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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내가 발 딛고 있는/위민넷

견고한 사회로부터 매장된 유능한 재능, 까미유 끌로델

견고한 사회로부터 매장된 유능한 재능,
까미유 끌로델(Camille Claudel)
(1864.12.8~1943.10.19)

'청출어람(靑出於藍)'이라는 말도 있지만,
결국 스승의 벽을 넘지 못해 소멸한 재능이 많은 것도 사실이죠.
여기 이 사람도 그렇습니다.
어쩌면 스승보다 뛰어난 재능을 지니고 있었음에도,
스승의 견제와 분노로 돌아선 사랑의 아픔에 재능을 제대로 펼치지 못한 사람.
그렇습니다. 까미유 끌로델(Camille Claudel)입니다.


아마, 영화 <까미유 끌로델>(1988)을 통해, 그를 만난 분도 많으실 거예요.
인상적인 영화였죠.
로댕이라는 이름에 가려진 한 예술가.
이자벨 아자니의 열연으로 새삼 알게 된 불꽃같은 예술혼.

등기소 소장 부부의 1남2녀 중 장녀로 태어난 까미유는,
부족함 없이 자라면서 예술적 재능을 일찌감치 드러냅니다.
조소에 소질을 보인 그가 12살에 만든 점토작품이 전문가들의 인정을 받았을 정도였죠.
아버지는 그를 위해 전폭적인 지원을 마다하지 않았다죠.
까미유를 미술학교에 보내기 위해,
자신은 일 때문에 지방에 남지만,
가족을 파리로 이사시킬 정도로 그를 아꼈습니다.

당대로선 쉽지 않은 일이었죠.
딸을, 여성을 쉬이 인정하지 않는 미술계의 분위기를 감안하더라도 말입니다.
다만, 어머니는 그의 예술성을 인정은커녕 증오할 정도로 보수성향이 강한 사람이었습니다.
집안분위기가 예사롭지 않았을 것임은 눈에 보입니다.
그럼에도 17세 때 조각가가 되기로 마음 지어먹은 그는 그렇게 가족의 희생을 요구하면서, 드물게 여학생 입학을 허용하던 아카데미 콜라로시에 입학, 창작열을 본격 싹틔웁니다.

재능과 미모, 목표의식과 강한 의지를 두루 갖춘 까미유는,
19세에 로댕을 만나 이듬해 그의 제자 겸 조수가 됩니다. 어쩌면 비극의 시작.
로댕의 <지옥의 문> 제작팀 일원으로 첫 작업을 함께 하면서,
까미유는 탁월한 상상력과 섬세한 솜씨를 발휘하면서 로댕의 마음을 사로잡게 되죠.

24살의 나이차는 문제되지 않았습니다.
까미유는 로댕의 뮤즈가 되는 듯 보였지요.
로댕의 예술적 영감을 북돋는 것은 물론, 연인으로서 말이죠. 

그러나 그 모든 것이 순탄하게 진행되지만은 않습니다.
까미유는 로댕의 아내로서 예술적 동반자가 되길 바랐습니다.
그러나 로댕은 그렇질 않았죠.
여성 편력(이사도라 덩컨도 로댕을 사모했으나, 로댕은 그를 모델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았다고 전해집니다)이나 이전부터 곁에 있던 로즈 뵈레 때문인지,
그는 결혼을 원하지 않았고,

까미유의 재능에 경쟁심을 갖게 되면서 외려 까미유를 견제하게 됩니다.
두 사람은 같은 시기에 비슷한 작품을 남겼는데요.
로댕의 일부 작품이 까미유의 것을 표절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받습니다.
로댕의 <키스>, <가라테아>가 까미유의 <사쿤달라>, <밀단을 진 소녀>와 유사하다는 이유.
자신의 명성에 더 이상 먹칠을 해선 안 되겠다고 생각한 로댕은, 손을 씁니다.
까미유 작품이 전시회에 출품되지 못하도록 압력을 가합니다.
이런 관계라면, 파국은 결국 불을 보듯 훤하죠.
그럴 때 까미유의 선택은, 하나죠. 로댕을 떠나는 것.

그러나 세상이 어디 그리 호락호락한가요.
더구나 때는 19세기 후반, 여성이 예술가로서 위풍당당 자신의 재능을 발휘하는 것을 제대로 허용하지 않을 시기죠.
이 같은 사회적 억압과 옛 스승이자 연인의 견제까지 어우러지다보니,
그의 날개가 제대로 펼쳐질 수 있었을까요.
재능과 불꽃같은 예술혼으로 조각에 몰두한 까미유였지만,
분노가 잠식한 영혼은 쉽사리 안정을 찾지 못했습니다.
육체마저 망가지기 시작하죠.

로댕에 대한 배신감에 우울증에 시달리고,
"로댕이 나의 재능을 두려워 해 나를 죽이려 한다"는 강박증까지 덮쳤습니다.
밤마다 로댕의 집을 향해 돌팔매질을 하던 까미유는,
결국 정신병원으로 보내졌고,
30년 동안을 이곳에 머물다 비극적인 삶을 마쳤습니다.


시인이자 외교관이었던 까미유의 동생, 폴 끌로델은,
"그녀는 로댕에게 모든 걸 걸었고, 그와 함께 모든 걸 잃었다"고 말해,
로댕의 그늘에 가린 누이의 삶을 애통해했습니다. 

전 사실 까미유 끌로델의 작품이,
살아서도 죽어서도 명예와 찬사를 받은 로댕의 것에 비해 뛰어났는지는 모르겠어요. 그럴만한 안목도 위치에 있지도 않으니까요.
다만, 이런 생각은 들어요.
한 재능 있는 여성을 제대로 인정하지 못하고 배척한 사회적 상황도,
그를 비극으로 몰아갔다는 혐의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 아닐까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참고자료 : 두산백과사전, 위키백과, 『프리다 칼로와 나혜석, 그리고 까미유 끌로델』(정금희 지음/재원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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