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비판매체 극복법 그리고 미테랑의 상상력 뜬금없이 '미테랑'. 그가 세상을 떠난 지도 벌써 11년. 프랑수아 미테랑(1916.10.26 ~ 1996. 1. 8) 이후 프랑스에는 시라크가, 그리고 최근 사르코지가 뒤를 이어 대통령이 됐다. (이번 사르코지는 -이념은 차지하고- 앞선 두 프랑스 대통령의 이미지가 강렬해서인지, 좀 경박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희귀본을 수집하는 문학광이었던 미테랑, 아시아 문화와 예술에 조예를 갖고 있던 시라크는 다른 노선의 인물들이었지만, 산책하고 사색하는 모습이 어울리던 대통령 이미지를 가졌다. 사르코지는 다르다. 왠지 팔랑거린달까.) 프랑스 제5공화국 출범(1958년 9월28일)이후 최초이자 현재까지 유일한 좌파 대통령이었던 미테랑. 이전에 내가 알고 있던 미테랑은, 재임 내내 문화고양에 힘 썼으며 그만한 문화.. 더보기
[정은임②] 근 1년여 만에 다시 꺼내보는 당신의 이름입니다 (2005. 8) 그리고 1년이 지났다. 한 사람의 부재가 불러온 균열. before 와 after 의 간극. 그러나 누구에게나 그러하듯, 죽지 않는 이상 일상의 힘을 이겨낼 재간은 없다. 일상의 힘은 세다. 그걸 버티고 견뎌내는 것이 장삼이사의 생이다. 누나가 떠난 1년. 세상은 어찌할 수 없는 소용돌이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절망을 이겨낼 힘 역시 일상이었다. 생은 그래서 언제나 'on air'다. 누나가 떠난 1년 뒤, 여전히 나는 미디어오늘에 있었다. 기자수첩을 쓸 차례였는데, 딱히 다른 것도 없고, 시기도 누나를 떠나 보낸 1년이 다 된 시점이었다. 그래서, 누나에게 묻고 싶었다. "잘 지내세요" 혹은 "오겡끼데쓰까" 참 오랜만이죠? 근 1년여 만에 다시 꺼내보는 당신의 이름입니다. 잘 지내시나요... 더보기
[정은임①] 라디오시대 마지막 스타가 떠났다(2004. 8) 정든님, 정은임 누나가 떠나던 해. 그해 여름. 그리고 떠나던 그날. 많은 비가 흐르고 있었다. 눈물처럼. 자신만의 분명한 콘텐츠를 가지고 있던 '착한 미디어' 정은임. 무슨 이유에선지 당시 나는 무엇이든 써야겠다는 생각을 가졌고, 미디어오늘에서 기자칼럼의 형식을 빌어 누나의 명복을 빌고 나름의 추모사를 썼다. 그리고 3년. 세상의 엄혹함은 강도를 더하면 더했지, 전혀 나아질 기미는 없다. 이랜드, KTX... 다시 다가오는 시즌. 만약 살아있다면 누나는 어떤 말을 우리에게 건네줬을까. 정은임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 www.worldost.com 그들에겐 다시 정은임을 꺼낼 시간. 3년 전, 누나를 그리며 썼던 추모글. 다시금 정은임 추모기간. 라디오시대 마지막 스타가 떠났다 [기자칼럼] 정은임 .. 더보기
[한뼘] 위로 첫 소절을 만나고선 눈물이 울컷 솟는 어떤 노래들이 있다. 어쩌다 들을 때 특히 더 그렇다. 그건 어떤 추억과 맞닥뜨려서일 것이다. ㅠ.ㅠ 언젠가 우리 다시 만나면 에이 안 되겠지, 하면서도 한편으로 혹시나하며 기대했던 어떤 축제에서 작은 상을 타게 됐다. 오래전에 써 놓은 글이었지만, 시간이 흐른 뒤에도 날 위로해 주기도 하는구나. 그래, 아주 작지만 지금-여기의 내 생에선 크나큰 위로다. 요즘 같이 너절한 슬럼프에선 더욱더. 생은 가끔 이런 식으로 위안을 받는다. 나는 숨을 쉰다. 휴우. 그런데 '언젠가 우리 다시 만날' 수 있는 일말의 기적 혹은 기대감마저 박탈당한 사람에겐 저 노래가 너므너므 아플 때가 있다. 죽음이 그렇듯, 연애도 사랑도 결코 익숙해질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매번 그 대상.. 더보기
안녕, 에드워드 양 감독님... 속절 없이 떨어지는 눈물을 어쩔 수 없습니다. 아무런 대책이 없습니다. 그냥 제겐 충격이네요. 사무실에 앉아 훌쩍거림과 함께 자판을 두드립니다. 창밖으론 비가 내립니다. 그런데 하늘에서 땅으로 향하는 것이 진짜 비인지, 눈물인지, 알 길이 없습니다. 아침 출근 길엔 분명히 비였건만, 지금 창밖으로 보이는 물은 빗물 아닌 눈물인 듯 싶습니다. 7월의 시작부터 눈시울을 뜨겁게 한 소식은 에드워드 양 감독님의 타계 소식입니다. 에드워드 양 감독, 고이 잠드소서 이렇게 훌쩍 가 버리실 줄 몰랐습니다. 7년의 투병생활. 대장암 합병증. 향년 59세. 그렇게 아프신 줄도 몰랐습니다. 고인께서 투병생활 중임을 대중에 알리길 원하지 않았답니다. 언젠가 그의 영화를 다시 만나게 되리라 막연히 생각만 하고 있었습니다. 에.. 더보기
거부할 수 없는 매혹, 에디 세즈윅 강렬하다. 격렬하다. 빛난다. 매력적이다. 마음을 흔든다. 사랑스럽다. 1960년대의 뉴욕과 에디 세즈윅이 (의 묘사에 의하면 내겐) 그랬다. 당시 에디는 앤디 워홀의 오브제로 존재할 뿐이었다지만, 영화는 온전히 에디 세즈윅에 집중하고 있었다. 앤디 워홀에 희생당한 자의 이미지보다 에디 자체의 자유분방함과 에너지를 표현할 때 스크린은 더욱 빛났다. 사랑스럽다,는 말 한마디에 반사적으로 함박웃음을 짓는 여자. 그렇게 사랑에 목마른, 관심을 갈구하는, 에디 세즈윅의 표정 하나, 몸짓 하나에 나는 매료됐다. 슬프도록 아름다운 가녀린 존재. 그렇지만 안스러웠다. 가여웠다. 울컥했다. 그것은 어쩌면 팩토리걸의 운명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자유로이 헤집고 다니고 싶었으면서도, 울타리 안에서 보호받고팠던. 치명적이도록 .. 더보기
[한뼘] 체 게바라, 생일 축하!!! 체를 꿈꾸다 : 에르네스토 게바라 데 라세르나. 본명보다 훨씬 더 알려진 또 다른 이름은 '체 게바라'. 1928년6월14일 혁명가 '체'의 탄생일. 80년에서 한해가 빠진다. 그리고 10월이면 서거 40주기. IT혁명이니 정보혁명이니 하는 따위는 사실 말 장난이고. 진짜 혁명은 체 게바라의 죽음과 함께 사그러들었다. 이 21세기에 혁명이란 가당키나 한 말인가. 언제부터인가 내 서명의 한켠엔 자리잡은 체의 일갈.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속에 불가능한 꿈을 가지자!" (Seamos realistas, realisemos lo imposible!) 그리고, 아이들에게 보낸 체의 마지막 편지. "세계 어디서든 불의가 저질러지면 그것에 깊이 분노할 줄 알아야한다. 그게 어떤 불의이고 어떤 사.. 더보기
이런 회사 어디 없소? 놀이와 일이 구분되지 않는! 이른바 '삼성맨'의 사직서를 보고 나서 다시 회사를 생각한다. 나는 '직업'보다는 '직장'을 몇차례 옮겼다. 틈틈히 바뀌다보니 명함도 자주 바뀌었다. 대개의 주변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또 직장 옮겼냐? 이번엔 어디냐" (사실 나는 이런저런 묻지 않고 묵묵히 "잘 옮겼다"는 말한마디로 내 심정을 알아주는 몇몇 속깊은 친구들이 그래서 좋다) 여기서도 그렇지만 구구절절 연유야 설명을 하기가 때론 난감하다. 이직을 단 하나의 이유를 들어 설명하기는 당최 어렵다. 사람살이가 그리 단순하겠나. 쯥. 본디 회사(조직)와 맞지 않는 내 성정도 있겠지만, (내가 거친) 회사들 대부분은 그리 온당치 못했다.('조직 부적응자'라는 일갈도 인정한다^^;;;) 누군가의 말마따나 '모든 회사(조직)는 불합리하다'는데 나는 .. 더보기
시대의 요구, ‘디지털 저널리즘’을 구현하자 지난해 연말 한국기자협회에서 발간한 에 기고한 글. 시대의 요구, ‘디지털 저널리즘’을 구현하자 뉴미디어는 경쟁 아닌 결합의 대상 #1. 최근 한국광고주협회가 발표한 인쇄매체 수용자조사 결과, 신문의 가구구독률은 지난 2001년 51.3%에서 올해 34.8%로 뚝 떨어졌다. 열독률도 같은 기간 69.0%에서 60.8%로 하락했다. 신문구독을 하지 않는 이유로 △TV에서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어서(43%) △인터넷으로 신문을 볼 수 있어서(19.5%) 등이 주로 꼽혔다. #2. 국내 인터넷 사용자들은 뉴스를 접하는 주요 매체로 인터넷(46.7%)을 가장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지난해 나스미디어의 조사결과로 신문은 6.9%에 그쳤다. 이 조사에서도 가구당 신문구독률은 지난.. 더보기
콘텐츠가 미디어다 (하) 콘텐츠는 여전히 화두다. 이용자 중심의 콘텐츠 생산과 배급 역시 아직 유효한 과제다. 콘텐츠 진화가 계속 이뤄지고 있지만, 2005년의 고민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2005년 3월에 쓴 내 기사에서 다시 콘텐츠 진화와 혁신의 방법을 생각해 본다. ‘통합적 접근’ 해야 ‘콘텐츠 혁신’ 가능 콘텐츠 생산 어떻게 해야 하나 … 콘텐츠가 미디어다 (하) 복합콘텐츠·콘텐츠아티스트 양성 등 급선무 현재 언론계에서 논의되고 있는 콘텐츠 혁신을 단순히 생존차원에서만 비롯된 것이라고 넘겨짚을 수는 없다. 뉴스 수용자들과 끊임없이 소통하고 근접조우해야 하는 것이 언론사들의 숙명임을 감안하면, 콘텐츠는 바로 수용자들과의 ‘대화’에서 나온 결과여야 한다. 일례로 한 신문만 보는 독자들에게 서비스하면 콘텐츠는 그들에게만 초점..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