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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털 싱글스토리

청첩장 이후, 두번째 시즌의 도래

청첩장이 밀려오던 때가 있었어.
특히 봄과 가을이면 그래. 시즌이 돼서 친구들이 만나면 서로 수다를 떨었지. 축의금 때문에 얇아질 지갑이 안스러워서. 이번 계절엔 몇번이나 가야한다는 둥, 우리는 축의금 서로 내지 말자는둥. 청첩장은 그렇게 시즌을 알리는 전주곡이었지. 지방까지 원정을 불사하는 우리는 용감한 하객이자 싱글이었다규.


물론 몇년 전부터 나는 그저 헐렁한 하객이었지.

결혼식장에 오는 여성 하객들을 눈여겨 보는 것도 뜸해졌다. 하객으로 와서 눈 맞아 결혼한 커플도 간간히 있었지만, 그건 그저 남 얘기. 염불보다 잿밥에 관심 많은 하객 시절은 끝났어. 그날 밥이 잘 나오면 그것으로 충분해. 내 기준으로 결혼식의 성공 여부는 밥이나 피로연에 달려 있었던게지. ^^;


지난 봄만 해도 청첩장은 내 손에 쥐어졌다규.
결혼식은 이전보다 확실히 뜸해졌지만. 그러나 올 가을, 한통의 청첩장도 도달하지 않았다. 오호. 대신 주어진 것은 돌잔치 초대장. 그래, 확실해진거야. 이젠 한 시즌이 끝난 거야. 두번째 시즌이 확실히 도래한 것이다! 올 가을엔 돌잔치 초대장들이 청첩장을 누르고 있다는 사실. 이젠 결혼으로 인한 제2의 인생을 축복하는 것이 아닌 새 생명들의 탄생과 자라남을 축복해주는 시기야~


그런데 돌잔치를 가면, 마침내 듣고야 마는 얘기들.
'넌 언제 결혼해서 애 낳을래?' '언제 애 낳아서 학부형 될래' 등등. 가끔 곤혹스럽고, 종종 짜증나. 별걸 다 걱정해주는 오지랖들 덕분에. 물론 악의가 아니란 거, 충분히 알아. 해봄직한 얘기지. 그래서 별로 반박은 않아. 그저 얼렁뚱땅 휘리릭~ 뭐 소개도 잘 안해주면서 왜 이러시나. ^^;


그래, 사람 사는 거, 별거 아니얌.
한 생이 길어올려져서 거니는 궤적은 너무도 뻔한 공식같아. 때 되면 학교라는 곳엘 가고, 사회생활을 시작하거나 결혼하고, 애 낳고, 학부형 되고. 내가 사는 이 땅은 그런 관념들이 더 짙지 않은가도 싶어. 사회는 그런 틀, 공식을 갖고 굴러가게 마련이고, 개인은 사회의 산물이니까. 어디나 시간은 흐르기 마련이지. 사람들은 평범한 일상을 영위하고 꾸리고. 간혹 삐져나가는 사람도 있지만, 그건 대세나 주류가 아니지. 삐져나가 있다가도 비슷한 궤적을 그리기도 하고. 자식으로서 살다가, 부모가 되기도 하고, 나중엔 노친네 소리까지 듣는 우리네 사람살이. 그 타이틀들 오매불망 달고 싶어하는 사람도 있잖아! 뭐, 나는 그걸 나쁘다거나, 싫다고 얘기하는 건 아니니까 오해마.


뭐, 어쨌든 선택은 자유.
그것을 선택이라고 인식하지 않고, 그저 당연히 해야할 의무로 여기는 사람들도 있지만. 생을 온전하게 자신만의 것으로 만든다는 것, 그게 중요하지 않아? 결혼하거나, 그렇지 않거나, 애가 있거나, 아니거나. 자연스레 어울리면서 살아가는 그런 거. 나이 차고, 세월 흐르면 당연히 해야한다고 강요하는 그런 사회적 굴레가 아니라, 여러 생각과 부류가 섞여, 훈육된 가치관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코드가 맞는 사람들이 만나 사람살이를 즐기는 그런 것. 나는 그런 즐거움, 바래. 서로 다른 상황과 여건이라도, 죽이 어떡하다보니 맞아서 '샐러드'처럼 조화를 이루는 것. 용광로(멜팅 팟)도 좀 위험해. 융합동화돼야 하잖아. 나는 하나로 몽땅 뭉쳐지는 용광로보다 서로 다른 존재들이 조화될 수 있는 샐러드가 좋다규.

그래서, 그냥 인정해줬으면 해.
공연한 걱정거리인 마냥 오지랖 넓은 소리말고. 지나친 관심도 때론 해가 된다구. 그저 서로 어울릴 수 있는 그런 것. 이른바 '사회적 공식'에서 벗어난다고 모자란 사람 취급말고. 커플과 싱글이 서로의 즐거움을 논하고, 동성애자와 이성애자가 서로 정체성을 인정하면서 친구로서 마음을 나누고, 애를 가진 부모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스스럼없이 각자의 행복을 논하고. 이땅의 멍청한 교육문제 갖고 티격태격 말고. 애가 없어도 교육문제에 대해선 애 없는 사람들도 걱정한다규.

누군가 그러더군.
지금까지 맺은 많은 관계에는 늘 이유가 따라 붙어서 버겁다고. 혈연, 학연, 지연 등 삼연을 비롯, 회사 동료라서 등등. 이유가 붙는 관계들 사이에선 개인이 없어. 누구의 자식이나 조카, 누구의 선후배, 누구의 상사 혹은 부하, 어디의 구성원. 누군가의 무엇이나 구성원. 그래, 그저 하나의 부속품. 그런 관계나 만남에선 늘 내가 파묻히고 그 관계 속에서만 오가는 피곤한 행보. 왜 그렇게 똘똘 뭉친거야. 그 안에선 관심이나 걱정이 지나치기도 하고, 다른 바깥엔 관심도 가지질 않아. 담을 쌓아놓잖아. '우리가 남이가'식의 끈적끈적하고 배타적이고 경직된 울타리. 좀더 자유로울 수 없어?

이 사회라는 울타리, 참 징해.
그 울타리 벗어나버리면 바로 낙장불입일 것 같애. 나갈 기회도 흔치 않은 것도 사실이고. 안에선 더욱 끈끈하고 밀착마크하고, 소속되지 않은 사회에선 담 쌓고 아예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타인의 고통엔 그렇게 무관심할 수가 없지. 내가 속한 곳이 아니라면. 지나치게 좁거나 지나치게 멀다는 말, 맞는 말이야.

좀 재밌고 싶어.
서로 다 엇비슷한 굴레에서 뒹구는 건 심심해. 죽어 버릴 것 같아. 수학공식 같은 테두리를 쳐놓고 있잖아. 같은 버스를 타고 같은 속도로 달리는 것은 남에게 뒤쳐질 염려가 없기 때문에 불안하진 않대잖아. 불안이 영혼을 잠식할 것 같아 그런거야? 아니면 이 사회가 작동하는 메카니즘이라서? 예측가능한 사회가 되는 것은 좋지만, 늘 같은 규격으로 재단해서 비슷한 옷 입혀서 한 버스 속에 태우는 건 재미없는 일이야. 예상 가능한 속도와 정해진 길로 달리고, 비슷한 정류장에서 내리는 일을 반복하는 것. 출근길과 똑같군. 줴길. 이럴 경우와 마찬가지지. 우리 울타리에선, 그래서 늘 예상 가능한 질문과 답만 준비해놓는다면, 문제가 없는게지. 모범답안이라고? 그래, 그 답안에 맞춰야, 출세도 하고, 명망도 높이고, 낙오되지 않는거지? 그런데 그러면 지독하게 재미는 없을 것 같아. 재미냐, 출세냐, 그것이 문제로다. ㅋㅋ

이런이런,
청첩장과 돌잔치에서 시작한 넋두리가 괜히 엉뚱한 곳으로 파생되면서 길어졌군. 그냥 두번째 시즌이 왔음을 선포하는 것이었는데. 범주의 오류닷.ㅋㅋ 신경 쓰지마. 결혼 안(못)하는 자의 넋두리고 그저 흘려들어도 좋을만큼의 농담일 뿐이니까. 쿨럭쿨럭.^^;; 물론 내 주변엔 아직 결혼을 원하는 싱글들이 남아있으니 청첩장이 아주 끊길 일은 아니지. 시즌이면 덮치던 밀물이 이젠 썰물처럼 빠져나가면서 내 인생의 한 시즌이 어느정도 마무리된 것 같단 얘기야. 아 내 청첩장? 글쎄, 당신에게 쥐어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그냥 물 흘러가는대로 놔둬. 괜히 오지랖 넓은 척 말규. 알았지?

그리고 언젠가,
이 두번째 시즌도 또 다른 시즌으로 넘어갈거야. 그땐, 아마 장례식이나 병원을 찾는 일이 더 잦아지는 그때 아니겠어. 부모세대 뿐 아니라, 내 또래의 지인들이 구름의 저편으로 숨어버리는 그때. 생로병사의 이 어쩔 수 없는 굴레. 아, 이 사람살이의 고단함이란.

그런데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하나.
인류를 사랑하긴 어렵지 않지만, 한 사람을 사랑하긴 너무 어려워. 아마 세계 10대 불가사의에 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누가 답을 알아? 알면 가르쳐줘~ 술 한잔 살께. 시즌2 도래를 축하하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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