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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미디어

"세상에는 '변-신'보다, '디워'보다 더 중요한 것들이 있다"

작금의 미디어판을 보자면,
전자양판점 광고에 나오는 '현영'씨가 이렇게 말하며 당장 뛰쳐나올 것 같다.
"신OO에 지쳤어요~ 변OO에 지쳤어요~ 땡벌 땡벌~~" 

'변-신' 쓰나미는 이미 한국을 덮쳤다. 모든 흥행요소를 갖추고. 싫으나 좋으나 미디어에 둘러쌓인 나는 이 시덥잖은 쓰나미에 얼마나 더 휩쓸려야할 지 솔직히 짜증이 난다. 안 보면 되지 않냐,고 하는데 솔직히 당분간 여기를 떠나있고 싶다.

그런 한편으로, 나는 다른 중요한 일을 만나고 싶다.

'지금-여기'의 주류 언론 대부분은 '중립' '불편부당' '공평무사' 등의 가치를 내세운다.
그리고 기사 게재 또한 이에 입각하여 기준을 세워 이행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아울러, 그들은 약자를 보호하고 인권을 옹호하며, 그들의 고통에 동감한다고 말 붙인다.
덧붙이자면, 자신들의 지면 혹은 전파, 인터넷 등의 공간을 통해 우리가 발 붙이고 있는 세계를 독자들에게 전달한다고 자신한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가. 각자 가지는 언론 혹은 미디어에 대한 인식들이야 있을테니 내가 굳이 답을 하진 않겠다. 알아서들 답을 책정하시고.

물론 나도 안다. 위의 '교과서'적인 이야기는 이미 유효기간 지난 통조림이라는 것을. 미디어의 위선이야 이미 빤한 '사실'(!) 아닌가. 그래도 저널의 가치에 맞추기위해 노력하는 미디어들이 소수지만, 있다는 것도 안다. 나는 이들이 이 사회의 건강성을 그나마 유지하는 버팀목이라는 것도.

우리 까다로운 변 선생은 그래서 대부분 주류 언론·미디어를 향해 이런 말을 할지도 모르겠다.
"언론 아~니죠, 찌라시 맞~습니다."

잡설이 길었다. 나는 '신-변'(!)의 위협을 느끼면서도, 타인의 고통에 무심하고 공평무사하지 않은 언론·미디어를 타박하고자 한다.

오늘로서 126일째다. 한국의 마부노 1,2호 선원 4명이 소말리아의 해적들에게 피랍된 지도. 지난 8월 한국정부와 석방 합의가 됐다며 <소말리아 피랍 4명 풀려난다>(8.11)는 조선일보의 보도 이후로도 한달이 훨 지났다. 그러나 그들은 아직 석방은커녕 해꼬지를 당하고 있다. 해적들이 추가석방금 요구하고 식물줄기로 선원들을 협박하고 있다는 국제신문의 기사. 오늘(17일) 나왔다.
☞ 해적들 추가석방금 요구…협상 난항

물론 지금-여기의 미디어는 관심이 없다. 어디에도 이 기사는 주목받지 못한다. 하다못해 기사가 나온 국제신문도 2면에 게재되고, 홈페이지에 들어가니 메인페이지에선 찾을 수가 없다. 오전에는 모르겠다만.

과연 나는 이들의 생사여부나 석방여부가 미디어들에겐 중요하지 않은지 묻고 싶다. 아프간 탈레반 피랍자들과 비교했을 때, '신-변'사건에 견주었을 때, 디워의 미국 흥행여부와 시소를 태웠을 때, 대선-경선 주자들의 시시콜콜한 행보와 맞세웠을 때...

아프간 피랍사태나 덴마크 선원들의 석방과 비교했을 때, 정부의 안일한 대응도 문제지만, 도대체 이 땅의 잘난 미디어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 당신들이 말하는 그 가치는 어디에 쳐박아놓고 당신들의 모든 자원과 신경을 쏟고 있는 그 사건들은 과연 우리를 둘러싼 모든 세계인가. 언론사 사이트건, 포털이건 우리를 좁은 세계에서만 몰아넣은 그들의 무신경이란.

물론 앞서 간간히 잊지 않게 보도는 하고 있었다. 정부 질타 혹은 정부의 대응 촉구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구색 갖추기 같은 모양새.
☞ 인간은 평등하지 않다
☞ <덴마크 배는 풀려났는데..한국 선원 왜 못 나오나>
☞ 아프간·소말리아 피랍 ‘너무 다른’ 정부 대응
☞ 김만복 국정원장님, 왜 아프간에만 가세요?

그러나 자신들 보도에 대한 반성은 당연 없다. 처음부터 아프간 인질 사태 때만큼 공간을 할애하지도 않았다. 이상하다. 아니겠지만, 아프간 피랍사태는 거대교회의 눈치나 로비력을 등에 업어서였던 건 아니겠지? 혹시 선원들이 힘 없고 빽 없는 서민이어서는 아니겠지? 그들의 계급 격차 때문은 아니겠지?

더구나 가지 말라는 곳까지 가서 선교하러 간 이들과 돈을 벌어 먹고 살기 위해 간 선원들은 어디가 더 절박한가.(아프간에서 인질로 있던 이들을 타박하자는 건 아니니 오해말길!) 정부로부터의 관심도 관심이지만, 미디어들은 왜 그렇게 내외부 자원을 동원하는 일부터 공간을 할애하지 않는거지? 나는 그저 궁금할 따름이다. 정부 관심만 촉구하는 '척' 말고 자신들 내부부터 재구성하지?

이른바 '주류' 미디어에 나온 것만으로 세계를 흡수해선 역시 안된다. 주류다 보니, '주류'(酒流)만 마셔서 정신 없수? 가만보면, 그들은 보고 싶은 것만 보여주고, 보여주고 싶은 것만 퍼뜨린다. 기사거리 혹은 자신들의 공간에 노출할 거리가 안된다는 아주 간단한 묵살. 실체나 진실을 향한 노력보다는 '재편집한' 세계를 보여주면서 그것이 모든 것인양 재단하는. 재편집되는(redacted)되는 매체적 속성은 과연 누구의 가치 혹은 이익을 위해 복무하는 것인가. 주류 매체가 심어준 무의식이 세계를 진짜 재편집하고 있는 건 아닐까.

우리는 (주류)미디어를 통해 바라보고 있는 세상이 전부가 아닐까 생각한다. 아니 그럴 수밖에 없다. 그 미디어들은 자신들의 공간을 '엘라의 계곡'처럼 인식하게끔 주입한다. 엘라의 계곡은 다윗이 골리앗에 맞서 싸운 곳이다. 자신들이 보여주는 그 계곡에는 사실이, 진실이, 정의가 있는 양. 그러나 그 계곡에는 이런 지점도 있음을 간과해선 안된다. 다윗 이전에 왕은 용사라는 칭호를 부여하면서 얼마나 많은 소년들을 죽어서야 돌아올 수 있는 그 계곡으로 보냈다는 것. 많은 독자(이용자)들은 거기엔 사실, 진실, 정의가 있는 줄 알았으나 결국 세뇌당한다. 주류 미디어가 요구하는 이데올로기와 세계관에. 사실, 진실, 정의는 저 너머에 있는데...

무엇보다 짜증나는 건, 그들은 타인의 고통에 관심이 없다는 점이다. 그저 자극적이고 흥미로우면 다 되는 줄 안다. 그것이 이용자들의 요구 혹은 알 권리라며 자신들의 책임이 아닌양 떠벌린다. 나는 한국인들이 피랍된 소말리아의 진실을 좀더 알고 싶다.

일전에도 말했지만, 미디어는 인공적인 건조물이다. 리얼리티를 다시 건설하는 것처럼 가장한 매우 교묘한 속임수의 한 형태다. 미카엘 하네케 감독은 그래서 말했다. "미디어는 우리가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환상을 심어주며 의식을 교란시킨다. 그러나 문제는, 사실 우리가 아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이다."

사실,
'변-신'의 귀재들 혹은 대선·경선의 찌꺼기, 디워의 꼬리 등과 사랑에 빠진 언론·미디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노래가 있다.
우리 (김)수철 형의 노래 '정신차려'. 아~ 여보게 정신차려, 이 친구야~~

나는 그리고 '지금-여기' 이런 미디어를 보고 싶다.
"세상에는 축구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다"던 지단의 말 처럼,
"세상에는 '변-신'보다, '디워'보다 더 중요한 것들이 있다"는 선언은 않더라도,
그런 마음을 지면, 전파, 인터넷 등 자신들의 공간을 통해 보여주는 미디어.
전혀 만족은 않겠지만,
감히 나는 그 미디어에 '착한 미디어'라는 이름표를 붙여주겠다.
그리고 '다행이다'라는 노래를 불러주겠다. 그대라는 아름답고 착한 미디어가 세상에 있어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