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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털 싱글스토리

'재혼'보다는, 그냥 '결혼'

예기치 않은, 결혼식이었다.
와이프랑 애 낳고, 자알~ 살고 있던 녀석이었다.
물론, 결혼식 하지 않은 건 알고 있었지만, 별로 관심 없는 듯 했다.
그랬던 녀석이, 얼마전 전화를 통해 결혼식을 알렸다. 오랜다. 그러면서 조용히 오랜다.
허허, 올 가을, 모처럼 시즌2를 열었더니, 섭섭찮게 이렇게도 예외를 만들어주는군.
물론, 청첩장은 못 받았다. 녀석이 결혼 전 만남에서 깜빡했다며 가져오질 않았다.
2007/09/29 - [돼지털 싱글스토리] - 청첩장 이후, 두번째 시즌의 도래

녀석은, 이른바 세상에서 말하는 '재혼'이었다.
녀석은 그래서, 이번 결혼식이 쪽 팔린다고 해댔다.
처가집에서 식을 하자고 자꾸 말씀하셔서, 어쩔 수 없이 날을 잡았다고 했다.
다른 녀석들에게 말하지 말라고 해서, 식장에 초대받은 우리 친구들은, 나 포함 단3명이었다.
넘사시럽다고, 남 보기 민망하다고 식장에서도 자꾸 날 붙잡고 하소연을 해댔다. 켁. 어쩌라규!!!

뭐, 녀석을 꾸짖고픈 생각은 추호도 없다.
아직 결혼 못한, 더구나 그 녀석이 말한대로 '아직 결혼을 한번도 못해본' 어린 놈이, 뭘 알겠냐마는.
나는 종종, 먼저 그 '재혼'이라는 말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굳이, '다시' '또' 결혼을 한다고 그렇게 붙일 필요가 있냐 이거다.

그냥, 결혼이다.
'재혼'은, 내 편견이겠지만, 누군가를 공격하고, 뒷담화까려는 의도가 담긴 것 같아 불편하다.
사랑이 그러하듯, 결혼도 언제나 '첫결혼'이 있을 뿐이다.
사랑에, 첫번째, 두번째... 이런 순위가 무의미하듯, 결혼도 마찬가지다.
사랑은, 언제나 그 사람과 첫사랑이며, 결혼 역시 그 사람과 첫결혼이다.

사회가 그렇게 만들었다.
나는, 녀석의 쪽팔림은, 결국 사회적 산물이라고 본다.
'또 결혼'을 곱지 않은 눈길로 쳐다보고, 수근거림의 대상으로 전락시킨 시선.
물론, '한번 결혼은 영원한 결혼'으로 귀결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분명 있겠지만,
부디 그 기준은 자신에게만 적용시키길. 다른 사람을 비난하거나 평가하는 척도로 쓰지말길.
하나 더 부탁하자면, 결혼 못(안)한 사람에게도 마찬가지. ㅎㅎㅎ

그래서, 결혼식은 좋았냐규?
아주 오랜만이었다. 결혼식장에서 갈비탕 먹은 것.
언제부턴지, 내 주변 결혼식에 갈비탕이 사라지고 있었는데.
서빙하는 아줌씨 마인드가 영 아니래서 기분은 쪼매 나빴지만 갈비탕 맛나게 먹어서 퉁~

결혼식은 점심이었고,
그 결혼식을 마치고 회사로 들어가는 길,
내가 읽고 있는 책(<<필름 속을 걷다, 이동진>>)에서 이런 얘기들이 튀어 나왔다.

"...사랑의 수명을 결정하는 것은 결국 입 밖으로 내뱉은 낭만이 아니라 심장으로 삼킨 연민이다... 연인들이란 모든 것을 변하게 만드는 세월 앞에서 무모하게도 감정을 약속하는 사람들이다..."


허허, 영원한 사랑을 약속한 결혼식장의 신랑신부를 만나고 온 내게,
너무 서늘한 말들의 풍경이 펼쳐진 건 아닌가. 나는 그냥, 쓴지 단지도 모를 웃음만 지었다.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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