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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내가 발 딛고 있는/위민넷

세상을 향한 강서비스, 알시아 기브슨(Althea Gibson)

세상을 향한 강서비스, 알시아 기브슨(Althea Gibson)
(1927.8.25~2003.9.29)


흑인이라면 대놓고 무시를 당하던 시절.
테니스에 관심을 둔 한 흑인소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소녀를 둘러싼 환경이 참 열악해요.
찢어지게 가난했던 집안, 정부의 복지원조(생활보호대상자)로 지탱했던 생계.
아버지의 학대를 받았고, 아버지의 술주정을 피해 지하철을 번갈아 타면서 동이 틀 때를 기다리곤 했던 소녀.
가출도 심심찮게 했다지요. 학교에 자주 무단결석하면서 마음 둘 곳 없던 그 소녀.

그러나 만나야 할 사람은 꼭 만나게 되듯,
테니스를 해야 할 사람은 테니스를 하게 되나봅니다.
테니스가 소녀에게 온 것인지, 소녀가 테니스에게 다가선 것인지 몰라도,
알시아 기브슨은 테니스와 운명적으로 만났습니다.
사실, 그 시대에 가당치도 않았지요. 백인들 중심으로 테니스가 소비되던 때, 할렘가에 사는 소녀가 관심을 가진 것이 하필 테니스라니.

연유야 어찌됐든, 그는 테니스에 재능을 보였습니다.
테니스라켓을 쥘 때만큼은 남달랐던 그의 재능과 흥미는 음악가 버디 워커의 눈에 띄었습니다. 버디의 눈은 틀리지 않았고, 기브슨을 후원했고 할렘가의 다른 흑인사업가들도 재정지원을 통해 그의 재능을 밀었습니다.  

기브슨은 그렇게 날개를 달았습니다.
1950년 흑인으로서는 처음 포레스트 힐스 경기에 참가했던 그는, 1956년부터 본격적인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역시 흑인으로서는 처음 프랑스 국제테니스대회 단복식과 이탈리아 국제테니스대회 단식 우승을 이끌었고, 무엇보다 1957년 영국에서 열린 윔블던 테니스.
승승장구하며, 4강전에서 영국 홈팬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던 여고생 스타 크리스틴 트루먼을 2대0으로 가볍게 물리칩니다.
자국 스타를 무너뜨린 흑인에 대한 영국 백인관중들의 시기와 질투에도 아랑곳 않고, 그는 결승에서도 단 50분만에 달렌 하드를 2대0으로 꺾고, 영국 여왕으로부터 우승 트로피를 하사받았습니다. 흑인으로서 처음 윔블던을 제패한 역사적인 순간.


기브슨은 멈추지 않습니다.
윔블던 우승 기념연회장. 
그는 남자 단식우승자인 호주의 루 호드와 춤을 춘 뒤 연단으로 올라갑니다.

그리고선 <내가 당신에게 줄 수 있는 것은 오직 사랑뿐>이란 노래를 부릅니다.
멋지지 않아요?
그는 정말, 이 담대하고 불온한 행동을 할 만한 충분한 자격이 있는 사람입니다.
기브슨의 윔블던 우승은 흑백으로 갈라져 반목하던 미국과 영국의 테니스클럽이 자연스럽게 통합을 이루는 계기가 됐다죠.

이후 그는 윔블던 복식 우승은 물론, 전미선수권대회 단식과 혼합복식, 오스트레일리아 국제테니스대회 복식 등 여러 대회에서 빼어난 기록을 남겼습니다.
테니스 외에 프로골퍼로 전향해 좋은 성적을 거두기도 했던 그는,
1971년 테니스 명예의 전당인 내셔널론의 회원이 된 것을 시작으로 국제테니스 명예의 전당, 흑인 스포스선수 명예의 전당, 사우스 캐롤라이나 명예의 전당, 플로리다 스포츠 명예의 전당 등에도 이름을 새겼다네요.

최근 셀레나와 비너스 윌리엄스 자매의 멋진 테니스 경기를 보자면,
자연히 알시아 기브슨이 세상을 향해 날린 강서비스가 생각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겠죠?

(※참고 : 브리태니커백과, 한겨레21, 『Althea Gibson: Tennis Player』(Benson, Michael 지음/Ferguson Publishing Company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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