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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내가 발 딛고 있는/위민넷

사랑에 웃고 운 과학의 제왕, 마리 퀴리(Marie Curie)

사랑에 웃고 운 과학의 제왕, 마리 퀴리(Marie Curie)
(1867.11.7 ~ 1934.7.4)


매우 유명한 양반이죠.
그 이름을 듣거나 보면 떠오르는 건, 역시나 폴로늄과 라듐, 혹은 노벨물리학상(1903)과 노벨화학상(1911). 1번도 어렵다는 노벨상을 두 번이나 탔던 과학자.
 
분할 지배하의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태어났던 그의 본명은 'Maria Skłodowska'입니다.
제정 러시아의 지배하에 있던 어린 시절, 10세 어머니를 잃은 그는 17세 무렵 가정교사 등을 하면서 독학하는 과정도 겪었습니다. 마냥 쉽지많은 않은 유년이었죠.
대학에서 수학과 물리학을 전공하면서 그의 과학적 재능은 본격 꽃을 피웠습니다.
물론 그의 과학적 업적은, 1895년 결혼한 남편, 피에르 퀴리와의 공동 연구에서 비롯됐지요.

남편과 함께 방사능 연구에 나선 그는 방사능이 원자 자체의 성질이라는 것을 알아내면서,
1898년 7월 조국 폴란드의 이름을 딴 폴로늄을, 같은 해 12월 라듐을 발견했습니다.
이는 방사성원소로서 발견된 최초의 것으로,
라듐은 우라늄보다 훨씬 강한 방사능을 가진다는 점에서 중요한 발견이었죠. 
또 방사성물질에 대한 학계의 관심을 불러일으켜, 새 방사성원소를 탐구하는 계기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아울러 1903년 노벨물리학상을 받게 한 업적이었죠.
 
하지만 마리에게도 사랑의 위기가 닥칩니다.
이들 부부는 남부러울 것 없는 행복함을 누리는 듯 했지요. 연구나 명예, 부, 가정생활 어느 하나 부족함이 없는 듯 했죠.
그러나 1906년 5월 7일, 피에르가 짐마차의 바퀴에 머리가 깔려 즉사했습니다.
서른아홉의 마리에게 닥쳤던 시련 앞에 비통에 빠진 마리가 몰두한 것은, 역시나 연구.
피에르의 후임으로 소르본 대학의 교수(여성으로는 최초였다죠)가 됐고, 방사성물질을 계속 연구했습니다.

이젠 위인전에는 잘 나오지 않는 이야기입니다. 
11년을 함께 했던 피에르의 빈자리가 커서였을까요.
물론 꼭 그것만은 아니었겠지만,
마리는 두 번째 노벨(화학)상을 받기 전,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스캔들의 주인공이 됐습니다. 사람들로부터 노벨상에 대한 칭송은커녕 많은 비난을 받아야만 했던.

마리는 피에르의 제자였던 폴 랑주뱅과 사랑에 빠졌는데요,
문제는 폴이 유부남이었다는 거죠.
마리는 폴에게 적극적이었고, 결국 폴의 부인이 이 사실을 알게 됐지만,
마리는 "끝까지 기다릴게요...내게로 돌아와 줘요"라는 편지까지 보내며 애정을 보였습니다.
어쩌다 이 편지가 폴의 부인을 통해 일간지 '뢰브르'에 공개, 문제는 일파만파가 됐죠.

마리는 사랑을 위해서라면 수상이 유력한 노벨상도 포기할 수 있다고 했다지만,

폴은 비난을 이기지 못하고 부인에게 돌아갔다죠. 그들의 사랑은 여기서 끝나고 말았고.
그는 결국 두 번째 노벨상을 탔지만, 어쩌면 상처뿐인 영광이었죠.
왕립과학아카데미에서도 노벨상 수상 여부를 다시 숙고할 정도였는데,
그 업적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세상의 영예와 비난을 모두 맞본 마리였습니다.
어쩌면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의 연구와 과학적 성과를 지속한 건, 피에르나 폴과의 사랑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그랬기에 그는 노벨상을 포기할 수 있을 정도로, 사랑에 솔직 당당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세상의 율법보다 자신의 마음의 소리에 더욱 충실했던.

어쨌든 마리는 퀴리실험소의 소장으로서 프랑스의 과학 연구에 공헌했고, 백혈병으로 사망한 지 61년 만인 1995년 남편 피에르 퀴리와 함께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역대 위인들이 안장된 파리 팡테옹 신전으로 이장되는 사후 영광도 누렸습니다.
저는 세상의 율법을 거부한 사랑의 만신전에 그를 올려놓고 싶은데, 당신은 어떠세요?


P.S... 마리가 1921년 열렬한 환대 속에 미국을 다녀온 뒤 언니에게 한 이 말, 왠지 짠합니다.
 "난 살아오면서 너무 많은 고생을 해서 더 이상 남은 고생이 없어. 이젠 진짜 재난이 닥쳐야 느낌이 올 거야. 나는 체념이 뭔지 알게 되었고, 일상의 회색 속에서 작은 기쁨 몇 개를 발견하려 노력해…"

어쩌면 우리는 '마리 퀴리'라는 이름에, 노벨상이라는 엄청난 명예에 가려,
그를 제대로 알지도 보지도 못한 건, 아닐런지...

(※ 참고 : 『퀴리가문』(데니스 브라이언 지음ㆍ전대호 옮김/지식의 숲 펴냄), 두산백과사전, LJ비뇨기과 칼럼 '남편의 제자와 밀애를 나눈 퀴리 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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