수까지.
작가로서의 자리였다. 예스24에서 마련한 <아름다운 책 人터뷰>.
최근 지승호 작가와 함께 펴낸 ≪쾌변독설≫의 저자 강연회.

사용자 삽입 이미지

나는 이런 감언이설(?)로 참석티켓을 낚았다.

해철님, 혹은 대마왕, 또는 뫙은 제 청춘의 멘토였습니다. 전 그를 통해서 세상을 배웠고, 세상을 흡수했으며, 세상과 맞장을 떴습니다. 그는 세상과 통하기 위한 윈도우 였다고나 할까요. 처음에는 노래였고, 좀더 머리가 굵어지고 나서는 그의 발언이 그런 역할을 했더랬죠.
그리고, 여전히 해철님은 나의 멘토입니다. 그는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세계를 사고하게끔 합니다. '내 마음 깊은 곳의 너'인 해철님을 만나, '일상으로의 초대'를 받고 싶습니다. 그래서 지승호 작가와의 협업 작업인 '쾌변독설'은 더 넓은 세계로 저를 초대해주지 않을까요...^^


여기엔, 한푼어치의 거짓도 담겨 있지 않다. 진짜였다. 뫙은 나의 멘토.
물론, 지금은 그 시절마냥 열광하지도 않고, 고스트스테이션(고스)의 열혈청취자도 아니지만,
여전히 내 청춘의 일정부분은, 뫙의 자장 안에서, 뫙에게 빚졌다고 믿는다.

그리고 강연회. 이제는, '구라'가 직업의 일부이며, 책임이라고 생각한다는 뫙의 발언들.
 
다시 확인하는 사실. 이 모든 것은 스스로 행복하기 위해 하는 일. 민족, 국가 이런 대의는 시덥.

"깐죽대고 좆될 것 같으면서도, 왜 그런 발언을 하느냐는 분명하다. 이 세상에 태어나 행복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하지 않겠나. 책에서 내가 말하는 것들은 나를 위한 것이지, 결코 남을 위한 게 아니다. 하지만 그게 또 남을 위한 거라고 본다."


한편으로 책은 그를 재확인하는 과정이다.

"뮤지션은 '음악'을 통해, 모든 것을 말하고 소통한다. 그러나, 나도 음악인 이전에 사람이다. 음악 이전에 인간으로서의 나의 구실이 있다. 말이나 글을 통해 세상과 싸울 때도 있고, 의사소통할 때도 있다. 그런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오류를 낳고, 오류는 오해가 되고 편견으로까지 치닫기도 한다. 편견이나 증오로 만들어지는 루머나 왜곡, 호도는 나의 전투력을 떨어뜨리곤 한다. 그래서 이것을 바로 잡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책은 그런 잘못을 교정하고, 왜곡된 진의를 확인하고, 문자로 짱을 박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이것도 기사에서 압축하다보면 왜곡될 수도 있다."


또한 책은, 나 혹은 당신이 혼자가 아님을 확인하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

"≪쾌변독설≫은 보편타당한 상식에 들어간다고 본다. (이 땅의 현실에) 답답해 하는 사람들에게 '저 여기 있어요' '당신과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으니 쓸쓸해 마세요'라는 말을 건네기 위한 것이다. 반면에 그것은 나에게도 용기를 주는 것이다. 같은 생각을 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 누군가에게 용기와 긍정적인 그 무엇이 되길 원한다."


특히나 청소년들에 대한 그의 굳건한 철학.

 "한국에서 인권적으로 가장 희생 당하고 학대 당하며, 인권이 유린되고 있는 것은 청소년 계층이다. 청소년 계층에 대한 인권대학살은 이미 벌어져왔고, 지금도 벌어지고 있다. 나도 딸이 있고, 애가 하나 더 생길 예정인데, 나중에도 따라다니면서 (지금처럼) 짖을 것이다. 대우 받고 존중 받아본 아이들이 컸을 때 자존심, 자긍심을 갖는다. 긍지를 갖고 사회로 나온 아이들이 뇌물 받고 이런 짓을 못한다. 인간이 개돼지도 아니고 사람인데 공부 못한다고 맞는 건 말이 안된다."


현실은 그러나, 늘 헛헛하기 마련.
"어른이 일하다가 죽는 경우는 들어봐도, 학생들이 공부하다가 죽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는 막장 발언을 하는 고위 교육직공무원이 있는가 하면,
성적 때문에 밥 차별을 받는 풍경. ☞ “공부 못하면 밥도 늦게 먹어라” 낙생고 성적順 배식 물의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는 유효하지 않다. 밥도 성적순인 마당에.

뫙은, 살아있다는 증거가 '음악'이고, '라디오'라고 했다. 그것들을 통해 소통하고. 살아 있어서 굴러가고 생각하고. 그리고 이제, 그 증거에 책 하나를 덧붙였다. 뫙은, 그렇게 세상이라는 콘센트에 플러그를 꽂고, 안테나를 맞추고 있다. 내가 뫙을 좋아라하는 이유는, 바로 그거다. 뫙은, 나하고 상관없어 보이는 세상이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려준다.

내가 발붙이고 있는 이 세계는, 결코 상식만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여전히 세상엔 수많은 아픔과 눈물, 슬픔이 차고 넘친다. 내 일이 아니라고, 나와는 상관없다고, 내가 그런 것이 아니라고, 지나쳐버린다면, 세상은 천년만년 그대로다. 또한 그 부메랑이 나에게 돌아올 수 있다. 내가 그랬듯, 아무런 악의도 없는 누군가 혹은 시스템에 의해 내가 상처를 입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내가 외면하면 나도 외면받는다. 장애인, 비정규직, 빈민, 성소수자, 이주노동자, 청소년 등등 나랑 상관없을 것 같은, 소수자들의 고통을, 뫙처럼 누군가는 언제나 내게 일깨워준다. 이것이 아이돌에서, 감탄사로 바뀐 이유다.

지난 1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서울 노숙자 풍경'이라는 설치작품전을 연,
알브레히트 빌트 작가는, "노숙자는 누구나 될 수 있다. 나도 당신도 예외가 아니다."

아르헨티나 출신의 대문호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일갈은,
"모든 것은 모든 것에 잇닿아 있다."

☞ [아름다운 책 人터뷰]“나와 상관없어 보이는 것들이 결국 나에게로 향한다” - 신해철의 쾌변독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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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아, 책은 아직 읽지 않았다. 뭐 사질 않았으니.ㅋ 그래서 내용에 대해선 뭐라 말 못하겠다.^^;
물론 지승호나 신해철, 두 이름만으로도, 개인적으로 신뢰가 충분히 가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