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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내가 발 딛고 있는/위민넷

시대의 억압적인 공기를 사절한 불온아, 마릴린 먼로(Marilyn Monroe)

시대의 억압적인 공기를 사절한 불온아, 마릴린 먼로
(1926.6.1~1962.8.5)
‘섹스 심볼’ ‘스캔들 메이커’라는 단어에만 먼로를 가둬두는 건, 부당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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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고유명사, 알고 계시죠?
먼로 효과(Monroe effect), 먼로 워크(Monroe Walk), 먼로 룩(Monroe -Look).
맞습니다. 세기의 섹스 심벌, 마릴린 먼로에서 파생된 겁니다.
먼로 효과는 바람 없는 날에도 난기류 때문에 여성의 스커트가 갑자기 뒤집히는 경우를 뜻하죠. 너무도 유명한 이 장면, 먼로 주연의 <7년만의 외출>에서 지하철 환기통 바람 때문에 마릴린 먼로의 치마가 올라가자 황급히 손으로 가리는 장면에서 비롯됐습니다.
먼로 워크. 엉덩이를 좌우로 흔들면서 거니는 걸음걸이를 말하고요,
먼로 룩은, 허리를 졸라매고 풍만한 가슴을 강조하는 글래머룩을 지칭하는 패션용어입니다.

채 40년도 살지 않고, 약물과용으로 떠난 마릴린 먼로였지만, 참 많은 이야기를 남겼죠.
본명은 노마 진 모텐슨(Norma Jeane Mortenson)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이름은 배우 데뷔 후에 영화사에서 지어준 것입니다.
그는 어린 시절, 고아원을 전전하거나 성폭행을 당하는 등 트라우마(정신적 외상)를 갖고 있습니다. 힘든 환경에서 도피하기 위해, 16세에 결혼을 했으나 이 역시 돌파구가 아니었나봐요. 4년 후 이혼을 했고 방위산업체에서 일하던 그는 부대 사진가에 의해 모델이 됐고, 미국 영화계 거물이었던 하워드 휴즈에 의해 배우의 길로 들어섭니다.

단역과 모델을 전전하던 그에게 섹스 심벌의 타이틀을 안겨준 영화가 <나이아가라>(1953)였고, 이 밖에 <신사는 금발을 좋아해>(1953) <백만장자와 결혼하는 법>(1953) <7년만의 외출>(1955) <버스정류장(1956)> <왕자와 무희(1957)> <뜨거운 것이 좋아(1959)> 등 30여편의 영화에 출연했어요. 그는 배우로서도 충분히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었죠. 혹자는 그가 몸짓 하나, 시선 하나로 새로운 표현을 만들어냈다고 평가했어요.

아마도, 그에 대해 깊게 각인된 이미지는, ‘스캔들 메이커’일 겁니다.
불세출의 야구스타 조 디마지오, 세계적인 극작가 아서 밀러와 결혼과 이혼을 반복했고, 존 F 케네디, 이브 몽땅 등과 염문을 뿌린 것이 워낙 세간의 입방아에 올랐기 때문일 거예요.

이런 에피소드도 많이 알려졌죠. 먼로가 죽었을 때, 그전에 이혼한 아서 밀러는 장례식에 코빼기도 비치지 않았는데, 먼로와 다시 결혼을 앞두고 있던 조 디마지오는 장례식뿐 아니라 수십년동안 기일이 되면 무덤을 찾아 꽃을 바쳤다는 일화. 아마도 이건, 클라이맥스에 오르기 전, 가장 아쉬울 때 멈춘 사랑과 지긋지긋하고 지겹게 끝을 본 사랑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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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런 평가는 다소 억울한 구석도 있어요.
그가 의도했건 그렇지 않건, 당시의 시대상에 비춰보자면, 그는 억압적인 사회적 분위기에 저항한 불온아일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요.
자, 볼까요. 2차 대전 이후의 미국 사회는 매카시즘이 창궐하고 냉전적 청교도 윤리관이 지배하던 금기의 시기였죠. 스캔들은 침묵해야만 하는 죄(성적 금기)로 여겼고, 공산주의자(정치적 금기)는 입도 벙긋 못한 채 권력에 발목 잡히는.

그런데 우리의 마릴린 먼로는 달랐죠. 그는 이런 금기를 사절했어요.
대중들에게 이름이 알려졌던 1952년, 무명 시절에 찍었던 누드 사진들이 공개됐어요. 방금 말씀드린 그런 공기 밑에서, 이는 치명타일 수밖에 없죠. 
그런데 그는 당당하게 말합니다. “전당포에 맡긴 차를 되찾기 위해 50달러가 필요했다.”
우와, 멋지죠? 보수적이고 억압적인 공기에 짓눌린 대중은 환호했고,
그는 이듬해 <플레이보이>지의 모델도 됐습니다.
또 당시 그의 지인들은 미국공산당의 당원들이었으며, FBI는 그를 공산주의자로 분류하기도 했습니다. 그가 멕시코를 여행할 때의 일거수일투족이 당시 FBI국장에게 제출되기도 했을만큼.

저는 생각해요.
청교도주의와 보수주의의 광기가 지배하고 있을 때,
그는 그 공기를 가뿐히 무시한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어쩌면 탈선의 쾌감?
그러니, ‘섹스 심볼’이나 ‘스캔들 메이커’라는 단어에 마릴린 먼로를 가둬두지만 않길.

어쨌든 그는 1962년 8월5일 그의 침대에서 죽은 채 발견됐습니다. 알다시피, 수면제 과용에 따른 자살이라는 공식 발표. 물론 존 F 케네디 형제와 친밀한 관계였던 탓에 모살설도 끈질기게 나돌았죠. 뭐 사실 여부는 모르겠지만, 이런 생각도 들어요. 이 세상 남자들은 아름다운 여인을 지키지도 못할뿐더러, 자신의 권력과 욕심 때문에 그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건 아닌지. 여러분 생각은, 어떠세요?

(※ 참고 : 위키백과, 씨네21, 정윤수의 Booking ‘모두가 사랑했던 여자 - 마릴린 먼로’ blog.ohmynews.com/bookin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