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또 다른 미디어

성년의날에 생각하는 미디어와 세계관


세계관. 너나 할 것 없이 누구나 가진 것이 세계관이지. 넓고 깊음, 스펙트럼의 분화와는 아무 상관 없이 나를 둘러싼 세계에 대해 가지는 자신만의 생각. 뭐 '형이상학적 관점에서의 세계에 관한 통일적 파악'이라는 백과사전식 정의는 걍 어려우니 무시. 누군가가 아무리 잘났더래도 세계를 구성하는 한 부분이고 현실세계를 살면서 좋으나 싫으나 가지게 되는 것. 그게 세계관이지.

그런데 그 세계관의 형성은, 나를 둘러싼 주변의 총합이다. 세계관 형성의 원인을 하나로 규정하는 건 바보짓이다. 의식과 무의식의 합체다. 합! 변신합체로봇. 용광로처럼 한데 녹여내기도 하지만 샐러드처럼 각기 다른 것들이 조화를 이루기도 한다. 무의식적으로 갖게 되기도 하지만 의식적인 선택도 가능하다.

무의식이야 선택할 수 없는 부분이니 차치. 그런데 의식적인 선택에서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미디어다. 어느 미디어, 어느 매체를 선택하느냐,가 한 사람을 바꿀 수 있다. 매체의 천국, 일본은 그렇단다. 이명석의 얘기다. "고단샤의 '매거진' 시리즈를 보며 자란 아이들, 슈에이샤의 '점프' 시리즈를 보며 자란 아이들, 그리고 쇼가쿠칸을 비롯한 여타 출판사 계열의 만화잡지를 보고 자란 아이들은 어른이 되면서 취향도 세계관도 전혀 다른 쪽으로 나아가게 된다고 한다."

재밌지 않나. 고단샤, 슈에이, 쇼가쿠칸이 조력한 세계관. 그리고 그것의 영향을 받아 분화된 세계관. 매체의 개성과 편집 방향이 결국 세계를 만든다. 한 사람의 세계관을 바꿔놓는 건, 결국 세계를 바꿔놓는 것과 다르지 않다. 세계관 형성 무렵, 만난 매체가 당신을 바꿀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스무살 안팎의 무렵일 가능성이 크다(물론 그 이후로도 불가능한 건 아니지).

성년을 맞은 이들이 선택할 미디어가 무엇일까. 나는 궁금하다. 세계관 형성 즈음의 선택은 결국 미래와도 연관되지 않겠나. 급변하는 미디어환경에서 어떤 선택을 할까. 정보 혁명이라는 말로 치장된 데이터스모그의 현실은 사실 나쁜 세계관의 전이에 더욱 용이한 환경이다. 세계관은 전염된다. 매체를 통해서도. 가만보면 나쁜 세계관은 착한 세계관보다 전파력에서 월등한 것 같다. 예방주사? 글쎄, 그걸 맞히면 좋은데 어디 짱 박혔는지 알 수가 있어야지. 혹시 당신은 아나? 예방주사 제대로 발명하면 노벨 의학상은 거저먹기다. 안주면 말고.^^;

지금도 그렇지만 더 미욱하고 허섭한 세계관에 허우적대던 시절에 나는 우연히 고종석과 김규항을 만났다. 스무살 언저리였다. 구원이었다. 그들은 내게 하나의 매체요 미디어다. 그리고 한 사랑으로 인해 <씨네21>을 만났다. 역시나 구원. 무엇이 당신을 구원케 했거나 해 줄지는 모르겠다. 그건 당신의 선택이다. 하긴 지금 스무살의 당신에겐 너무도 많은 매체들이 줄을 대고 있다. 블로그들도 봐라. 대체 무엇을 선택할 지 혼란혼란혼란스럽다. 끙. 누구 없소? 이럴 때 스무살에게 서광을 줄.  

어쨌든 어떤 미디어, 어떤 매체를 선택하느냐도 중요하지만, 해당 미디어나 매체에서도 눈을 맑게 해 줄 수 있는 것과 만나야할 터인데. 부디 나쁜 세계관을 전염시키는 미디어와 만나게 되질 않길. 물론 완벽한 것은 어디에도 없다. 예방을 우선으로, 전염됐다면 치유에 신경쓰는 수밖에.^^;  

<고래가 그랬어> 같은 매체가 더 나와줬으면 좋겠다. 희망사항이다. 성년들이 봐도, 나 같은 미욱한 작자가 봐도 충분히 좋은 매체지만, 좀더 행복한 고민을 하게끔 만드는 매체들이 짠~ 등장해줬음 좋겠다. 착한 미디어. 물론 물질적 풍요가 가장 중요하고, 무한경쟁에서 남을 짓밟고 이기는 것이 최선임을 강조하는 사람들에겐 <고래가 그랬어>는 나쁜 미디어다. 좌경용공 미디어지. 착함과 나쁨의 갈림길 역시 세계관의 차이에 의해서지. 경계는 그렇게 쉽게 허물어져. 쯧.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있지만, 아직 올해가 안 갔으니 그나마 다행.^^;  
고래가 그랬어, 나도 그럴래.

스무살 성년 축하. 혹시 이들에게 권해주고픈 착한 미디어 혹은 착한 매체 있는겨? 있으면 좀 알려주심이 어떻소. 스무송이 장미, 알싸한 향수, 그리고 짜릿한 키스보다 스무살을 위한 미디어나 매체를 권해주는 건 어떻겠나. 언제든 '시작'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그 나이를 위해. 혹은 나쁜 세계관의 전염을 예방하기 위해서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