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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당신을, 감탄한다...

고 이수현

'의인(義人)'이라는 타이틀은,
어떤 경우에 붙일 수 있을까.

그는, 내 또래의 청년이었다.
아마도 그도, 열심히 살았을 것이다.
여느 대한민국의 청년들이 그러하듯.
그만의 특별한 사랑도 하고,
공부하는 한편으로 친구들과 어울려 술도 한잔하며,
취미를 즐기면서, 꿈을 키워 자신의 직업을 갖고자 살았을 것이다.
희노애락이 교차하는 일상의 자잘한 풍경을 품은,
여느 생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청년이었을 것이다.
사실 아무 연관 없지만,
그는 내가 자란 곳에서 성장기를 보냈고, 같은 전공을 했다.

그러나 그는, 갑작스런 이별을 했다.
그는 내가 당장은 도달할 수 없는 다른 세계에 있다.
이른 나이에 목숨을 잃었다. 이른바 '요절'.
그것도 다른 사람을 대신한 것이었다. 이른바 '살신성인'.
벌써 7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그는 아직도 스물여덟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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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수현이다.  
그의 이름 앞에는 '의인(義人)'이라는 딱지가 붙어있다.
누구도 그의 이름 앞에 붙은 그 말에 딴지를 걸지 않는다.
그는 충분히 그럴만한 자격이 있다.
지하철 선로에 떨어진 취객을 구하려다 목숨을 잃은 그이기 때문에.

당시, 미디어들이 떨던 호들갑도 어렴풋이 기억난다.
다른 나라, 그것도 특히나 일본이었기 때문에 더욱 그랬을 것이다.
그의 할아버지가 일본 탄광으로 징용돼 끌려갔고,
아버지도 6세까지 오사카에 살다 귀국했다는 등,
그의 오랜 가족사까지 들먹이며 일본과의 인연 혹은 악연까지 들춰졌다.
그는 죽어서 영웅이 됐고, 의인으로 추앙받았다.

2001년 1월26일.
그리고 2008년, 사망 7주기를 맞아 '이수현 재단'이 설립된단다.
'의인 이수현재단 설립위원회'(가칭)가 설립 발기식을 가졌다.
이번 봄, 정식 재단이 발족돼 의인 발굴, 유가족 지원, 장학사업 등을 한단다.
☞ ‘의인 이수현재단’ 만든다…유가족 지원 사업 등

그는 정말 큰 일을 했다. 세상을 바꿨다.
덕분에 '의사상자 예우에 관한 법률'이 탄력을 받았다.
의인에 대해 사회가 경의를 표하고 보상을 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의로운 일을 하다가 숨지거나 부상 당한 의사상자에 대한 인식도 설 수 있었다.

'사생취의(捨生取義)'란다.
맹자의 고자(古子)편에 나오는 사자성어.
생선과 곰발바닥 모두 원하지만, 하나만 선택한다면 생선보다 곰 발바닥을 취하고,
(근데 그 이유는 모르겠다. 생선과 곰 발바닥이 정작 무엇을 뜻하는지...)
목숨도 의도 중요하지만, 둘 다 취할 수 없다면 목숨보다는 의를 택해야 한다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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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나는 그게, 어째 좀 아프다.
재단 설립이나 의인이라는 타이틀에 대한 불만이 아니다.
의인이건 영웅이건, 혹은 어느 신성하고 대단한 타이틀을 단다손,
그가 살아있음만 못하기 때문이다.
그까이거 없어도 좋으니,
나는 그가, 살아있었으면 좋겠단 부질없는 생각을 한다.
그의 DNA 속에 의협심이 조금만 '덜' 있었더라면...
그가 타인의 위험에 조금이라도 '덜' 반응하는 DNA를 가졌더라면...
우리는, 아주 어쩌면, 어느 순간 만나서 친구가 됐을지도 모를 일이다.

'의인'이란 타이틀, 무겁다.
그도 무거워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를 좀 가볍게 해줬으면 하는 혼자만의 바람.
정작, 그를 알지도 못하면서 말이다.
역시, 나는 '의인'과는 789광년이나 떨어진 찌질한 목숨줄이다.^^;;

그냥 궁금하다.
그가 살려낸 사람은 어떻게 지금 살고 있을까.
어쩌면, 한 의인으로 인해 덤으로 살아가게 된 생이다.
한일 양국의 추모와 행사도 좋지만,
나는 정작 그 사람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가 훨씬 더 궁금하다.
추모 행사만 써댈 것이 아니라,
그런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도 미디어들이 해줄 일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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쩝, 그나저나,
작년 6주기에 맞춰 개봉하나 싶었는데
그냥 넘어가더니,
아직 감감 무소식이네.
일본에서 만들어진,
음악과 스포츠를 사랑한 이수현의 일본 생활과 사랑을 다뤘다는, 
이태성 주연의 <너를 잊지 않을거야>.
언제쯤 볼 수 있을까. 극장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