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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내가 발 딛고 있는/위민넷

운명의 여인, 팜므 파탈(femme fatale)

남성들, 이런 여성을 조심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한편으로 이런 여성을 일생에 한번이라도 만났으면 하는 바람도 내비칩니다.
도대체 어떤 여성이건데, 이런 극과극의 평가를 한 몸에 받을까요.
살다가 혹시, 이런 여성과 해후한다면 뭐? 그렇습니다. 그건 ‘운명’이라고 부를 만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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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팜므 파탈’은 프랑스어입니다. 팜므는 ‘여성’, 파탈은 ‘숙명적인, 운명적인’이라는 뜻입니다.
액면대로라면, ‘운명의 여인’ 정도의 뜻이 되겠죠.
그런데 많은 문학작품이나 다양한 예술 장르 등에서 팜므 파탈은 재미난 뜻으로 활용됩니다.
‘요부’ ‘악녀’. 치명적인 매력으로 남성을 매혹시켜 죽음이나 고통 등의 상황으로 치닫게 만드는 여인.
그래서 이들에겐 ‘어찌할 수 없는’, ‘돌이킬 수 없는’, ‘저항할 수 없는’과 같은 수사가 동행합니다.
관능적이고 뇌쇄적인 매력, 신비하고 기묘한 아름다움 등으로 남성을 종속시키거나 치명적인 불행을 야기하곤 하지요.

그러나 악녀와 같은 뜻은 아닙니다. 팜므 파탈은 대개 피할 수 없는 필연적인 굴레 때문에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런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남성에게도 파국을 선사하지만, 스스로도 비극의, 혹은 비련의 여인이 되고 마는 속성도 있습니다.

팜므 파탈이라는 말 속에는 많은 은유가 숨겨져 있어요.
그래서 소설·영화의 좋은 소재가 됩니다. 전설처럼 각인돼 종교적·신화적 성격도 강하죠.
기원을 보자면, 19세기 낭만주의 작가들에 의해 문학작품에 나타나기 시작했어요.
미술·연극·영화 등 다양한 장르로 확산되면서 요부나 악녀 같은 뜻으로 확대·변용된 거죠.
그 이면에는 자신의 육체와 욕망, 그리고 세상에 대한 지배권을 요구하는 여성들에 대한 남성들의 공포가 숨겨져 있다는 해석도 있어요.

팜므 파탈의 예를 들어볼까요.
뱀의 꾐에 빠져 금단의 열매를 먹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나는 이브부터, 헤로데스를 춤으로 유혹해 그가 세례 요한을 죽게 하는 《신약성서》의 살로메 등도 해당되겠네요.
그리스와 트로이 간의 전쟁을 야기한 헬레나, 안토니우스를 유혹해 로마를 흔든 클레오파트라, 당 현종을 손아귀에 넣고 몰락으로 몰고간 양귀비, 경국지색 서시, 일본 적군파 간부 시게노부 후시코 등도 대표적인 팜므 파탈입니다. 문학이나 영화 등에서도 팜므 파탈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지요.

팜므 파탈을 그렇다고 부정적인 의미로만 볼 수는 없지요.
원래 뜻에서 은유가 가미됐듯, 팜므 파탈도 진화합니다. 
그래서 이런 해석도 가능하겠네요. 관습과 도덕에 억눌리지 않고 원초적이고 야성적인 욕망을 거리낌 없이 펼치는 여성상.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활달한 여성이라는 긍정적인 모습으로 바라볼 수 있는 측면도 있지요.

남성에겐 도저한 매력으로 ‘늪’이 되는 여성이든, 주체적인 지위를 가진 여성이든,
팜므 파탈은 인류 역사와 함께 하고 있습니다.

다음엔 팜므 파탈의 대척점에 있는 ‘옴므 파탈’을 알아보지요.

(※ 참고 : 두산대백과사전, 《팜므 파탈 : 치명적 유혹 매혹당한 영혼들》(이명옥 지음/다빈치 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