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계, 내가 발 딛고 있는/위민넷

인도 최초의 여성총리, 인디라 간디

인도 최초의 여성총리, 인디라 간디
(1917.11.19~1984.10.31)


인도의 주요한 국제관문이라면, 인디라 간디 공항을 들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 인도 뉴델리로 가려면 이 공항에 도착하게 되죠.
이 공항의 이름은, 인도 최초의 여성 총리의 이름을 딴 것입니다.
여성의 이름을 따 국제공항을 명명한 것은 거의 드물지 않을까 싶은데요.
과연 어떤 사람이 길래, 그렇게 명명됐을 정도일까요.

우선, 인디라 간디는 마하마트 간디와 혈연관계는 아닙니다.
그의 아버지는 인도 독립의 아버지이자,
인도 초대 총리를 지낸 자와할랄 네루입니다.

그의 성은 결혼하면서 훗날 하원의원이 된,
남편 페로제 간디의 성을 따른 것입니다.

독립운동가 아버지의 무남독녀로 태어난 그는,
12살 때부터 독립운동에 참여했고,
'리틀 인두(작은 인도인)'라는 별명으로 불렸을 정도로 당찬 아이였습니다.

인도에서 기초교육을 받은 그는,
스위스, 영국 등에서 수학한 뒤 21살 때인 1938년, 아버지 네루를 따라,
인도국민회의파에 입당해 반영(反英) 독립운동에 본격적으로 나섰습니다.


인디라는 정치가로서도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독립 후 아버지 비서실장 역할을 한 것을 비롯,
1959년 인도국민회의파 당수가 됐습니다.

그러다 1964년, 아버지 네루가 사망한 뒤,
샤스트리내각에서 공보장관을 지낸 그는, 

1966년 소련 샤스트리가 사망하자, 인도의 제3대 수상이 됐습니다.
인도 최초의 여성총리로서 마침내 오른 것이죠.

집권 초기, 인디라는 경제 안정에 주력하면서 국민들의 큰 지지를 받았습니다.
문제는 차츰 강권통치를 자행한데 있었습니다.
시크교도들의 독립운동을 무력진압하고,
정권유지를 위해 야당을 탄압하는 등으로 독재자라는 비난을 받은 데다,
아버지의 17년과 딸의 11년 등 28년 장기 집권에 싫증을 느낀 인도인들의 반(反) 간디분위기로 1977년 총선에서 참패, 정계를 떠났습니다.
그러다, 집권당인 인민당이 국민의 신임을 잃자, 이를 빌미로 정계복귀한 그는,
1980년 총선에서 승리, 다시 수상으로 취임하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하지만, 두 번째 총리시절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시크교도의 독립을 억압했던 인디라의 전력이 발목을 잡았습니다.
1984년 10월 31일, 시크교도인 경호원의 피격으로, 암살당하고 말았던 거죠.
평소 방탄조끼를 입고 있다고 알려졌던 그는,
카메라 앞에서는 이를 입지 않았는데, 암살범이 그 때를 노렸습니다.
눈 깜짝할 새에 인도 최초의 여성 지도자는 눈을 감았습니다.

(※참고자료 : 위키백과, 네이버 지식인)

위민넷 - 키위, 여성을 말하다 (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